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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역사 전쟁이다" ~
26/01/14 09:26:06 金 鍾國 조회 99


"이건 역사 전쟁이다" 45년간 삽 들고 싸운 한국연해주 땅속 530년 증거에 중국 동북공정 완전 박살유네스코 "발해는 한국 역사인정한 충격(해외감동사연이 영상은 실화를 바탕으로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유튜브 감동포럼에 나오는 내용이 우리 역사를 아는 데 도움이 되어 이글을 옮겨 실었습니다옮긴이 裕 亭

 

연해주 땅속에서 1,500년 전 한국인의 집이 나왔습니다. 2009년 7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굴현장 서울대학교 연구팀이 보낸 목탄 샘플의 측정 결과가 도착했습니다연대는 서기 530발굴현장이 얼어붙었습니다발해 건국은 698년 530년은 발해가 아니었다고구려 동북아 역사재단 김은국 연구위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건 고구려입니다연해주가 발해보다 170년 더 오래된 한민족의 땅이었다는 증거입니다” 베이징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단 하나의 샘플로 성급한 결론을 내린 비학술적 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도쿄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크라스키노 발굴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을 거론했습니다그리고 그 현장에는 한 젊은 고려인이 서 있었다할아버지가 평생 조선 땅이라 부르던 그곳에서 1,500년 전 조상들의 흔적이 나오는 걸 보며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도대체 연해주에서 무슨 일이 진 걸까요?

45년간 한국 학자들이 이 땅을 판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그리고 왜 중국은 이토록 긴장하는 걸까요저는 드미트리 박입니다러시아 이름이지만 할아버지는 평생 저를 박동훈이라 부르셨습니다.

 

고려인 4세입니다증조할아버지는 1937이 연해주 땅에서 화물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당하셨습니다. 6,000km를 넘는 여정 그 광장에서 증조할머니와 어린 삼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아버지는 1930년생 강제이주 당시 겨우 7살이었습니다하지만 평생 연해주를 잊지 않았습니다. “동훈아우리는 조선사람이다크라스키노그곳이 우리 조상이 살던 땅이다절대 잊으면 안 된다.“

2022년 겨울할아버지 자가 돌아가셨습니다유언은 간단했습니다. “크라스키노에 가봐라한국 사람들이 우리 조상의 흔적을 찾고 있다

 

저는 울디 보스토크에서 역사교사로 일하고 일합니다러시아 역사는 잘 압니다하지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우리 조상의 역사는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2023년 7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200km 저는 차를 몰아 크라스키노로 향했습니다두만강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할아버지가 평생 우리 조상의 땅이라 부르던 곳 차창 밖으로 끝없는 평야가 펼쳐졌습니다저 어딘가에 할아버지의 기억이 묻혀 있었습니다크라스키노 마을 입구 -러 공동발굴 45주년 기념”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발굴현장은 바닷가에서 700km 떨어진 평지에 있었습니다텐트 몇 개와 발굴구역을 표시한 말뚝들그리고 그곳에 한 노인이 서 계셨습니다블라디슬라프 볼딘 박사 러시아 극동 역사연구소 명예교수.

박동훈 할아버지 손자 맞습니까?” 볼딘 박사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자주 말씀하셨어요언젠가 손자가 이곳을 찾아올 거라고.” 박사님은 저를 발굴현장으로 안내하셨습니다걸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1987년부터 시작됩니다.” 1980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젊은 고고학자 블라디슬라프 볼딘은 크라스키노 바닷가에서 이상한 흙무더기를 발견했습니다.

 

이건 자연적인 언덕이 아닙니다.” 시험발굴을 시작했습니다깊이 1m를 파 내려가자 기왓조각이 나왔습니다. 2m, 성벽의 돌 기초가 드러났습니다渤海 유적이었습니다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1980년 소련 국경 지역 발굴은 군사기밀과 직결되었습니다크라스키노는 두만강에서 북쪽으로 60km, 중국 훈춘에서 동쪽으로 40km KGB가 수시로 감시하는 전략 요충지였습니다볼딘 박사는 10년간 홀로 발굴을 이어갔습니다예산도 없었고인력도 부족했습니다여름마다 혼자 텐트를 치고삽을 들었습니다.

