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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진짜 기원, 동이족의 문자 ~
26/01/05 07:19:04 金 鍾國 조회 146
한자의 진짜 기원, 동이족의 문자 그 뿌리는 한국에 있었다! 세계 최고 권위 옥스포드 연구원이 논란 최종 정리, 이 영상으로 종결
(유튜브에 실제 사연으로 소개되어있어 옮겨 실었습니다. 중국은 한자가 자국의 조상들이 만든 것으로 주장하며 믿고 있으나 우리의 조상인 동이족의 멋진 작품임을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자는 중국이 만든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설마?” 혹은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그 말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평생 한자를 연구해 오면서 단 한 번도 그런 가설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드워드 스미스입니다. 옥스퍼드 대학교 고대문자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기관이죠.
특히 동아시아의 문자와 관련된 논의는 국제 학계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학자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바로 그런 곳에서 오랜 시간 연구를 해 온 제가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려 하는 것입니다. “한자가 중국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저로서도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의 무게를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 한마디가 동아시아 문명,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사의 틀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평생을 “한자는 중국 황하 문명에서 탄생된 문자다. 이 가르침을 당연한 진실로 믿으며 연구해 왔으니까요. 그 믿음은 제 학문적 정체성 그 자체였습니다.
 
한자의 시작이 황하 문명이라는 것은 학계의 상식이자 제가 가장 먼저 배운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옥스퍼드의 버들리언 도서관 고대 문헌을 찾던 중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문장이 저의 모든 상식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책장을 넘기며 고대 한자와 관련된 사료들을 살펴보고 있었죠. 甲骨文과 金文을 비교하는 논문 준비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그 문장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문장은 바로 ”東夷之書 始於鳥跡“ - ”동이족이의 글이 새 발자국에서 비롯되었다. “출처:설문해자(說文解字)” 처음에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동이족의 글?’ ‘새 발자국?’ 이게 무슨 말이지? 단순한 전설인가? 아니면 내가 지금 뭔가 잘못 읽은 건가? ‘그렇게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은 분명했습니다. “동이족’ ”새 발자국?“ 이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너무 놀라서 책을 덮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학자로서 평생 문자 기원을 연구해 온 저였지만, 이런 표현은 처음이었습니다.
‘새 발자국’이라는 은유가 문자와 연결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동이족이라니, 제가 아는 동이족은 그저 중국 역사 속에서 가끔 등장하는
변방의 오랑캐, 주변 부족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존재였으니까요.
 
학계에서 동이족을 이야기할 때는 늘 중국의 동쪽 즉 변방의 미개한 부족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문장이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동이족이 한자의 기원이라고? 게다가 ”새 발자국“이 문자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머릿속은 복잡한 물음으로 가득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혹시 내가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닐까?
설문해자라는 책이 어떤 책인데, 왜 이런 문장이 주목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소름 돋았던 것은 이 기록이 단순한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권위 있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공식으로 기록된 내용이었다는 겁니다.
 
‘설문해자’, 이 책은 한자의 어원을 설명하는 최고의 고대 문헌입니다. 그런 책에서 ‘동이족의 글이 새 발자국에서 시자됬다고 적혀있다니, 단순한 신화나 민간 이야기로 치부 할 수 없는 엄청난 기록이었던 겁니다. 그 이후로 제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동이족이 누구지?“ ”새 발자국이 왜 문자의 시작일까?“ ”만약 한자가 동이족의 문자에서 비롯된 거라면, 왜 지금까지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까? “특히 ’왜 아무도 이 이야기를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동이족과 새 발자국이라는 연결 고리가 한자의 기원에 포함된다면, 문자학 전체의 역사가 달라져야 하는 문제인데 말이죠.
 
