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제36장 (孔子時代)(6~7)
23/04/04 16:06:17 김종국 조회 1597
제36장 공자시대(孔子時代)(6)
그 시각.
앞서 동문을 향해가던 양호(陽虎)는 문득 뒤따라와야 할 계손사(季孫斯)의 수레가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양월(陽越)과 그 부하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양호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얼른 수레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달렸다. 큰 거리까지 돌아갔으나 여전히 계손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재상(宰相)의 수레를 보지 못했는가?"
행인들이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재상의 수레를 몰던 말들이 놀라 남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양호가 남문을 향해 달려가려는데 마침 겨우 목숨을 구한 양월의 부하들이 도망쳐왔다.
"양월 나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양호는 불같이 노했다.
"내가 삼환(三桓)을 죽여 생짜로 간을 씹어 먹으리라."
그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공궁(公宮)으로 달려가 영문 모르는 노정공(魯定公)을 끌어내었다.
"당장 궁중 군사를 소집하여 맹손씨(孟孫氏)를 공격하게 하시오."
노정공을 인질로 잡은 것은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궁을 나오는데 마침 숙손주구(叔孫州仇)가 입궁하고 있었다.
양호는 칼을 뽑아 숙손주구의 목에 대고 말했다.
"경(卿)은 곧 경의 가병(家兵)들을 이끌고 나를 도우시오."
숙손주구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 가병을 거느리고 양호의 뒤를 따랐다.
궁중 군사와 숙손씨(叔孫氏)의 가병을 확보한 양호는 곧장 남문 밖으로 나가 맹손무기(孟孫無忌)의 목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맹손무기는 활을 쏘며 대항했다.
양호가 멀리서 명했다.
"목장 담장에 불을 질러라!"
담장은 판자로 만들어져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맹손무기는 하늘의 해를 쳐다보며 발을 굴렀다.
"공렴처보(公斂處父)야! 어찌 정오가 되었는데 달려오질 않는 것이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저쪽 동편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났다. 성읍 관리인인 공렴처보와 그 군사들이었다.
"양호는 우리 주인을 해치지 마라. 여기 공렴처보가 왔노라!"
양호의 부하들과 공렴처보의 군사들 사이에 한바탕 싸움이 일었다.
싸움은 백중세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공렴처보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 양호에게 강제로 끌려왔던 숙손주구가 별안간 큰소리를 질러댔다.
"숙손씨의 가병들은 속히 역적 양호를 쳐라!"
그러고는 재빨리 인질이 되어 있던 노정공을 빼앗아 서쪽으로 달아났다.
동시에 맹손무기가 3백 장사들을 거느리고 목장 안에서 달려나왔다. 뒤늦게 계손사의 가병들도 주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눈깜짝할 사이에 전세는 역전되었다.
양호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을 직감했다.
"퇴각하라!"
결국 양호는 곡부성(曲阜城)을 탈출하여 양관(陽關)으로 도망쳤다. 양관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태안현(泰安縣) 동남쪽 땅이다.
그는 그곳에서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이듬해 6월, 계손사는 삼환의 군대를 총동원하여 양관을 공격했다. 그 싸움에서도 양호는 패했다. 그는 더 이상 노(魯)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자 관문 밖에 불을 지르고 제(齊)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제경공(齊景公)에게 가서 말했다.
"신이 소유하고 있던 양관 땅을 齊나라에 바치겠습니다. 군후(君侯)께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魯나라를 쳐주십시오."
제경공은 양관 땅이 탐이 나 양호의 청을 승낙하려 했다.
그때 齊나라 6경(六卿) 중의 한 사람인 포국(鮑國)이 간했다.
"양호는 간사한 자입니다. 가신(家臣)으로서 그 주인을 치려 했고, 이제는 남의 나라 힘으로 자기 나라를 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용납하면 그 화(禍)는 우리 齊나라에 미칠 뿐입니다. 차라리 양호를 잡아 魯나라로 보내십시오."
이에 제경공은 양호를 잡아 서쪽 변방에 가두었다.
그러나 양호는 집요한 자였다.
그는 옥리(獄吏)를 매수하여 술을 먹인 후 탈출했다. 짐수레를 훔쳐 타고 송(宋)나라를 거쳐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晉나라에서 그는 晉나라 6경 중 한 사람인 조앙(趙鞅)의 가신이 되었다.