 

1990소련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12소련 해체 1992년 9월 30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했습니다바로 그달한국에서 첫 발굴단이 왔습니다볼딘 박사가 발굴현장을 가리키며 말씀했습니다. “당신 할아버지께서 2010년부터 거의 매년 이곳을 찾아오셨어요발굴현장을 멀리서 지켜보시며 많이 우셨습니다.”

저는 몰랐습니다할아버지가 이곳에 오셨다는 것을. 1992년 10한국학자들이 처음 왔을 때 당신 할아버지도 계셨어요발굴현장 옆 언덕에 서서 하루 종일 지켜보셨어요.

 

저녁에 제가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이곳에 연고가 있으십니까?’ 할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셨어요.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1937우리 가족 14명이 화물차에 실렸습니다. 7명이 카자흐스탄까지 살아서 도착했습니다.” 볼딘 박사의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그 순간 알았습니다.

이 발굴이 단순한 학술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이건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을 되찾는 일이라는 것을.” 1992년 첫 한-로 공동발굴  한국에서 온 학자는 5명이었다.

 

고구려 연구재단 소속 러시아 학자 3명과 함께 석 달간 작업했습니다첫해 성과는 놀라웠습니다흙을 쌓고 돌로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고구려식 축조법옹성 발견,:성문을 보호하는 방어구조 이것 역시 고구려 성곽의 특징하지만 가장 주요한 발견은 따로 있었다볼딘 박사가 발굴 구역 한쪽을 가리켰습니다돌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공간이 보였습니다. “고래그러니까 온돌 아궁이에서 굴뚝까지 이어지는 통로 폭이 22에서 30cm입니다. ‘디귿자로 꺾여 있어요완벽한 온돌 구조입니다.” 박사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6.54-34.47 “중국 학자들이 왔을 때 이걸 보고 할 말을 잃었어요중국에는 온돌이 없으니까요발해가 중국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온돌 앞에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저는 온돌 구들 옆에 앉았습니다손으로 돌을 쓰다듬었습니다.

 

갑자기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동훈아우리 증조할아버지 집도 온돌이었단다. 1937년 화물차에 실릴 때증조할머니가 방바닥 돌 하나를 주워가셨어카자흐스탄 황무지에서그 돌을 베고 주무셨지. “조선 땅 냄새가 난다고 하시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볼딘 박사가 조용히 옆에 앉으셨습니다. “당신 할아버지도 2010년 이 온돌을 보셨어요한참을 만지시더니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셨습니다. ‘돌아왔습니다증조할아버지저 왔습니다.’하고 중얼거리셨죠“ 박사님이 다른 발굴 구역으로 안내하셨습니다. “우물입니다.” 깊이 5m 윗부분은 원형아랫부분은 사각형 전형적인 고구려식 우물 구조입니다.“

 

이것도 중국에는 없는 방식입니다. 1992년부터 2023년까지 31년간 발굴 성과가 하나씩 쌓였습니다.

1995기와 가마터 발견발해가 이곳에서 직접 기와를 구웠다는 증거 1998불교 사찰 터 발견금당지그러니까 부처님을 모신 본당 터와 스님들이 기도하던 전각 터가 나왔습니다연해주에서 발굴된 발해 사찰 중 최대규모였습니다. 2003: ‘도융홍지명문 토기 발견 볼딘 박사가 설명했습니다. ”일본 학자들이 난리가 났어요이게 일본 승려 이름이라고 주장했죠발해-일본 교류의 증거라면서발해가 한국만의 역사가 아니라고 우겼습니다.“

 

한국 학자들이 반박했습니다. 727년부터 922년까지발해가 일본에 사신을 보낸 횟수가 34일본이 발해에 보낸 횟수가 15회 누가 누구한테 문화를 전해줬겠습니까? “박사님이 웃으셨습니다.

게다기 같은 해에 청동 낙타 상이 나왔어요서역 교류의 증거 편벽도 나왔는데이거 신라 장보고 상단이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형태였습니다발해가 얼마나 넓은 세계와 교류했는지 보여주는 거죠“ 저는 물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왜 45년이나 걸렸습니까?” 이 정도 성과면 10년이면 충분하지 않았나요?” 볼딘 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유물이 아닙니다. ” 증거입니다중국과 일본이 부정할 수 없는절대적인 증거.“ 박사님이 발굴 구역 가장 깊은 곳을 가리켰습니다. 2004년부터 우리는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발해 층 아래에 뭔가 더 있을 거라고 확신했거든요.” “뭘 찾으신 겁니까?” “2005주거지 맨 아래층에서 타고 남은 나무 조각목탄을 채취했습니다서울대학교에 보냈죠. AMS 연대측정이라고남가 탄 후 남아있는 탄소성분을 분석해서 정확히 몇 연도 것인지 알아내는 과학 기술입니다.”