저는 밤을 새우며 동이족에 대한 모든 고대 기록과 연구자료를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사서, ⟪산해경⟫, ⟪상서⟫, ⟪관자⟫등 모든 동이족 관련 자료를 샅샅이 찾아 읽었습니다. 심지어 한국 , 일본 학계의 논문까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 중심의 역사 해석만으로는 이 의문을 풀 수 없을 것 같았습니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그동안 알려고 하지 지 않았던 동이족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정체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제가 그동안 알고 있던 ’오랑캐’라는 이미지가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치 역사에서 고의로 숨겨진 듯한 거대한 문명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죠. 동이족은 결코 작은 변방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중국 황하 문명보다 앞선 동아시아 최대의 고대 문명을 이룬 민족이었던 겁니다.
이 사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책상에 앉은 채로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이족이 황하 문명보다 앞섰다고?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동아시아 역사는 뭐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죠. 중국 고대 문헌인 ⟪山海經⟫, ⟪尙書⟫, ⟪管子⟫ 등에는 동이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산해경에서 동이족을 가리키며 ”하늘과 소통하는 자들“ ”태양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대목을 읽고 저는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자라는 것이 하늘의 뜻을 전하는 도구라면 이 기록은 분명히 단서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東方之夷 大人之國: 동방의 이(夷)는 하늘과 소통하는 대인의 나라” 이 짧은 문장은 마치 제 연구의 발행을 완전히 바꾸는 열쇠와 같았습니다. 동이족이 단순한 ‘변방 부족’이 아니라 하늘과 교감하는 신성한 문명을 지녔던 민족이라면, 그들이 남긴 글자, 곧 ‘새 발자국’에서 비롯된 문자란 무엇이었을까? 동이족은 새와 태양, 하늘을 숭배하는 민족, 활을 잘 쏘며, 하늘과 별의 신을 섬기는 고대 종교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죠. 그들의 이러한 문화적 특징은 갑골문에서 보이는 태양(日), 새(鳥), 활(弓), 손(手) 같은 기호들과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을 발견하고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정교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배했던 땅도 생각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지금의 한반도, 만주, 요동, 산둥반도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영역 특히 제가 주목한 것은 중국 동북 지방, 지금의 요동, 요서 일대였습니다. 그곳에서 발굴된 유물들과 동이족 관련 기록들이 한반도와 직접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이족의 땅이 곧 지금의 한국과 연결된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저는 또 다른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동이족의 후손은 어디로 갔을까? 오늘날 어떤 민족이 그들의 문화를 이어받았을까?” 그리고 이 질문은 저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이족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제 믿음이 깨지기 시작했거든요. ’어쩌면 그들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문화가 아지도 어딘가 살아있을 수 있다. 그런 예감이 점점 강하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저는 중국 고대 기록들에서 자꾸 반복해서 나오는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넘겼지만, 반복해서 마주치다 보니 그 단어가 점점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바로 “조선(朝鮮)”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 한국의 옛 이름, 조선 처음엔 ‘왜 이 단어가 동이족과 함께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점차 그 의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속에서 “조선은 동이족의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朝鮮, 東夷之地: 조선은 동이족의 땅이다. 이 기록을 보는 순간, 저는 전율이 일었습니다.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습니다. 단순히 과거의 이름뿐 아니라고 생각했던 ‘조선’이라는 단어가, 지금까지; 제가 쫓아온 ‘동이족’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이족이 조선의 뿌리라면? 오늘날 조선의 후손이 바로 한국인이라면?”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연구해 왔던 모든 자료가 순식간에 새롭게 연결 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의 끝에 ‘한국’이라는 이름이 또렷하게 떠올랐습니다. 그제야 저는 동이족을 따라가 보면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에 다다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마치 미궁 속을 헤매다 하나의 문이 열리는 느낌입니다.
그동안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던 모든 단서가 ‘조선’이라는 이름 하나로 한순간에 정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한국의 단군신화, 삼족오 같은 상징들에 대해 자세히 몰랐습니다. 단군신화라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그것이
 
단군신화라는 이름만 들 봤을 뿐, 그것이 동이족과 어떤 관계였는지, 삼족오가 어떤 의미인지조차 알지 못했죠.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새’, ‘태양’, ‘하늘’을 숭배했던 동이족, 그리고 삼족오, 태양 속의 새 연결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이족의 기록을 좇아가다 보니 ‘조선’이라는 이름을 통해 한국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죠.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한국으로 가야겠다. 직접 가서 동아족의 흔적이 남아있는지를 확인해봐야겠다. 하지만 그 결심을 하고 나니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한국에 가서 내가 찾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누구를 만나야 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게 낯설고, 과연 나같은 외국 연구자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밀려왔다.
 