이로써 '양호의 난'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양호가 조앙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진(晉)나라 조씨(趙氏)는 대대로 소란스러울 것이다.
사악한 자를 받아들여 가신으로 삼았으니, 어찌 혼란이 일지 않겠느냐는 탄식이었다.
양호가 齊나라를 탈출하여 晉나라로 도망간 다음해인 기원전 500년(노정공 10년) 여름, 齊나라와 魯나라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이 협정은 양호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제경공은 양호의 齊나라 탈출이 고의가 아님을 해명할 필요가 있었고, 魯나라는 魯나라대로 양호의 청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양측의 뜻이 부합되어 제경공과 노정공은 협곡(夾谷)에서 회동하여 맹회(盟會)를 열고 우호를 두터이 하기로 합의했다. 협곡은 축기(祝其)라고도 불리는 땅으로,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박산현(博山縣)에 남쪽 일대다.
그런데 이 협곡회맹과 관련하여 공자에 관한 또 하나의 일화가 전해온다.
 
제36장 공자시대(孔子時代)(6)
그 시각.
앞서 동문을 향해가던 양호(陽虎)는 문득 뒤따라와야 할 계손사(季孫斯)의 수레가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양월(陽越)과 그 부하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양호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얼른 수레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달렸다. 큰 거리까지 돌아갔으나 여전히 계손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재상(宰相)의 수레를 보지 못했는가?"
행인들이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재상의 수레를 몰던 말들이 놀라 남문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양호가 남문을 향해 달려가려는데 마침 겨우 목숨을 구한 양월의 부하들이 도망쳐왔다.
"양월 나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양호는 불같이 노했다.
"내가 삼환(三桓)을 죽여 생짜로 간을 씹어 먹으리라."
그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공궁(公宮)으로 달려가 영문 모르는 노정공(魯定公)을 끌어내었다.
"당장 궁중 군사를 소집하여 맹손씨(孟孫氏)를 공격하게 하시오."
노정공을 인질로 잡은 것은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궁을 나오는데 마침 숙손주구(叔孫州仇)가 입궁하고 있었다.
양호는 칼을 뽑아 숙손주구의 목에 대고 말했다.
"경(卿)은 곧 경의 가병(家兵)들을 이끌고 나를 도우시오."
숙손주구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 가병을 거느리고 양호의 뒤를 따랐다.
궁중 군사와 숙손씨(叔孫氏)의 가병을 확보한 양호는 곧장 남문 밖으로 나가 맹손무기(孟孫無忌)의 목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맹손무기는 활을 쏘며 대항했다.
양호가 멀리서 명했다.
"목장 담장에 불을 질러라!"
담장은 판자로 만들어져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맹손무기는 하늘의 해를 쳐다보며 발을 굴렀다.
"공렴처보(公斂處父)야! 어찌 정오가 되었는데 달려오질 않는 것이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저쪽 동편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나타났다. 성읍 관리인인 공렴처보와 그 군사들이었다.
"양호는 우리 주인을 해치지 마라. 여기 공렴처보가 왔노라!"
양호의 부하들과 공렴처보의 군사들 사이에 한바탕 싸움이 일었다.
싸움은 백중세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공렴처보가 밀리기 시작했다.
그때 양호에게 강제로 끌려왔던 숙손주구가 별안간 큰소리를 질러댔다.
"숙손씨의 가병들은 속히 역적 양호를 쳐라!"
그러고는 재빨리 인질이 되어 있던 노정공을 빼앗아 서쪽으로 달아났다.
동시에 맹손무기가 3백 장사들을 거느리고 목장 안에서 달려나왔다. 뒤늦게 계손사의 가병들도 주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
눈깜짝할 사이에 전세는 역전되었다.
양호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것을 직감했다.
"퇴각하라!"
결국 양호는 곡부성(曲阜城)을 탈출하여 양관(陽關)으로 도망쳤다. 양관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태안현(泰安縣) 동남쪽 땅이다.
