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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이란 사람이다(中)
23/03/03 09:07:42 김종국 조회 1953
생각건대 - 인이란 두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간여하는 것이다. 子張이 仁에 대해서 물었을 때, 공자는 이에 사람과 사람이 서로 간여하는 방법으로 대답하였으니, 안으로 한다면 齊家․治國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밖으로 한다면 천하를 태평하게 하여 만방이 협조하게 할 것이다. 앞서 학자들은 오직 心學만을 가지고 해석할 생각이었으나 아마도 그의 참뜻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①.
案仁者二人也 人與人之相與也 子張問仁孔子答之以人與人相與之法 內之可以齊家治國 外之可以平天下而協萬放 先儒只以心學爲解恐本旨不然 •疊: 겹쳐질 첩
①論語古今註九 P24~24b

내 생각으로는 - 인이란 人과 人字가 거듭된 글자다. 마치 孫字는 子와 子가 거듭된 글자라 하는 것과 같다. 사람과 사람이 그의 本分을 극진이 하는 그것을 일러 仁이라 한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일러 「인」이라 하였고, 나를 善하게 하는 것을 「義」라 하였던 것이다.
鏞案仁字人人之疊文也 如孫字爲子子之疊文 人與人之盡其分爲之仁 故古人調愛仁善我曰義
 
내 생각으로는 - 하늘의 도는 덕의 선악을 가지고 존비를 생각하였으니, 마치 사람의 도는 벼슬의 고하를 가지고 존비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진실로 仁하다면 그의 지위가 버슬아치거나 서민이거나를 하늘은 묻지 않으니, 어찌 하늘의 높은 벼슬이 아니겠는가. 만일 천지가 만물을 낳게 하는 마음이라고① 생각하거나 또는 본심 전체로서의 덕이라 여긴다면 우주 창조신이 내개 부여해주시되 본래 골고루 되지 않을 리 없고, 사람마다 가솔 안에는 모두 다 천자가 만물을 낳게 하는 마음이 갖추어져 있을 것이니, 수풀처럼 총총히 갇혀있는 것으로서 어느 것 하나일망정 하늘의 높은 벼슬을 얻어 갖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어찌 통할 수 있는 학설이겠는가.

사람이란 됨됨이 仁하고자 하면 仁할 것이요. 仁하려고 하지 않으면 仁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仁한 자는 功이 되려니와 仁이 안 되는 자는 罪가 될 것이다. 仁한 자는 賞을 받을 수 있지만 인하지 않는 자는 벼슬이 떨어질 것이다. 만일 인을 本心 전체의 德이라 한다면, 사람들이 비록 인을 떠나 거기서 살지 않으려고 버틴들 별수 있을 것인가. 궐당(闕黨)에서는② 長幼를 모르고, 互鄕에서는③ 서로 더불어 말을 나누기가 어렵고, 저자거리에 팔고 사는 습속이 있고, 학교에서는 조두(俎豆)의 예를④ 익히고 있다. 이 네 마음은 다 내 자신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중의 하나를 택하여 거기에 살 수가 있다. 仁하거나 仁하지 않거나 그것도 내 마음속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내 뜻대로 골라서 이것을 버리거나 저것을 갖거나 할 수가 있다. 만일 본심 안에 들어 있다면 떠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니, 어떻게 하여 골라 잡을 수 있을 것인가⑤.
鏞案天道以德之善惡爲尊卑 如人道以爵之高下爲尊卑 人苟仁矣 其位之爲士爲庶 天所不問 豈非天之尊爵乎 若以爲天地生物之心 又爲本心全體之德 則洪勻賦予本無不均 人人腔內皆具天地生物之心 林林蕙蕙無一而非得天之尊爵者也 豈可通乎 人之爲物 欲仁則仁 不欲仁則不仁欲仁故仁者爲功 不仁者爲罪 仁者可褒 不仁者可貶 若仁爲本心全體之德 則人雖欲離仁不居 其可得乎 闕黨不知長幼 互鄕難與接言 市塵有賈衒之俗 學校習俎豆之體 是四里者皆不在吾身之內 故我擇其一而居之 仁與不仁亦不在吾心之內 故我得以意揀擇舍此取彼 若仁在本心 則離不得矣 何以擇矣
①朱子는「仁者天下地生物之心」이라 했다. ②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或者與 子曰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竝行也 非求益者也 欲速成者也(논어 憲問篇)
③互鄕難與言 童子見 門人惑 子曰與其進也不與其退也 唯何甚 人潔己以進 與其潔也 不保其往也(논어 述而篇) ④俎豆之禮:제사의 예⑤맹자요의1 P24~24,b

내 생각으로는 - 인은 사람의 마음이다. 이를 주(註)하길 「仁이란 마음의 德」①이라 한다면 義는 사람의 길이건만 이를 註내되 「義란 길의 德」이라 한 연후에야 그 예가 바르게 골라질 것이다. 만일「義는 길의 德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문득 仁도 마음의 덕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옳으면 저것이 그를 것이요, 저것이 옳으면 이것이 그를 것이니, 결코 감히 둘 다 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마음이란 우리들의 신령 된 광명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 이른다. 신령 된 광명이 마음을 집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편안히 살고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인을 사람의 마음이다」라고 한 것은 「인은 사람의 집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인이란 사람의 편안한 집이며 의란 사람들의 바른 길이다」② 한 것도 원래 맹자가 이야기 한 것이다. 이 장과 저 장이 어찌 해석이 다를 수 있을 것인가.