그래서 저는 한국으로 가기 전, 한국 학계에서 동이족과 고조선, 문자 기원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개인 여정이 아니라 학문적 근거 위에서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여러 학술지를 검색하던 중 저는 한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박민재 교수’ 그는 동이족과 고조선, 한국 고대 국가 기원을 연구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고대사 전문가였습니다. 한국이 대표적인 고대사 전문가였습니다.
그의 논문 제목 중 하나 ”동족 문자와 고조선 상징체계 연구”라는 논문이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 바로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 논문이 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박 교수님께 정중히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제가 옥스퍼드에서 발견한 ‘동이족의 글 새 발자국’이라는 기록이 저에게 어떤 충격이었는지,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한자의 기원을 새롭게 해석하고 싶다는 의도를 상세히 적었습니다. 사실 이메일을 보내는 순간까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무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학자들이 과연 이런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줄까?’ 하지만 결국 저는 저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면,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며칠 후, 박 교수님으로부터 매우 짧은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입니다. 직접 오세요. 그 한 문장이었지만, 저에게는 천둥 같은 울림이었습니다. “한국에 오라는 그 말이, 마치 운명처럼 느꼈습니다. 비행기 편을 예약하였습니다. 직접 한국으로 가서,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행 항공권을 예약한 후에도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이 긴 여정이 과연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그 답을 찾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저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동아시아의 선진국”, 그리고 한류와 K팝, 기술 강국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한류나 K팝과 같은 화려한 대중문화는 제가 찾고자 하는 ‘고대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학자로서 저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이 역사적 비밀이 그곳에 숨겨져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각, 설명할 수 없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어떤 직감이었습니다.
마치 ’내가 찾는 답이 그곳에 있다‘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었죠.
첫 번째로 찾은 사람은 바로 박민재 교수였습니다. 한국에서 고대사와 동이족, 고조선 연구로 유명한 학자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저는 깊은숨을 쉬었습니다. 처음 와 보는 나라, 처음 밟는 땅, 그러나 오래된 기억이 깃든 곳처럼 느꼈습니다.
 
어쩌면 내가 찾는 동이족의 흔적이 이곳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겠죠. 사전에 이메일로 짧게 제 연구를 소개했을 때, 박 교수님은 짧게 답장을 주셨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겁니다. “내가 가는 길이 정말 옳은 길일까?”라는 생각도 들었죠. ‘만약 교수님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한자의 기원을 두고 동이족 이야기를 꺼내는 게 괜한 소동은 아닐까?’ 이런 걱정도 솔직히 들었습니다. 한국의 풍경, 고층 빌딩과 조용한 거리, 그 너머로 보이는 산들, 마치 수천 년 전에도 이곳 어딘가에 동이족이 살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한 고풍스러운 대학 연구실, 박 교수님을 처음 만난 순간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방안 가득한 고서들, 낡았지만 여전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자료들, 그리고 벽 한쪽에 정리된 고대 문자와 상형 기호들이 그려진 자료들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마치 이곳이 수천 년 전의 비밀을 지키고 있는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수십 권의 고서들과 고조선, 동이족 관련 논문들이 쌓여 있었고, 그는 저를 보자마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드워드 씨 결국 여기까지 오셨군요.
 