그는 그곳에서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이듬해 6월, 계손사는 삼환의 군대를 총동원하여 양관을 공격했다. 그 싸움에서도 양호는 패했다. 그는 더 이상 노(魯)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자 관문 밖에 불을 지르고 제(齊)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제경공(齊景公)에게 가서 말했다.
"신이 소유하고 있던 양관 땅을 齊나라에 바치겠습니다. 군후(君侯)께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魯나라를 쳐주십시오."
제경공은 양관 땅이 탐이 나 양호의 청을 승낙하려 했다.
그때 齊나라 6경(六卿) 중의 한 사람인 포국(鮑國)이 간했다.
"양호는 간사한 자입니다. 가신(家臣)으로서 그 주인을 치려 했고, 이제는 남의 나라 힘으로 자기 나라를 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용납하면 그 화(禍)는 우리 齊나라에 미칠 뿐입니다. 차라리 양호를 잡아 魯나라로 보내십시오."
이에 제경공은 양호를 잡아 서쪽 변방에 가두었다.
그러나 양호는 집요한 자였다.
그는 옥리(獄吏)를 매수하여 술을 먹인 후 탈출했다. 짐수레를 훔쳐 타고 송(宋)나라를 거쳐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晉나라에서 그는 晉나라 6경 중 한 사람인 조앙(趙鞅)의 가신이 되었다.
이로써 '양호의 난'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양호가 조앙에게 몸을 의탁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진(晉)나라 조씨(趙氏)는 대대로 소란스러울 것이다.
사악한 자를 받아들여 가신으로 삼았으니, 어찌 혼란이 일지 않겠느냐는 탄식이었다.
양호가 齊나라를 탈출하여 晉나라로 도망간 다음해인 기원전 500년(노정공 10년) 여름, 齊나라와 魯나라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졌다.
이 협정은 양호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즉 제경공은 양호의 齊나라 탈출이 고의가 아님을 해명할 필요가 있었고, 魯나라는 魯나라대로 양호의 청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양측의 뜻이 부합되어 제경공과 노정공은 협곡(夾谷)에서 회동하여 맹회(盟會)를 열고 우호를 두터이 하기로 합의했다. 협곡은 축기(祝其)라고도 불리는 땅으로,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박산현(博山縣)에 남쪽 일대다.
그런데 이 협곡회맹과 관련하여 공자에 관한 또 하나의 일화가 전해온다.
 
제36장 공자시대(孔子時代)(7)
제(齊)나라와 노(魯)나라는 적대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다. 협곡회맹(夾谷會盟)을 앞두고 양쪽 나라 대신들 사이에는 여러가지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노정공(魯定公)이 출발하기 전 맹손무기(孟孫無忌)가 노정공에게 간했다.
"齊나라는 원래 속임수를 잘 쓰는 나라입니다. 이번에 가면 해를 당할지 모릅니다."
노정공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질 않소?"
"공자(孔子)는 예에 밝을 뿐 아니라 용기도 넘치는 군자(君子)입니다. 주공(主公)께서는 이번에 가실 때 반드시 공자를 데리고 가십시오. 그러면 해보다는 이익이 많을 것입니다."
일종의 천거였다.
노정공도 공자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를 불러 사공(司空)에 임명한 후 청했다.
"함께 협곡(夾谷)으로 가 과인(寡人)을 보좌해주시오."
공자가 승낙하며 대답했다.
"모름지기 문(文)에는 반드시 무(武)가 따라야 합니다. 주공께서는 이번 협곡행에 대비하여 좌우 사마(司馬)를 데리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에 노정공은 신구수(申句須)를 우사마(右司馬)로 삼고, 악기(樂頎)를 좌사마(左司馬)로 삼아 병거(兵車) 2백 승(乘)을 거느리고 공자와 함께 협곡으로 나갔다. 아울러 대부(大夫) 자무환(玆無還)에게 병거 3백 승을 주어 협곡 땅 10리 밖에 영채(營寨)를 세워놓으라 명했다.
 
​ 한편, 제경공(齊景公)은 제경공대로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협곡 땅으로 나왔다. 재상(宰相) 안영(晏嬰)이 배종했다. 그런데 제경공의 근신(近臣)중에 여미(黎彌)라는 사람이 있었다. 꾀가 많고 아첨을 잘하여 양구거(梁丘據)와 더불어 제경공의 총애를 받는 자였다.