 

결과는요?” 박사님이 잠시 말을 멈추셨습니다그리고 천천히 말씀하셨다. “2009년 7측정 결과가 왔습니다.” “서기 530” 저는 숨이 멎었습니다. “발해 건국은 698년입니다그런데 530년이라니” “이곳은 발해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박사님의 눈빛이 타올랐습니다. “이것은 고구려였습니다.” 530이 숫자가 왜 중요한 자 저는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고구려든 발해든다 오래전 나라 아닙니까하지만 볼딘 박사님의 말을 듣고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2009년 7측정 결과를 발표하자마자 베이징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중국에서요?”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증심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기관입니다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싸?” 박사님이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단 하나의 샘플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과학적이다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더 많은 샘플을 채취하셨습니까?“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간 17개 지점에서 목탄을 채취했습니다서울대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미국 애리조나대학 새 곳에 교차 검증을 의뢰했습니다.” 결과는요, “540, 530, 620, 840년 모두 고구려 시대부터 발해 시대까지 연속적으로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였습니다.”

 

박사님이 발굴 현장 지도를 펼쳤습니다. “성벽 구조를 보세요내성과 외성 이중 구조입니다. 2009년 마이크로 자기 촬영과 전기 측량으로 성 내부 우측에서 고구려 시대 내성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발해가 고구려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확장한 겁니다.” 저는 전율했습니다. “그럼 이 땅은?” “698년 발해가 건국되기 170년 전부터 한민족이 살던 곳입니다.” 그때 제 머랏속에 할아버지 목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동훈아, 1937년 우리를 화물차에 태울 때소련 장교가 이렇게 말했단다. ‘너희는 일본 간첩이다조선인은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대답하셨어. ‘우리 조상은 천 년 전부터 이 땅에서 살았소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요.” 천년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는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저는 물었습니다.

박사님왜 중국은 이렇게 반발하는 겁니까?” 러시아 땅인데 중국이 왜 신경을 씁니까? “볼딘 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동북공정을 아십니까?“ ”들어는 봤습니다만.“ ”2002년부터 중국이 시작한 국가 프로젝트입니다목표는 하나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의 역사다라고 못 받는 것왜냐하면 박사는 지도를 가리켰습니다.

 

중국 동북 3성 길림성요녕성흑룡강성 이 지역에 조선족 200

명이 삽니다만약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 역사라고 인정되면?”

조선족이 이 땅은 원래 우리 조상의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중국 입장에선 영토 분리 위험이 생기는 겁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발해를 중국 지방 정권으로 만들려는 거군요:” “맞습니다그런데 우리가 530년 고구려 증거를 찾아낸 순간중국 논리 전체가 무너졌습니다.” 박사님이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중국 주장은 이렇습니다. ‘발해는 말갈족이 세운 나라다.

 

고구려 유민이 일부 참여했지만주도권은 말갈족에게 있었다따라서 중국 역사다.’ 그런데 크라스키노에서 뭐가 나왔습니까?” “고구려 성곽고구려 온돌고구려 우물,“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게 아닙니다고구려 그 자체를 이어간 겁니다갚은 땅에서같은 방식으로연속적으로 살았습니다박사님이 2015년 발굴보고서를 꺼냈습니다. “성 내부 북서쪽 지역에서 땅을 21개 층으로 나눠 조사했습니다맨 위 표토층그러니까 풀과 흙이 섞인 층부터 시작해서 맨 아래 생토층사람 손이 닿지 않는 원래 땅까지 전부요.

 

깊이 2.3m. “왜 그렇게 세밀하게요, “중국이 계속 시비를 걸었거든요. ‘오염된 샘풀이다’, ‘지층이 뒤섞였다.’ 연대 측정이 틀렸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보고서에 지층 사진이 있었습니다각층 마다 색깔이 달랐습니다. “7세기부터 10세기까지발해 멸망 시점까지 쌓인 토층이 선명하게 구분됩니다그리고 그 아래고구려 층이 있었습니다중간에 단절이 없습니다연속성입니다.” 박사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이 땅에 사람이 끊임없이 살았다는 겁니다.

