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野合(야합)
26/08/31 07:32:16 金 鍾國 조회 94
野合(야합)


야합(野合)’이라는 말은 원래 들판에서 짐승이 교미한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몸을 섞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정치에서 부정한 목적을 위해 몰래 손잡는 행위를 일컫는 말로 더 자주 사용된다. 한때는 생명 탄생을 상징하던 단어가, 시대가 흐르며 음습한 권력의 그림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야합’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오늘날의 부정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명맥을 잇는 절실함, 나아가 한 시대를 바꿀 운명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공흘(孔紇)이라는 무인(武人)이 있었다. 장대한 체구에 뛰어난 무력을 지니고 대부가 되었으나, 나이 예순이 넘도록 아들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아들은 병약했기에, 자신의 명문 가문이 끊길 것을 두려워했다. 그 절박함 속에 공흘은 마을의 무녀에게 부탁했고, 그 집의 막내딸 안징재(顔徵在)는 나이 열여섯에 노인의 부탁을 받아들인다. 63세 노인과 16세 처녀는 들판에서 ‘몸을 섞는 야합’을 했고, 열 달 후 한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가 바로 공자(孔子)다. 세계 4대 성인으로 불리는 사상의 거인이, 이처럼 ‘야합’이라는 들판의 생명력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공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무녀 출신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 배경은 오히려 그의 사상 속에 인간 존엄,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 정의를 키워낸 토양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야합’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음모와 담합, 권력의 탐욕을 떠올린다. 민의를 외면한 채 양지만 좇고, 사리사욕을 위해 손을 잡는 정치인들에게 이 단어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야합은 생명을 잇고 미래를 꿈꾸는 절박한 희망의 선택이었다. 언어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그 변천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다. 공자의 탄생을 기록한 ‘야합’이 생명의 씨앗이었듯, 오늘의 정치 역시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결단과 성찰로 거듭나야 한다. 권력을 위한 음습한 야합이 아니라, 민의를 위한 당당한 연합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생명을 위한 야합은 역사로 남고, 권력을 위한 야합은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들판에서 태어난 공자는 인의(仁義)를 가르쳤다. 그러나 권력의 야합은 부끄러움을 남긴다.
 참된 연합은 민의를 낳고, 거짓된 야합은 욕망을 낳는다.
 야합이 생명을 잉태할 때는 역사이고, 탐욕을 잉태할 때는 죄악이다.
 정치는 권력의 야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연합이어야 한다.

감사합니다
이전글 東洋 古典 한마디 91. 堯曰 寬而栗
다음글 東洋 古典 한마디 90. 詢于四嶽
작성자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숫자)
댓글목록 0개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십시오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십시오
답글쓰기
작성자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