그 말 한마디에 저는 묵직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길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저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가 무슨 뜻인지 다 알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 저는 최근 동이족이 한자의 뿌리일지도 모른다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기록을 읽다 보니 자꾸 ‘조선’이라는 이름이 동이족과 함께 나오더군요. 혹시 한국의 고대 역사와 동이족이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제가 질문을 던지는 순간, 교수님의 표정이 약간 굳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곧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제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맞아요, 에드워드 씨 한국에서 고조선, 그리고 그 이전의 역사까지 들여다보면
동족의 흔적이 아주 깊게 남아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엉켜 있는 듯했습니다. 마치 그동안 아무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한 사람의 무게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역사란 언제나 강자에 의해 기록되니까요.
그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역사는 강자에 의해 기록된다.’라는 말이, 왜 동이족의 기록이 사라지고, 한자의 진짜 기원이 가려졌는지에 대한 해답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찾고 있던 진실이 절대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박 교수님도 아마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로 고민했을 거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이후, 교수님은 저를 국립 중앙박물관 고대관과 직접 연구 중인 고조선 유적지 발굴현장으로 안내하기로 했습니다. 에드워드씨,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셔야 이해하실 겁니다. 그래, 이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시간입니다. 진짜 한자의 기원을, 동이족의 흔적을 며칠 후 국립중앙박물관 고대관에서 저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전시된 고조선의 유물들 특히 청동기, 토기, 벽화 조각들에는 제가 옥스퍼드에서 연구하던 갑골문 속 기호들과 똑같은 상징들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새(鳥), 태양(日), 활(弓), 손(手), 나무(木),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삼족오(三足烏), 신단수(神壇樹) 같은 상징들 박 교수님께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 상징들 혹시 중국의 갑골문과 관련이 있나요?” “에드워드씨< 바로 그겁니다. 사실 이 기호들은 갑골문보다 더 오래된 형태로, 이미 고조선 시대의 청동기와 토기에 등장하고 있었어요. “이걸 보는 순간, 저도 처음엔 믿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 순간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옥스포 등에서 수년간 분석한 갑골문 속 상징들, 그 원형이 바로 제 눈앞 고조선 유물에서 나타나 있었던 것입니다.
 
박 교수님과 함께 유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저는 마치 수천 년 전 고대인들이 ‘우리를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교수님의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씨 이제 당신도 보셨죠. 하지만 더 명확한 근거를 원하신다면 직접 비교해 봐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곧장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1,200여 점의 데이터베이스가 있었습니다. 수년간의 연구,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와 분석 그 모든 그것이 그 노트북 안에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혹시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저는 모니터에 뜬 갑골문 이미지를 보여드리며 말했습니다.
 