 

구구려 멸망 후에도발해건국 전에도계속 이곳을 지켰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당신 조상입니다이 땅을 떠나지 않고 지킨 사람들. “2019러시아 극동연구소 블라디슬라프 볼틴 박사가 학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제목은 크라스키노 발해 성의 성격 재규정“ 결론: ”크라스키노 성은 단순한 발해 주적이 아니다고구려 시대부터 발해까지 이어진 한민족의 연속 거주지이며고구려 축조 기술이 발해로 계승된 증거다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중국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2020중국 사회과학원이 반박 논문을 냈습니다. ”크리스키노성의 민족 구성에 대한 재검토“ 하지만 논리가 약했습니다이미 물리적 증거가 나온 상태였으니까요일본도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2021일본 도로쿠대학 역사학과가 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주제발해의 다민족성과 동아시아 교류” 발표내용 중 하나크라스키노에서 발견된 도융홍지‘ 명문은 일본 문화의 영향을 보여준다발해는 한반도만의 역사로 볼 수 없다. “하지만 한국 학계가 즉각 반박했습니다.

 

발해가 일본에 사신을 34회 보냈고크라스키노 연주성이 바로 그 출발지였다일본 승려 이름이 토기에 새겨진 것은 발해가 주도권을 가지고 교류했다는 증거다“ 볼딘 박사가 말했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왜 45년이 걸렸는지.” ’이건 단순한 발굴이 아닙니다역사전쟁입니다>“ 박사님이 발굴 현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를 빼앗으려 합니다일본은 다민족 국가로 희석시키려 합니다우리는 이 땅에서삽 하나로그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기고 계십니까볼딘 박사가 웃었습니다. “530년 이 숫자 하나가 모든 걸 바꾸었습니다이제 세계 어떤 학자도 발해는 중국의 역사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증거가 있으니까요.” 저는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45년이 왜 필요했는지왜 한국 학자들이 매년 여름이 추운 연해주까지 와서 땅을 팠는지왜 할아버지가 평생 절대 잊으면 안 된다.”라고 하셨는지볼딘 박사가 발굴 현장 옆 작은 창고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당신께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낡은 나무상자 하나를 꺼냈습니다.

 

열어보니 낡은 공책 몇 권과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당신 할아버지께서 2022년 돌아가시기 전제게 맡기신 겁니다. ‘손자가 언젠가 이곳을 찾으면 꼭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손이 떨렸어요공책을 펼쳤습니다할아버지 필체였습니다. “1937년 9월 21일 우리 가족 마지막 날새벽 4소련 군인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한 시간 안에 짐을 싸라한 사람당 16kg만 가져갈 수 있다. ‘어머니는 쌀 한 포대를 쌌다아버지는 농기구를 챙겼다증조할아버지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셨다그저 마루에 앉아 손으로 온돌을 쓰다듬으셨다.”

 

이 집은 내 할아버지가 지었다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이 땅에 살았다우리는 여기를 천년을 살았다.’ 증조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화물차에 실릴 때증조할머니가 온돌 하나를 치마 속에 숨기셨다군인이 빼앗으려 했지만할아버지가 러시아어로 이건 그냥 돌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군인이 비웃으며 그냥 두고 갔다. “카자흐스탄까지 6,135km 42일이 걸렸다화물차 안에서 증조할머니와 작은할아버지사촌 동생 둘이 세상을 떠났다몸을 기차 밖으로 던졌다묻을 시간도 없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2010년 7월 15일 크라스키노 첫 방문“ ”73년 만에 돌아왔다우리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러시아 사람들이 새로 지은 집들만 가득했다증조할아버지 집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바닷가 쪽에서 한국 사람들이 땅을 파고 있었다다가가서 물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김은국이라는 젊은 학자가 대답했다.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입니다이곳은 우리 조상이 살던 곳입니다나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 73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조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2015년 8월 3” “오늘 김은국 박사가 나를 불렀다. ‘박 선생님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발굴 구역 깊은 곳에 온돌이 나와 있었다. 1,500년 전 집이라고 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손으로 온돌 돌을 만졌다차갑지만 따뜻했다증조할머니가 카자흐스탄까지 가져갔던 그 돌이 생각났다.” “증조할머니는 1955년 돌아가셨다임종 직전까지 그 돌을 베고 주무셨다. ‘조선 땅 냄새가 난다고 하시면서 나는 그것이 노인의 망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알았다망상이 아니었다증조할머니는 진짜로 조선 땅을 안고 주무신 거였다이 온돌과 똑같은 온돌 위에서우리 조상들이 천년을 살았다.” “2019년 5월 12” “오늘 볼딘 박사가 논문을 보여주었다. ‘크리스키도 성은 530년 고구려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1937소련 장교가 우리를 일본 간첩이라고 했을 때증조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우리 조상은 천년 전부터 이 땅에 살았다.’ 장교가 비웃었다 증거가 있느냐?” “82년이 지났다이제 증거가 나왔다천년이 아니라 1,500년이다.” “오늘 볼딘 박사가 논문을 보여주었다.