맹회가 열리기 전날 밤이었다.
여미가 은밀히 제경공의 처소로 들어갔다. 제경공이 물었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냐?"
"신에게 좋은 계책이 있어 왔습니다."
"좋은 계책이라니?"
"우리 齊나라와 魯나라는 예부터 원수간입니다. 이번 회맹에 대비하여 노후(魯侯)가 공자를 데리고 왔습니다만, 신이 본즉 공자는 예만 알뿐 용기가 없어 보였습니다."
"내일 맹회가 끝나면 주공께서는 노후를 위해 음악을 연주하라 분부하십시오. 그러면 신이 내이(萊夷)의 군사 3백명을 악공으로 변장시켜 요란하게 음악을 울리겠습니다. 한창 음악을 울리다가 魯侯가 놀라는 틈을 타 魯侯와 공자를 잡아버리면 어찌 魯나라가 우리 수중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글쎄, 과인이 재상과 상의해보겠다."
여미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재상 안영은 이런 일에 어두운 사람입니다. 반대할 것이 틀림없으니, 의논하지 마십시오. 신이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제경공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음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이었다.
제경공과 노정공은 단 위에 올라가 정해진 예법에 따라 화친할 것을 맹약했다. 魯나라측에서는 공자가 증인이 되었고, 齊나라측에서는 안영이 증인이 되었다.
맹약이 끝나자 제경공이 노정공에게 말했다.
"이처럼 즐거운 날, 과인이 군후(君侯)에게 음악을 선사할까 합니다."
그리고는 여미에게 악사들을 대령하라 명했다.
여미는 악공으로 변장한 내이의 군사 3백 명을 대령시켜 일제히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그런데 음악이라는 것이 북 치고 깃발을 휘두르고 칼과 창을 세운 채 괴상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흡사 전쟁터로 나가는 듯한 기세였다. 그들은 점차 노정공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까이 접근했다.
노정공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때 갑자기 한 사내가 일어섰다. 노정공을 보필하고 있던 공자였다. 9척이 넘는 공자는 제경공 앞에 우뚝 섰다. 이어 소매를 들어 예를 표하며 우렁찬 음성으로 말했다.
"齊⋅魯나라가 우호를 맺는 이런 좋은 자리에 군후께선 어찌하여 오랑캐 음악을 들으십니까? 지금 곧 중지시켜 주십시오."
조금도 위축됨이 없는 행동이었다, 여차하면 제경공에게 덤벼들기라도 할 듯한 표정이었다.
제경공은 갑자기 거대한 체구의 사나이가 자신의 눈앞에 서자 위축됨을 느꼈다. 그때 또 한 사나이가 일어섰다. 제경공 옆에 앉아 있던 안영이었다. 6척 단구의 그는 공자 옆에 나란히 섰다. 안영은 전날 밤 제경공과 여미 사이에 오간 말을 알지 못했다.
안영은 제경공을 향해 말했다.
"공자의 말씀이 옳습니다. 주공께선 예의를 잃지 마십시오."
제경공은 한편으로는 공자의 험악한 기세에 겁을 먹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영의 날카로운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제경공은 얼른 단 아래에 서 있는 여미에게 명했다.
"음악을 중지시켜라!"
여미는 자신의 계획이 어그러지자 화가 치밀었다.
그는 노정공과 공자를 망신시키기 위해 다시 청했다.
"이번에는 齊나라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여미의 속셈을 알지 못하는 제경공은 그 청을 승낙했다.
여미가 재빨리 진짜 악공들에게로 가서 속삭였다.
"너희들은 '폐구(敝笱)의 노래'를 불러라. 또한 배우들은 마음대로 재주를 발휘하라."
여미의 지시를 받은 악공과 광대들은 두 줄로 나누어 단 앞으로 달려나와 노래를 부르고 재주를 피웠다. 얼굴에는 얼룩덜룩한 색을 칠했고, 옷은 이상야릇했다. 그들은 펄쩍펄쩍 뛰기도 했고, 둥실둥실 춤추기도 했다. 두 나라 임금을 모신 자리에서 공연하기에는 낯뜨거운 짓거리였다.