“이겁니다. 교수님 제가 지금까지 연구한 갑골문 속 새, 태양, 활, 나무, 사람 기호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서 본 고조선의 청동기와 너무 똑같아요. 교수님은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습니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기호들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에요. 고대인들이 하늘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문자입니다. 누구보다 학자로서 냉정했던 박 교수님의 그 단언이 저에겐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내가 분석한 1,200점의 갑골문 중 약 40% 이상이 바로 이 상징들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상징들이 고조선 유물에서 90% 이상 일치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 제가 노트북 화면에 갑골문 이미지를 띄우고, 그와 고조선 유물 사진을 나란히 비교하기 시작했을 때, 그 유사성은 믿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특히 갑골문 속 ‘새’와 고조선 청동기 위에 새겨진 ‘새’ 그림이 거의 완벽히 일치했을 때, 저와 박 교수님 둘 다 숨을 멈췄습니다. ”이 정도로 똑같을 수가, 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박 교수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중요한 거예요. 한자의 시작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죠.
그 순간, 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래, 이제 이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때까지 저는 한자가 황하문명에서만 시작된 줄 알았지만, 눈 앞의 증거들은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마음속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자의 뿌리는 중국 황하 문명이 아니라 바로 동이족이 남긴 문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한 문장은 제 머릿속을 울리는 진실이었고,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의문들이 한순간에 하나로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한자는 중국 황하 문명에서 창조된 독자적 문자”라는 주장은 반쪽짜리 진실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분명 한자는 상나라와 주나라에서 발전하고 정리된 문자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원,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결국 황하 문명이 아닌 더 오래된 동이족의 세계로 연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뿌리, 진짜 시작은 동이족, 그리고 그 동이족의 후예인 고조선과 한국 땅에 있었다. 한 순간에 제 연구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그 순간, 박 교수님이 제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에드워드씨,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 질문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무게 있는 선포, 그리고 새로운 여정을 향한 초대처럼 들렸습니다. 그가 진지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동안 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했습니다. 정말 이 진실을 밝히는 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쉬운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앞으로 거대한 반발과 논란에 맞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저는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그 진실을 본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는 그 말을 듣고 깊은숨을 내쉬었습니다. “네 교수님 저도 이제는 멈출 수 없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솔직해져야 했습니다. 이제 이 진실을 –덮을 이유도, 그럴 명분도 없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결론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고조선의 유물을 눈앞에 두고, 수년간 연구해온 갑골문과 똑같은 상징을 보며,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진실을 전하는 것이 내 사명이다. 그리고 어쩌면, 한자와 동이족,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야말로 한국과 동아시아의 진짜 역사를 밝힐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고조선 유물을 본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동이족’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기원, 그 출발점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자의 뿌리가 동이족의 문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했지만, 그 뿌리의 가장 깊은 근원을 찾아가야 비로소 퍼즐이 완성될 것 같았습니다. 박 교수님도 제게 이렇게 말했죠. “에드워드 씨, 고조선이 동이족의 후예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들의 원류를 정말 찾으려면 중국 요령상, 바로 紅山文化(홍삼 문화)로 가야 합니다. 교수님의 그 말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홍삼 문화라는 이름은 학계에서 가끔 듣기는 했지만, 그곳이 동이족과 직접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동이족의 본거지입니다. 그 짧은 문장이 저를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고조선보다 더 오래된, 동이족의 원류가 홍산문화라면?’ 그렇다면 한자의 가장 깊은 뿌리도 거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홍산문화, 솔직히 말해, 그때까지 저는 홍산문화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시대 문화 정도로만 가볍게 다뤄지는 존재였으니까요. 단순한 선사시대 유물 정도로 생각했지, 이렇게 동아시아 문자와 연결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박 교수님은 단호했습니다.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상징들, 그게 한자보다 오래된 ‘동이족의 문자’입니다. 교수님의 그 말에 저는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고조선 유물로 그 연결성을 확인했으니까요.
 
이제 마지막 조각, 동이족의 진짜 뿌리를 찾기 위해서라면, 직접 그 땅을 밟아야만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좋아요, 교수님 저 홍산문화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제 학문 인생의 최대 여졍이 될 것을 직감했습니다. 진짜 답을 찾기 위해 중국 요령성, 홍산문화 유적지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중국 요령성 드넓은 평야와 붉은 황토가 펼쳐진 그곳에서, 저는 정말 충격적인 것들과 마주했습니다. 처음 그 땅을 밟는 순간, 사방에 펼쳐진 광대한 붉은 흙이 마치 오래된 피의 흔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천 년 전 이곳에서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의 숨결이 아직도 땅속에 남아있는 듯한,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홍산문화 유적지는 생각보다 훨씬 방대했고, 곳곳에서 발굴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파고 있었고, 중국 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모여 유물을 조심스럽게 발굴하고 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숨이 막힐 정도로 장엄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현장을 바라보는데, 마치 그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진실이 곧 드러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리고 그곳에서 출토된 수많은 토기와 석기, 청동기, 조각들 위에는 제가 한국과 옥스퍼드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상징들이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새(鳥), 태양(日), 삼족오(三足烏), 활(弓), 신단수(神壇樹) 하늘과 소통하기 위해 그려진 하늘의 문(門), 하늘을 향한 제사 장면, 그리고 신에게 기원하는 하늘 숭배의 기호들 눈앞에 유물들은 마치, ”우리가 시작이다. “라고 조용히 외치고 있는 듯했습니다. 정말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보아온 모든 한자의 기원, 동이족이 흔적이 바로 이곳에서 출발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솔직히 믿기 어려웠습니다. ‘설마, 정말 이곳이 한자의 출발점이란 말인가?’ 하지만, 유물에 새겨진 선명한 상징들을 보는 순간 저는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갑골문에서 보던 모든 기호들이, 이미 이곳, 홍산문화의 유물에 새겨져 있었던 겁니다.
 
