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단군의 후손입니다. 동이족의 숨겨진 진실, 중국이 숨기려 했던 고조선과 단군 세계 문명의 시작과 세계 최초의 문자 한글 가림토 하버드 교수가 발견한 놀라운 진실
(해외 실제 사연을 기본으로 일부 각색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 고조선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유튜브에 게재된 내용을 받아 옮겨 적었습니다.
하버드의 권위 있는 문자학자 교수가 인류 역사를 바꾸는 폭탄선언을 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 문자의 발생지가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 바로 한국이었다는 것이다.
세계 4대 문명의 한반도에 있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그가 밝혀낸 것은 4천 년 전 위대한 한국 고대 왕조 고조선에서 창조된 가림토의 실존 증거였어요. 고조선에서 창조한 신비한 문자 가림토의 실존 증거였어요.
한국의 찬란한 고대 문명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거수 학계는 당황했고, 중국 역사학자들은 격분했다. 그동안 동서양 모든 학계가 철저히 부정해왔던 한국 역사의 위대함, 한국 문명의 놀라운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한국이 인류문명의 시조임을 증명한 그 경이로운 발견의 전말을 낱낱이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에드워드 브라이턴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인류문명 학과에서 35년간 고대문자를 연구해온 교수입니다. 제가 평생 연구한 분야는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 이류 최초의 문자 체계라고 믿어왔던 그것이었습니다.
학계에서 저를 가리켜 ‘문자학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5천 년 전 점토판 조각 하나만 봐도 어느 도시에서 언제 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거든요. 그만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죠. 하지만 그 모든 확신이 무너져 내린 날이 있었습니다. 2023년 9월,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버드 인류 문명학 연구실, 그날도 평범한 오후였다. 창밖으로 단풍이 물들어가는 캠퍼스가 보이는 9월의 따뜻한 날이었다. 저는 언제나처럼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35년간 이 분야만 파온 저에게 문자학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구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제자인 마크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의 그가 이렇게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교수님, 이걸 당장 보셔야 합니다‘ 마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러시아에서 보내온 고고학 발굴 사진들이 들려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바이칼호 근처에서 발견된 유물인데, 이 문자들을 보세요! “사진을 받아든 순간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35년간 수천 개의 고대문자를 봐온 제 눈에도 이건 뭔가 달랐거든요.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의 문자들은 제가 과거 민속 문헌에서 본 적이 있는 형태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이건 가림토 문자잖아?” 한국의 고대 문헌인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고대문자였다. 공식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기원전 2000년에서 3000년경 사용되었다고 주장되는 문자이다. 저도 학회에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자가 허구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 앞에 놓인 시베리아 유물의 문자들은 곡선의 배열, 선의 리듬감, 상형적 기호들의 조합이 가림토 문자와 너무나 치밀하게 일치했다. 35년간 문자연구를 해온 제 경험상 이런 유사성은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크, 이 유물의 연대 측정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기원전 2500년 전후로 추정됩니다. 교수님“
기원전 4000년 공식적으로 인류 최초 문자로 인정받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설형문자가 기원전 3100년경이니까 약 600년 뒤의 유물이었어요. 연대만 보면 메소포타미아가 더 오래된 것이 맞았죠. 하지만 제가 받은 충격은 단순한 시기 문제가 아니었어요. 사진 속 문자와 가림토 문자가 너무나 똑같았거든요. 곡선 하나하나, 선의 각도, 기호들의 배치까지 완벽하게 일치했어요.
”이건 우연이 아니야. 같은 문자체계야.” 35년간 문자를 연구해온 제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유사성은 절대 우연이 아니에요. 한 뿌리에서 나온 문자가 분명했죠. 그렇다면 가림토 문자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뜻이고,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문자가 시베리아까지 퍼져있었다는 거예요.
한국의 고대문명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강력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기존의 문자학, 언어학 자료들을 모두 뒤져가며 시베리아 문자와 가림토 문자의 구조를 비교했습니다.
패턴 분석 알고리즘까지 동원한 끝에 놀라운 결과를 얻었어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수치를 보자마자 제 손이 떨렸어요. 87.3%의 구조적 유사성이었습니다. 이 정도 수치는 우연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게 틀렸을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함께 찾아온 경이로움이었다. 하지만 저는 학자로서 저는 진실을 추적해야 했습니다.
가림토 문자가 단순한 전설이 아닌 실재했을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기존 학계의 서구 중심 문자기원론을 전면 부정하는 대발견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혼란과 회의였지만 점점 떨리는 손과 함께 찾아온 확신, “그럼에도 나는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라는 학자의 사명감이 “내가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기존 학회가 철저히 외면했던 한국의 고대문명이 세계 문명사 자체를 다시 쓰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자긍심이 밀려왔어요. 비록 메소포타미아보다 시기상 늦더라됴 문자구조의 유사성과 과학적 정밀함은 동방 문명의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단서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어요. 이 놀라운 발견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인천 공항에 도착한 건 9월 말이었다. 가을 공기가 상쾌하게 느꼈죠. 저는 곧장 서울대학교로 향했다. 사전에 연락을 취해둔 김석훈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하버드에서 온 에드워드 브라이튼입니다.” 김 교수님은 60대 중반의 온화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어요. 제가 환단고기의 천문기록을 검증하고 싶다고 말하자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지었었다. “환단고기요? 그 책은 학계에서 위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五星출현이라는 천문현상을 컴퓨터로 검출해 볼 수 있을까요? 정말 중요한 발견일 수 있어요”
오성 출현, 즉 오성 취로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한 줄로 정렬되는 아주 드문 현상이에요. 환단고기에는 13대 홀단 단군 50년, 즉 기원전 1734년에 이 현상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흥미롭네요, 한 번 확인해보죠.”