'폐구의 노래'란 곧 오누이간인 제양공(齊襄公)과 문강(文姜)의 음탕함을 읊은 노래다. 문강은 노환공(魯桓公)의 부인이었기에 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魯나라를 망신줄 작정이었던 것이다.
공자는 대뜸 그들이 노정공을 욕보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제경공에게 말했다.
"모름지기 필부로서 임금을 현혹시키는 자는 참수형(斬首刑)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군후께서는 저 악사의 장(長)과 광대의 장(長)을 참하십시오."
제경공은 공자의 말을 못 들은 척 외면했다.
이에 용기를 가진 악공들과 광대들은 깔깔깔 웃어댔다.
그러나 공자도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았다.
제경공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대뜸 몸을 돌려 단 아래를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齊나라와 魯나라는 이미 우호를 맺었으니 형제와 같다. 魯나라 사마가 곧 齊나라 사마다. 신구수와 악기는 어디 있느냐? 당장 악공과 광대의 우두머리 목을 베어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신구수와 악기는 나는 듯이 뛰어나와 각기 악공과 광대의 우두머리를 한칼에 쳐죽였다. 그제야 나머지 악공과 광대들은 사색이 되어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놀라기는 제경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자가 그렇게 과단성 있게 행동할 줄은 전혀 짐작도 못했다. 크게 겁을 먹고 부랴부랴 맹회를 폐했다. 魯나라를 욕보이려다 오히려 망신만 당한 셈이었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제경공은 여미를 불러 꾸짖었다.
"너는 공자가 예만 알 뿐 용기가 없는 자라고 했는데, 오늘 그의 일거일동을 보니 공자만큼 용기를 지닌 사람도 드물었다. 너로 인해 과인은 공연히 魯나라의 원망만 사게 되었다."
여미가 할말이 없어 꿇어앉아 있는데 곁에서 재상 안영이 아뢰었다.
"주공께서는 지금이라도 魯侯에게 사죄하십시오."
"어떻게 사죄하면 좋겠소?"
"신이 듣기로, 소인(小人)은 자기 잘못을 사죄할 때 말로써 하지만 군자는 물건으로 사죄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魯나라 땅을 세 곳이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운(鄆) 땅과 문양(汶陽) 땅과 구음(龜陰) 땅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공께서 이 세 땅을 魯나라에 돌려주시고 사과하면, 魯나라 군주(君主)와 신하들은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제경공은 안영의 말을 수락하고 지난날 빼앗은 바 있던 운, 문양, 구음 세 땅을 다 魯나라에 돌려주었다.
공자의 용기와 외교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라 할 수 있다.
노정공은 귀국하여 공자에게 대사구(大司寇)의 벼슬을 내리었고, 이때부터 공자는 본격적으로 魯나라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대사구는 법을 형벌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오늘날 법무부 장관에 해당한다.
공자 나이 52세 때의 일이었다.
공자는 이후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발휘하여 魯나라 백성을 위해 많음 음덕을 쌓았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해인가 齊나라와 魯나라 접경지역인 문수(汶水)가에 큰 새 한마리가 나타났다. 그 새의 길이는 3척이나 되었고, 몸통은 검고, 목은 희었으며, 부리는 길고, 다리는 하나였다.
그 새는 들판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들 사람들이 그 새를 잡으려고 쫓아다녔지만, 새는 북쪽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계손사(季孫斯)가 이 새 이야기를 듣고 공자에게 물었다.
"그 새가 무슨 새일까요?"
"그 새의 이름은 상양(商羊)이라고 합니다. 북해(北海)에 사는 새인데, 그 새가 나타나면 큰비가 쏟아집니다. 이번에 상양이 와서 춤추다 가버린 곳에는 큰비가 내릴 것이니, 그 일대에 제방을 쌓아 수해를 미연에 방지하십시오."
계손사는 공자의 말대로 그곳 백성들에게 홍수에 대비하라 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이 못 되어 齊, 魯 접경지대에 큰비가 내려 문수가 범람했다. 魯나라 쪽은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기 때문에 큰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齊나라 쪽 마을은 많은 피해를 당했다.
이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공자를 신인(神人)으로 생각했다.
이때부터 세상 사람들은 공자를 가리켜 성인(聖人)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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