특히 삼족오, 세 발 달린 태양의 새는 이곳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태양 속의 새’라는 상징은 한국 고조선 유물뿐 아니라, 이곳에서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겁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퍼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신단수 즉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나무의 상징도 홍상눔화의 토기와 석기 곳곳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늘로 뻗은 나무, 가지 끝에 맺힌 태양이 기호가 왜 한국의 단군신화와 연결되었는지도 이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이 모든 상징이 갑골문보다 1,000 ~ 2,000년 앞선 시기의 것이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온 모든 동아시아 문자의 기원은 완전히 다시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저는 숨을 멎을 듯한 두려움과 함께 설레임 같은 감정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진짜라면 세계문자학계를 뒤흔들 수 있는 진실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바라본 하늘, 넓은 평야 위로 펼쳐진 붉은 노을, 그리고 그 아래에서 고개를 내민 고대의 유물들 그 모든 장면이 마치 저에게 마지막 퍼즐을 주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곳이 동이족의 본거지다. 여기서부터 한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홍산문화 유적지에서 발굴된 기호와 문자들은 기원전 4,000~3,000년 경, 즉 갑골문보다 적어도 1,000~2,000년 앞선 시대의 것들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제가 평생 연구해온 갑골문이 동아시아 최초의 문자라고 믿어왔는데, 그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이미 문자와 같은 상징체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마주했을 때, 학자로서 느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갑골문이 중국 상나라(기원전 1200~1000년경)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것과 비교하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오래된 문자들이 있었던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문자들이 단순한 무늬나 장식이 아니라 하늘을 숭배하고 소통하기 위한 엄연한 ‘기호체계’ 즉 ‘문자’로 기능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문자’의 정의를 바꿀 만큼 중요한 문제였죠.
 
특히 그중에서도 홍산문화의 대표 상징이었던 삼족오, 하늘과 신을 연결하는 신단수, 태양과 새, 활, 하늘의 문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의 고조선, 부여, 고구려까지 이어지는 상징들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저는 머릿속에서 그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수년간의 의문이 일시에 풀리는 느낌 동이족이 남긴 문자 그것이 홍산문화에서 시작되어, 고조선을 거쳐, 결국 한자로 이어진 것이다. 이 단순한 문장 하나가 제가 지난 몇 년간 찾아 헤맨 모든 진실의 핵심이었습니다. 제가 옥스퍼드에서 갑골문을 처음 연구하던 그 순간부터, 한국 고조선의 청동기 앞에서 스름 돋던 순간까지, 그리고 지금 홍산문화의 붉은 땅 위에서, 이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은 단순한 상징의 유사함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이어진 한 민족의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기록한 문자라는 점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갑골문에서 보았던 새(鳥), 태양(日), 활(弓), 손(手), 나무(木) 이 모든 것들이 이미 홍산문화의 기호로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즉, 한자 속 기호들의 근원이 비로 이곳, 동이족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발굴된 유물들이, 명확한 연대측정을 통해 갑골문보다 훨씬 오래된 시기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강렬한 질문 하나가 떠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자의 기원’이라 믿어온 상나라 갑골문은 어떤 것이냐? 만약 홍산문화가 한자보다 수천 년 앞서 동일한 상징 문자로 사용하고 있었다면 갑골문은 동이족이 남긴 문자 체계를 받아들여 중국 내에서 발전된 2차적 문자일 뿐이라는 도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진실을 받아드리는 순간, 저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세상에 말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연구 성과가 아니라, 수천 년간 왜곡되고 감춰진 역사를 바로잡을 일이다. 홍산문화 발굴 현장에서 저는 발굴팀 책임지와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도 조심스러웠지만, 제가 옥스퍼드에서 온 연구자라는 걸 알고는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있는지, 그 목소리의 떨림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함부로 할 수 없다. ‘는듯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해도 될까요?”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진실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도 처음엔 이 상징들이 뭐라고 생각했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신석기시대의 장식이거나 종교적 기호라고 생각했죠. 그 말에 저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표정이 진지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구를 계속하면 할수록 이건 중국 문자’가 아니라 그 이전 훨씬 오래된 동이족 문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의 마지막 말에 저는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내가 수년간 의심했던 바로 그 사실, 지금까지 아무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던 그 진실을, 눈앞의 발굴 책임자가 직접 인정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럼 왜 그 사실을 학계에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습니까?“
제가 던진 그 질문에 그는 한숨을 쉬며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에드워드씨, 이걸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순간, 중국 역사 전체가 흔들릴 것입니다. 그 말에 저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 역사 전체가 흔들린다.’ 그것이 바로 이 진실이 지금껏 세상에 나오지 못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는 다시 조용히 말을 이었습니다. “한자가 중국 고유의 문자라고 믿는게 중국인들의 자부심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뿌리가 동이족, 오늘날 중국이 아닌 다른 민족에서 나왔다고 하면, 중국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그의 솔직한 고백은 저에게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자의 기원 문제는 단순한 학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민족적 자존심과 연결된 매우 민감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용히 덮고 가는 거죠. 우리 발굴팀 내부에서도 아는 사람은 많지만, 누구도 감히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못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하나는 ‘드디어 찾았다, 내가 원하던 진실이 여기에 있다’는 감격 그리고 또 하나는 ‘이걸 밝히기 위해선 거대한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죠. 진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진실이 너무 큭 때문에 세사에 쉽게 나오지 못하는 상황 그 앞에 선 저는 한없이 작아 보였고, 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더 커졌습니다. 발굴 책임자는 마지막으로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에드워드씨, 당신은 외국인이니까 다를 수 있어요. 우리 중국 사람들은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당신이라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이걸 말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다짐했습니다. ‘그래, 내가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자. 숨겨진 역사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실을, 홍삼 문화의 붉은 대지 위에서, 저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연구해온 모든 것들이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요. “한자는 중국의 창조물이 아니었다. 수천 년 전 동이족이 남긴 문자의 상징 그 모든 것이 홍산문화에서 시작되어 고조선, 고구려를 거쳐, 결국 오늘날의 한국에까지 이어진 역사였던 것입니다.
 