仁이란 두 사람이다. 어버이를 효도로써 섬기면 仁이 될 것이니, 아비와 아들은 두 사람이다. 君王을 忠으로써 섬기면 仁이 될 것이니, 신하와 군왕은 두 사람이다. 목자가 자애로써 인민을 거느리면 인이 될 것이니, 목자와 인민은 두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이 그 본분을 지극히 지킨다면 이내 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힘써 忠恕의 道를 실행하면 인이란 바로 가까운데 있다」 한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이치를 어떻게 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德도 또한 그러할 것이니, 곧은 마음이 실행으로 옮겨지면 이를 일러 德이라 한다. 그러므로 <大學>에서는 孝 ․悌 자를 明德이라하고 생각한 것이다. <論語>에서는 나라를 사랑한 것을 지극한 덕이라 여겼으니③ 실제로 행동이 이미 나타나면 德이라 일컫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본체는 담담하게 비어 있는 광명이라 하지만 어찌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마음에는 본래 德이라고는 없는 것인데, 하물며 仁에서랴. 桃仁이니 杏仁이니 하는 것은 <周易>의 예에서 仁․義․禮․智를 진(震)․태(兌)이(離)․감(坎)에 짝하게 하였고, 설괘 방위에서 또 東․西․南․北을 震․兌․離․坎에 짝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앞서 유학자들은 드디어 仁의 德을 동방에서 萬物을 낳게 하는 德으로 여겼으니, 桃仁이니 杏仁이하여 이를 仁이라 이른 것도 이러한 의미인 것이다.
<周易>의 예에서 물상을 취하지만 그것을 불변하는 법전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용․양․꿩․돼지와 같은 짐승들을 震․兌․離․坎에 짝짓게 하였는데, 그렇다고 장차「仁은 龍이 되고, 義는 羊이 되고 禮는 꿩이 되고 智는 돼지가 된다.」고 할 것인가? 仁은 萬物을 낳게 하는 이치가 아니니, 이렇게 仁을 구한다면 결코 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④
鏞案仁人心也 註之曰仁者心之德 則義人路也 註之曰義者路之德然後其例均正 若云義不是路之德 則便知仁亦非心之德 此是則彼非 彼是則此非 必不敢兩從者也 余謂心者吾人神明之所宅也 神明以心宅爲以爲安居 此云仁人心也者 猶言仁人宅也 仁者人之安宅 義者人之正路 固亦孟子之所言 此章彼章豈得異解乎 仁者二人也 事親孝爲仁 子與父二人也 事君忠爲仁臣與君二人也 牧民慈爲仁牧與民二人也 人與人盡其分乃得爲仁 故曰强恕而行求仁莫近焉 在心之理安得爲仁乎 唯德亦然 直心所行斯調之德 故大學以孝弟慈爲明德 論語以讓國爲至德 實行旣著乃稱爲德 心體之湛然虛明者安有德乎 心本無德 況於仁乎 o桃仁杏仁謂之仁者 易例仁義禮智配於震兌雖坎 而說封方位又以東西南北配於震兌離坎 故先儒遂以仁德爲東方生物之德 而桃仁杏仁之謂之仁亦此義也 易例之取物象不可爲典 龍羊雉豕易配於震兌離坎 其將曰仁爲龍義爲羊禮爲雉智爲豕乎 仁非生物之理 以此求仁 必無以見仁述矣
①集曰仁者心之德 程子所謂心如穀種 仁則其生之性 是也 ②孟子 離婁 上 ③子曰泰伯其可謂之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논어 泰伯篇 ④孟子要義 11 P28b~29
 
내 생각으로는 仁은 天理가 아니라 사람의 德인 것이다. 孔子는 「克己復禮해야 仁이 된다.」고 하였으니, 人慾을 이미 克復한 연후라야 이에 仁이 됨을 밝힌 것이다. 만일 아직 극복하기 전에 미리 마음속에 仁과 人慾이 있으면서 서로 이길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이미 仁한 후에도 오히려 私慾과 더불어 서로 싸우게 되는 셈이니, 仁이라는 것의 됨됨이 그대로 善惡이 아직 결정되지 않는 물건으로 될 것이다. 어찌 통할 수 있는 말이겠는가.①
鏞案仁非天理乃是人德 孔子曰克己復禮爲仁 則人慾旣克然後乃爲仁 若於未克之前 在心之仁與人慾而相勝 則是旣仁之後猶與私慾相戰 仁之爲物仍是善惡未定之品 豈可通乎①孟子要義11P30,b