 

증조할아버지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 “2022년 6월 20일 내 생일 92세가 되었다몸이 많이 안 좋다이번 여름 크라스키노에 가지 못할 것 같다.” “손자 드미트리에게 이 공책을 남긴다동훈아 네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나는 평생 러시아 사람으로 살았다러시아 이름을 쓰고러시아를 말하고러시아 음식을 먹었다하지만 단 한 번도 러시아 사람이 된 적은 없다.” 나는 조선 삶이다증조할아버지가 그랬고나도 그렇고너도 그렇다.

 

이건 핏줄의 문제가 아니다기억의 문제다.“ ”크라스키노에 가봐라 한국 사람들이 우리 조상의 흔적을 고 있다땅속 깊은 곳에서, 1,500년 전 조상들의 집이 나오고 있다그것을 보고 와라“ ”그리고 기억해라 우리는 이 땅을 빼앗겼지만이 땅의 역사는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간다증조할아버지증조할머니가 계신 그곳으로 하지만 너는 남아라 그리고 이 이야기를 네 아이들에게 전해라” “우리는 조선 사람이다절대 잊지 마라” 공책을 덮었습니다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볼딘박사가 조용히 말씀했습니다.

 

당신 할아버지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간 매년 이곳을 찾아오셨습니다그리고 매번 같은 일을 하셨어요” “무엇을요온돌 앞에 앉아서한국 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종일 지켜보셨습니다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그저 웃으셨습니다.” “2021년 여름이 마지막이었습니다몸이 많이 안 좋으셨어요제가 내년에 또 오십시오라고 했더니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됐습니다내가 찾던 것을 찾았습니다우리 조상이 진짜로 여기 살았다는 증거를 이제 안심하고 갈 수 있습니다.”

 

박사님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박사님제 손자가 언젠가 이곳을 올 겁니다그때 이 공책을 꼭 전해주십시오” 저는 발굴현장으로 다시 걸어갔습니다온돌이 있는 곳으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손을 온돌에 갖다 댔습니다차갑지만 따뜻했습니다. 1,500년 전 이 돌 위에서 제 조상들이 밥을 먹었습니다. 1937증조할머니가 이 돌 하나를 품에 안고 6,000km를 갔습니다. 2010할아버지가 이 온돌을 만지면서 울었습니다. 2023저는 이 온돌 앞에 앉아 있습니다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동훈아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네 할아버지 저도 이제 알았습니다.” “절대 잊지 마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볼딘 박사가 옆에 앉으셨습니다. “당신 할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연해주 고려인 중 2000년대 이후 이곳을 찾아온 사람이 3,000명이 넘습니다.

대부분 당신 할아버지처럼 강제이주 2, 3세들이었어요그들도 또 같이했습니다발굴현장을 찾아와서온돌을 만지고울었습니다.” “이 발굴은 단순한 고고학이 아닙니다이건 귀환입니다” 박사님이 하늘을 올려다보셨습니다.

 

고려인들은 육체로는 1937년 쫓겨났지만역사로는 지금 돌아오고 있습니다한국 학자들이 45년간 그 길을 만들어주고 있는 겁니다.” 저는 그제야 이해했습니다왜 할아버지가 한국 사람들이 우리 조상의 흔적을 찾고 있다라고 하셨는지왜 할아버지가 매년 이곳을 찾으셨는지 왜 할아버지가 이제 안심하고 갈 수 있다라고 하셨는지 45년간의 발굴 이것은 단순히 유적을 찾는 일이 아니었습니다이것은 빼앗긴 역사를 되찾는 일이었습니다.

