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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庫全書 사료로 본 漢四郡과 朝鮮河, 朝鮮城
26/06/08 21:48:31 金 鍾國 조회 22
四庫全書 사료로 본 漢四郡과 朝鮮河, 朝鮮城
 
지난 제39호에서 蚩尤가 東夷의 조상이라는 사실에 관해 다루어 보았다. 이번에는 중국이 발간한 『四庫全書』와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등에서 찾을 수 있는 朝鮮河와 朝鮮城이란 명칭과 위치를 통해 古朝鮮의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다.
◎『四庫全書』는 청나라 건륭(1736-1795) 연간에 학자 1000여명을 동원하어 10년에 걸쳐 청나라 이전 중국의 사료를 집대성한 그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사료의 寶庫이다. 근 8만권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포함하고 있는 『四庫全書』는 萬里長城, 경항운하(京杭運河)와 함께 중국의 3대 奇蹟으로 꼽힐 만큼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그동안 『桓檀古記』를 비롯한 국내 사료를 바탕으로 植民史學에 물든 한국사의 오류를 비판하는 民族史學界의 외침을 강단사학은 僞書論爭을 유발시키고 실증사학을 내세우면서 외면해 왔다. 그러나 『四庫全書』는 중국에서 국력을 기울려 편찬한 그 권위를 세계가 인정하는 正史史料다. 여기 인용된 樂浪史料들은 강단사학이 실증사학을 외치며 인용한 사료들 보다 더 실증적인 사료들이다. 


◎『前漢書』 권64하 「賈損之傳」에 보면 동쪽으로는 碣石을 지나 玄菟ㆍ樂浪으로써 縣을 삼았습니다. 가손지(賈捐之)는 여기서 漢武帝가 튼튼한 국력을 바탕으로 漢의 강역을 사방으로 확장시킨 사실을 설명하면서 동쪽으로 朝鮮을 평정하여 玄菟ㆍ樂浪郡을 설치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漢武帝가 “동쪽으로 碣石을 지나 玄菟ㆍ樂浪으로써 郡을 삼았다”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서기전 108년 漢武帝가 衛滿朝鮮을 침략하여 한반도 북부인 대동강유역에 漢四郡의 樂浪郡을 설치했다고 주장해온 事大 植民史觀的 論理는 전혀 근거가 없는 역사왜곡일 뿐이다.
 
◎『畿輔通志』 귄115 「弔夷齊賦」
伯夷ㆍ叔齊의 혼령을 위로하는 王世貞의 글에 보면 盧龍은 옛 孤竹國 땅이고, 城 서쪽에 伯夷ㆍ叔齊의 祠堂이 있다. 吳人 王世貞이 皇帝의 명을 받들어 使臣으로 나가다 이곳을 지나면서 물 한 사발 떠놓고 제사를 올리며 이 글을 지었다고 했다. “내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동쪽에 사신으로 떠나게 되어 行裝을 꾸려서 令支(춘추시대 東夷族이 세운 나라. 『國語』 「齊語」에 “齊桓公北伐山戎, 刜令支斬孤竹” ‘刜令支=令支, 孤竹=고죽국’으로 기록되어있음)에 이르렀도다. 산들이 뾰족뾰족 높낮이가 고르지 않고, 갖가지 풀들은 여기저기 옹기종기 나 있도다. 北方의 물줄기가 樂浪으로 모여 드니, 箕子가 難을 당하여 여기서 宗廟社稷을 연장시켰도다. 함께 노닐며 즐길 수 있었건만 侏離(주리는 蠻夷의 말소리를 가리킴)의 언어라서 말이 통하지 않았도다.“ 또한 『史記』 「伯夷列傳」에 실려 있고 그 주석인 「索隱」에 “孤竹君是殷湯三月丙寅日所封 ”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거하면 孤竹國은 서기전 1,600년경 商湯이 商朝를 건립한 초기에 건국 된 나라임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遼寧省 객좌(喀左)ㆍ하북성 盧龍 遷安 일대에서 “孤竹”이라는 銘文이 새겨진 靑銅器가 출토되었다. 이로 인해 고대의 孤竹國이 오늘의 河北省 盧龍縣을 중심으로 상당히 광대한 지역에 걸쳐 소유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令支’는 孤竹國의 서쪽, 오늘날 하북성 서북쪽에 있었던 孤竹國과 同族인 동이족이 세운 나라 이름이고, 卑耳는 令支國에서 동쪽으로 孤竹國을 향해 갈 때 국경선에 닿기 전에 건너게 되는 강의 명칭이었다.