仁이란 두 사람이다. 옛날 전서는 人‧人을 포개어 글자를 만들었다. 전문에서 孫자는 子․子를 포개어 글자를 만든 것과 같다. 아비를 孝로써 섬기면 인이 되는데 아들과 아비는 두 사람이다. 君王을 忠으로써 섬기면 인이 되는데 臣下와 君王은 두 사람이다. 벗과 더불어 信義를 지키면 인이 되는데 벗과 벗은 두 사람이다. 목자가 人民을 자애로 가르치면 仁이 되는데 목자와 人民은 두 사람이다. 무릇 사람과 사람끼리 그의 본분을 극진히 하면 그것을 일러 仁이라 한다. 그러므로 앞서 성인들이 인자를 새길 때는 다같이 「인이란 사람이다」하였고, <孟子>에서도「仁이란 사람이다」하였고, 표기에서도 仁이란 「仁이란 사람이다」하였으니, 仁이란 사람이라는 것은 仁이란 것의 됨됨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긴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그러므로 「仁이란 사람인 것이니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① 하였으니, 君王을 사랑하거나 人民을 길러주거나 어느 것이나 인이 아님은 아니지만 그러한 여러 가지 인중에서도 어버이를 어버이로 여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자는 「孝․悌란 그것들이 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다」라고② 한 것이다. 선철들이 말한 인과 후세 사람들의 기미가 같지 않는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仁者二人也 古篆作人人之疊文也 如篆文孫字爲子子之疊文也事 事父孝爲仁子與父二人也 事君忠爲仁臣與君二人也 與友信爲仁友與友二人也 牧民慈爲仁牧與民二人也 凡人與仁盡其分斯謂之仁 故先聖訓仁字皆曰仁者人也 中庸曰仁者仁也 孟子曰仁者人也 表記曰仁者人也 仁者人也者謂仁之爲生於人與人之間也 故曰仁者人也 親親爲大謂愛君牧民無非仁也 而諸仁之中親親爲大也 故有子曰孝悌也 者其爲人之本 先哲言仁與後世氣味不同 有由然也
①中庸 견문편 ②論語 學而篇 ③答李汝弘 十九권
 
⑵ 人倫之成德
보충하기를 - 인이란 인륜에서① 이루어진 덕인데 인이 그 때문에 근본이 되고 예‧악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인하지 않으면 그의 근본이 없어질 것이니, 이 예‧악인들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건대 -인이란 충‧효에서 이루어진 이름이니, 禮는 이를 이용하는 곳에서부터 생기며, 禮는 이을 이행하는 곳에서부터 생기며, 樂은 이를 즐기는 데서부터 생기는 것이다. 仁이 그 때문에 質이② 된다면 예‧악은 그 때문에 文이③ 되는 것이다. 계씨와 같은 자신이 仁이 아닌 일을 저지르면서 오히려 예를 행하며 樂을 연주함으로써 그의 文彩를 이룩하려고 하니 그럴 수 있겠는가. 「이를 어떻게 하나」 하는 말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인하여 못한 자는 예‧악에 있어서 비록 덮쳐가지고 싶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補曰仁者人倫之成德 仁爲之本而禮樂由之以生 不仁則其本亡矣 奈此禮樂何…案仁者忠孝之成名 禮自履此而生 仁爲之質而禮樂爲之文也 如季氏者躬踏不仁猶欲行禮樂以成其文而可得乎 如此何者末如之何也 謂不仁者之於禮樂 雖欲襲而取之末如之何也
①인이란 주로 인간과 인간관계와의 일대일 의 관계를 의미함 ②본질 ③文:자연 아닌 문화, 인공적인 창조 ④논어 고금주1 P43
 
보충하기를 仁이란 인륜에서의 지극한 善인 것이다. 伯夷는 부자간에 그의 본분을 극진히 할 것을 요구하였고, 叔齊는 兄弟간에 그의 本分을 극진히 할 것을 요구하였으니, 이것이 인을 요구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그의 뜻대로 되었으니, 이것이 仁을 얻은 것이다. 인이란 천하의 지극한 선인데 나라를 얻은 데에서 仁賢까지를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할 것인가.①
仁者人倫之至善也 伯夷求父子之門盡其分 叔齊求兄弟之間盡其分 是求仁也 卒成其志是得仁也 仁者天下之至善 得仁賢於得國又何怨 논어 고금주3 P3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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