 

볼딘 박사가 저를 작은 사무실로 안내했습니다벽 한쪽에 두꺼운 책들이 빽빽이 꽂혀서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2021년까지우리가 낸 발굴보고서입니다” 손으로 책등을 쓰다듬으셨습니다마지막 책이 가장 두꺼웠습니다. “크라스키노 발해서 – 발굴 40년의 성과‘ 2021년 2월 15일 출판 김은국 박사와 제가 공동 집필했습니다.” 박사님이 책을 펼쳤습니다. 600페이지가 넘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후세계가 바뀌었습니다.” 2021년 5파리 유네스코 본부 세계고고학회가 열렸습니다주제 중 하나가 발해 유적의 재평가였습니다볼딘 박사가 발표했습니다.

 

크라스키노 성은 530년 고구려 시대부터 926년 발해가 멸망까지 약 400년 연속적으로 거주한 유적입니다. 17개 지점에서 채취한 목탄의 연대 측정고구려식 성곽 구조한국식 온돌고구려식 우물이 모든 증거는 발해가 고구려를 직접 계승한 국가임을 물리적으로 증명합니다.” 중국 학자가 반박을 시도했습니다. “말갈족의 역할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볼딘 박사는 차분히 대답했습니다. “말갈족이 발해국에 참여한 것은 사실입니다하지만 크라스키노에서 발견된 모든 문화층은 한민족 전통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온돌성곽 구조불교 사찰 양식 이것은 고구려 문화의 연속입니다.” 일본 학자가 질문했습니다. “발해의 다민족 성격은요?” “다민족 국가였던 것은 맞습니다하지만 지배 문화는 명확히 고구려 계승입니다크라스키노에서 나온 도융홍지‘ 명문은 발해가 일본과 교류했다는 증거이지일본문화에 종속되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발해가 일본에 34회 사신을 보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회의는 3일간 계속되었습니다최종 결론: “크라스키노 발해성 발굴 성과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한민족 국가임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했다.

 

중국의 발해=중국 지방 정권‘ 주장은 학술적 근거가 부족하다.” 볼딘 박사가 말했습니다. “이 결론이 나온 순간베이징이 공황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중국사회과학원이 급하게 반박 논문을 5편이나 냈거든요. 2021년 하반기에만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국제학계가 인정한 후니까요.” 박사님이 컴퓨터를 켰습니다학술논문 검색 사이트였습니다. “2021년 이후, ’크라스키노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국제 학술논문이 83편 나옵니다미국 32유럽 27일본 15중국 9” “중국이 제일 적네요” “중국은 더 이상 반박 논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

 

물리적 증거 앞에서는 정치 논리가 무용지물이거든요” 2022년 9서울 동북아시아재단이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주제: “크라스키노 발굴 성과와 동북아 역사 재조명” 17개국 학자 120명이 참석했습니다미국 하버드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 제임스 루이스가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크라스키노 발굴은 단순한 고고학적 성과를 넘어역사학 방법론의 승리입니다정치 논리가 아니라 물리적 증거로역사 왜곡을 막아낸 사례입니다“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 고고학자 한스 베르너가 발표했습니다.

 

우리 연구소가 크라스키노 목탄 샘플을 교차 검증했습니다결과는 명확했습니다. 530년 이 연대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과 교수 마크 바이밍턴이 말했습니다.

발해는 더 이상 동북아시아의 잊힌 왕국이 아닙니다크라스키노 발굴 덕분에 발해는 이제 고구려를 계승한 한민족 국가로 국제학계에 등재되었습니다. “볼딘 박사가 저를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45년간의 발굴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박사님이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연해주는 1860년 러시아 영토가 되었습니다정치적으로 한국은 이 땅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습니다하지만 박사님이 발굴보고서를 쌓아 올렸습니다역사적으로학술적으로이 땅이 이제 한민족의 역사 공간입니다세계가 인정했습니다중국도일본도더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게 역사적 편입입니다.” 저는 전율했습니다. “땅은 빼앗겼지만그 땅의 역사는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45년간 한국학자들이 삽으로붓으로논문으로 싸워서 지켜냈습니다.”