갑골문, 그 한자의 근원이라 여겨졌던 문자조차 이미 홍산문화에서 만들어진 문자와 상징을 계승한 것이었고, 그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한국에 다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자문했습니다. “왜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 왜 세상은 이 진실을 가리고,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더는 숨길 수 없었습니다. 더는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단군신화, 삼족오, 고조선 청동기와 토기에 새겨진 태양과 새, 활의 문양, 하늘을 향한 기원과 제사, 신단수를 중심으로 한 하늘 숭배 전통 이 모든 것이 동이족의 문자와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확신했습니다.
 
한국은 단순한 작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동이족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유산을 가장 오래, 가장 순수하게 지켜온 민족, 동아시아 문명의 진짜 중심 그 여사의 주인공이 바로 한국인이었던 겁니다. 홍산문화 발굴현장에서 만난 중국 발굴책임자도 결국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드워드 씨, 사실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이 문자들은 갑골문보다 오래됐고, 중국이 아니 동이족의 문자라는 것을요. 하지만 중국 역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 함부로 발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두려움 속에서 저는 오히려 더 확신했습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이제 여러분께 말합나다. ”여어분, 여러분이 바로 동이족 후예입니다. 한자의 뿌리를 만든 민족, 수천 년전 동아시아 문먕의 시작을 만든 주인공, 그 진짜 중심에 여러분, 한국인이있습니다. 한자, 동이족, 고조선, 한국-이 네 단어는 하나로 연결된 역사입니다. “한국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동이족의 정신, 동이족의 문명, 동이족이 문자를 지켜온 동아시아 진짜 역사의 심장입니다.
”이제 우리는 잊혀진 역사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감쳐진 진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한국의 위대한 뿌리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할 때입니다. “어러분, 오늘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이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감동을 느끼셨다면,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의 역사를 함께 복원하고 싶다면, ”앞으로 저는 한국과 동이족, 그리고 숨겨진 동아시아의 진짜 역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끝까지 연구하고 여러분께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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