王世貞이 孤竹ㆍ令支ㆍ卑耳와 함께 거론한 樂浪은 河北省 동북쪽에 있는 樂浪을 가리킨 것이며 결코 한반도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북성 동북쪽에 있었던 것이다. 즉 孤竹國은 하북성의 동북방에 위치하고 古朝鮮은 동남방에 위치하여 서로 이웃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2년 10월에 하북성 遷安市 夏官營鎭 馬哨村 일대에서 ‘箕“字가 새겨진 商代의 靑銅이
발굴되었다. 이는 箕子朝鮮이 孤竹國과 이웃하여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입증하는 좋은 자료인 것이다.
『三國遺事』 「고조선」 條에는 “高句麗가 본래 孤竹國이었다”라는 기록도 있다. 이는 孤竹國이 東夷族으로서 우리 민족과 깊은 혈연적 유대관계가 있었음을 반영한다.
古朝鮮은 중국 동북방의 九夷가 모여서 최초로 세운 나라로 건국연대가 孤竹國보다 약 1,000년가량 앞선다. 孤竹國이 高句麗의 前身이라면 孤竹國은 古朝鮮계통의 민족이 지금부터 3,600년 전쯤에 古朝鮮으로부터 갈려나간 ‘不(刜)令支’는 다른 이름으로 離支라고도 부른다. 離支는 그 명칭 상으로 보면 ‘따로 떨어져 나간 가지’라는 뜻이다.
⁕중국의 동북방에 夏ㆍ殷ㆍ周 이전에 건립되어 존속해온 나라는 古朝鮮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離支가 어디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가지인가? 역시 고조선에서 분파되어 나온 성립된 나라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참고로 중국국가 연대표에 따르면 夏나라는 약 BC21세기~ 약 BC16세기, 商(殷)

◎『四庫全書』사료에 의해 樂浪郡은 尹乃鉉의 말대로 오늘의 河北省 난하(灤河)중류 하류 유역으로부터 서쪽으로 河北省 남쪽 易水 流域의 碣石山 부근에 이르는 지역에 발해(渤海)를 끼고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東漢시대 이전의 갈석산은 河北省 창려현 원래의 갈석산이 아니라 게석산이었으며 이것이 東漢시대 이후 중국의 史家들에 의해 喝石山으로 둔갑한 사실, 또 오늘의 하북성 조하(潮河)가 원래는 古朝鮮의 朝鮮河였던 사실, 古朝鮮과 樂浪郡의 서쪽변경이 하북성 남쪽 호타하 북쪽에 있는 갈석산 부근이었다는 『四庫全書』가 증명해 준다.
우리의 『三國史記』 『三國遺事』 『桓檀古記』만으로는 이런 것을 객관적 실증적으로 밝혀내기는 어렵다. 『史記』 「朝鮮列傳」에서 浿水를 살펴보면 燕나라와 朝鮮의 국경선이었고, 또한 漢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이기도 하였다. 衛滿은 서쪽에서 浿水를 건너 朝鮮에 왔고, 涉何는 浿水를 건너 조선에서 中國으로 도망쳤다. 이는 浿水가 중국과 조선의 국경선이며 朝鮮에 속하는 朝鮮河였다. 따라서 패수와 潮河 는 朝鮮河라는 공통점이 있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에 따르면 “盧龍縣에 箕子가 封함을 받은 朝鮮城있다”라고 하였다. 羅泌은 宋나라 때까지도 고대의 朝鮮城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던 平州의 盧龍縣에 천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현재의 중국 지도상에 남아 있다. 또 지금의 하북성 진황도시 盧龍縣은 殷나라의 諸侯國인 伯夷ㆍ叔齊의 孤竹國이 있던 지역이다. 伯夷ㆍ叔齊는 殷 나라 諸侯國의 王子로서 周武王의 殷나라 정벌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인물이고, 箕子는 殷나라 王族으로 殷나라가 쇠망하자 周나라의 신하노릇이 싫어서 떠난 인물이다. 孤竹國은 山戎族으로서 지금의 萬里長城 부근에 있었다. 결국 우리는 朝鮮河는 북경 동쪽, 朝鮮城이 북경 동남쪽에 있었음으로 그 주변을 중심으로 古朝鮮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북경 동북방에 朝鮮河는 곧 浿水요, 현재는 改名한 潮河가 흐르고 盧龍縣에 朝鮮城이 현재도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지역에 古朝鮮이 존재했었다는 확실한 증거로 남아있다. 韓半島를 중심한 古朝鮮의 위치를 기술한 현재 高校 國史의 내용은 수정되어야 마땅하고 필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다음 호에서는 고조선의 도읍지 천도를 다루어 보겠다.
참고도서: 四庫全書 사료로 보는 漢四郡과 樂浪,(임백강), 역주 國語1(許鎬九외 3인), 韓國古代史新論(윤내현),잃어버린 上古史 되찾은 古朝鮮(임백강), 實證 한단고기(이일봉),國語역주(譯註)주1(이충구 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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