 

박사님이 창밖을 가리켰습니다크라스티노바닷가가 보였습니다. “2025년 지금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아십니까?” “무엇입니까?” “고려인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소련 붕괴 후 중아시아에서 살던 고려인 2, 3세들이 연해주로 재이주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약 2만 명이 왔습니다그들이 왜 왔는지 아십니까?” 박사님이 저를 바라봤습니다. “할아버지 세대가 이곳이 우리 땅이라고 말했지만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하지만 크라스티노 발굴 이후 달라졌습니다. “정말로 우리 조상이 살던 땅이구나,’ 이 증거를 봤으니까요당신처럼요.“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연해주 고려인 커뮤니티는 2023년 블라디보스토크에 고려인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크라스키노 발굴 성과를 전시할 예정입니다러시아 정부가 승인했어요.“

러시아가 왜요?“ ”러시아로서도 나쁘지 않습니다자기네 땅에서 중요한 역사 유적이 나왔으니까요게다가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2025년 한-러 수교 35주년이거든요. “박사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할아버지는 평생이 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

 

”1937년 화물차에 실렸을 때소련 장교가 너희는 이 땅과 아무 상관없다라고 했습니다할아버지 세대는 평생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습니까요증거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증거가 있습니다. 530년부터 926년까지, 400년간 우리 조상이 이 땅에 살았다는 물리적 증거, 17개국 학자가 인정한 증거“ 박사님이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당신 할아버지는 승리하셨습니다. 82년 만에“ 저는 울었습니다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화물차에서 실려 가신 모든 분들카자흐스탄 황무지에서 돌아가신 모든 분들 평생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고 외치신 모든 분들

 

이제 세계가 인정했습니다이 땅은 당신들의 땅이었습니다해가 지고 있었습니다크라스키노 바닷가에 석양이 붉게 물들었습니다저는 발굴 현장 한가운데 섰습니다. 1,500년 전 고구려 사람들이 이 바다를 바라봤던 것입니다. 1,000년 전 발해 사람들이 이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을 것입니다. 90년 전 증조할아버지가 이 땅에서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지금저는 여기서 있습니다땅은 빼앗겼습니다하지만 역사는 돌아왔습니다.

 

45년간의 전쟁 삽하나로 붓 하나로논문 하나로 한국 학자들이 싸워서 이겼습니다연해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민족사 공간입니다. 2023년 7월 18일 저녁크라스키노 바닷가에 혼자 앉아 할아버지 공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동훈아우리는 러시아에 사는 조선 사람이다이 땅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저는 휴대전화를 꺼내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여보우리 아들 이름 정해서 박준호 한국 이름으로 지을 거야.“ ”드미트리 괜찮아?“

 

할아버지가증조할아버지가 천 년을 이 땅에 살아서 증거가 지금 내 눈앞에 있어우리 아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해줄 거야“  다음 날 아침떠나기 전 볼딘 박사께 인사드렸습니다. “박사님저는 역사 선생님입니다이제 수업에 한 챕터를 추가할 겁니다.“ ”무슨 챕터요?“ ”연해주에 살았던 한민족사‘530년부터 1937년까지 그리고 45년간의 발굴 이야기까지“ 박사님이 제 어깨에 손을 얹으셨습니다. “당신 할아버지께서 원하셨던 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저는 고려인 4박동훈입니다할아버지는 82년간 증거 없이 우리는 조선 사람이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그 증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45년간 땅을 파서, 1,500년 전 조상의 집을 찾아냈습니다연해주는 정치적으로 되찾을 수 없는 땅입니다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되돌러 왔습니다세계가 인정했습니다중국도 일본도 이제 부정할 수 없습니다이것이 진짜 승리입니다할아버지 이제 압니다할아버지께서 지키려 하신 건 기억이 아니라 존엄이었습니다한국이 해냈습니다.

 

45년 걸렸지만해냈습니다저는 제 아들 박준호에게도 이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우리는 조선 사람입니다절대 잊지 않겠습니다여러분이 일궈낸 나라가 연해주 땅속에서 1,500년 전 조상을 찾아냈습니다세계를 설득해서 빼앗긴 역사를 되찾았습니다자랑스러워 하십시오여러분 덕분입니다감사합니다. 45년 발굴, 539년 증거, 82년 만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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