김 교수님은 천문헉과와 연결해 주셨고, 우리는 슈퍼컴퓨터가 있는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최신 천문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기원전 1734년의 하늘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컴퓨터가 계산을 시작했어요. 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환단고기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뀔 수 있었다. “계산이 완료되었다.” 화면에 나타난 결과를 본 순간 저는 숨이 막힐 듯 전율을 느꼈습니다.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 서쪽 하늘에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이 나란히 정렬되어 나타나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초승달까지 함께 모여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했었다. “이건 정말 놀라운데요!” 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것보다 1년의 오차는 있었으나 이 정도의 정합성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지난 4000년간 이런 현상이 일어날 확률은 평균 250년에 한 번꼴이었다. “만약 이 기록이 조작을 위해 임의로 삽입되었다면 실제 현상과 1년 차이로 우연히 맞을 확률은 0.007%입니다.” 김 교수님도 놀란 표정이었다. “정말 흥미로운 결과네요. 이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겠네요” 이 관측 결과는 충격적 앗았습니다.
기존의 인류 최고 천문기록으로 여겨졌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점성술 기록이 기원전 2000년경인데, 그보다 약 300년 앞선 기록이었어요. 정밀도 면에서도 한국의 고대 기록이 훨씬 뛰어났다. “이것은 환단고기의 일부 기술이 신화가 아닌 실제 고대 과학의 산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한 인간이자 학자로서 진실의 무게를 처음 실감하게 되었다. 그동안 무시되어 온 동방의 기록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고조선의 천문 기술이 메소포타미아를 넘어섰다는 정밀도 비교는 동방 문명이 단순한 신화가 아닌 고도 과학을 지닌 실체였음을 강력히 시사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과거에 대한 재발견은 곧 민족적 자긍심의 회복으로 이어졌어요. 그날 밤 호텔에서 저는 잠을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의 의미가 너무 컸거든요. 인류 문명사 자체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는 발견이었으니까요. 다음 날 아침 저는 국립 중앙 박 물가로 향했다. 환단고기 기록과 실제 고고학 유물을 직접 대조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거든요. 박물관 입구에서 학예사 담당자가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브라이튼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청동기 시대 유물 관람을 원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특히 환단고기에 기록된 시기의 유물들을 보고 싶습니다. “
학예사 씨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논란이 많은 문헌이긴 하지만 일부 내용에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죠“ 우리는 청동기 전시실로 향했습니다. 비파형 동검이 가장 제 눈에 들어왔어요. 세련된 곡선과 정교한 제작기술이 인상적이었다. ”이 비파형 동검은 기원전 언제 경인가요?“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 사이로 추정합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 연해주, 심지어 일본 북부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고조선의 영역과 정확히 일치했다. 저는 점점 더 흥분했습니다. “이 청동방울은 어떤가요?“ ”정말 정교하지요“ 당시 금속 가공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습니다. 고인돌 모형, 청동거울, 각종 장신구들 모든 것이 환단고기에 기록된 시기와 부합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유물들의 금속 순도예요” 학예사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분석 결과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청동기보다 순도가 높고 기술도 더 정교했어요” “정말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기요?” “구리 함량이 85% 이상이고 주석 비율도 매우 정확합니다.
이 정도 기술력은 당시로선 최고 수준이었죠” 제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기술적으로도 앞서 있었다는 증거였거든요. “게다가 이 유물들의 분포 범위를 보세요” 학예사 씨가 지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비파형 동검의 발견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한반도에서 시작해서 만주, 연해주, 심지어 일본 규수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이 정도 범위면 상당한 규모의 문명권이었다고 봐야겠네요. “그렇습니다. 단순한 부족사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문화권이었어요” 저는 전율 섞인 감탄을 했어요. “이게 어떻게 위서일 수 있어요?” 환단고기의 기록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고고학적 사실과 일치할 가능성이 점점 커졌습니다. 동아시아 한반도에서 이미 높은 기술 문명이 꽃피웠다는 강한 자부심을 느꼈어요.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청동기들의 문양입니다.” 학예사씨가 청동거울을 가리켰어요. “이 기하학적 문양들이 가림토 문자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정말 흥미롭네요. 혹시 더 자세한 분석 자료가 있나요?” “네, 최근 연구 결과들을 보여드릴게요” 우리는 연구실로 이동했습니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문양 사진들을 보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일부 기호들이 가림토 문자와 명백한 유사성을 보였거든요. “이런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환단고기의 기록을 단순히 무시할 수만은 없겠지요” 학예사 씨도 조심스럽게 동의했습니다. “학계 정설과는 다르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서구 박물관의 편견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현장의 실감이었죠. 제가 직접 보고 만진 유물들이 환단고기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요.
그날 오후 저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환단고기 원문을 더 자세히 분석하고 싶었거든요. 고서 열람실에서 환단고기를 펼쳐 놓고 꼼꼼히 읽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부분에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고조선의 인구가 1억 8천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거든요. “이건 말이 안 돼”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전체 인구가 700만 정도였는데, 그보다 25배나 많은 인구라니요. 처음엔 번역 오류이거나 과장된 기록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지역을 다시 계산해 보니 한반도에서 시작해서 만주 전역, 러시아 연해주, 몽골 일부, 심지어 일본 북부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이 정도 영역이면” 지도에 표시해보니 현재의 중국 동북부 전체와 한반도, 연해주를 합친 것보다도 큰 면적이었어요. 유럽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대한 영토였죠. “혹시 정말로 이 정도 규모의 제국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더 자세히 조사해보니 당시 이 지역의 인구밀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있어요.
청동기 유물의 밀도, 거주지 유적의 분포, 농업기술의 발달 정도 등을 종합해보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었습니다. “고조선이 단순한 부족국가가 아니었구나” 숨어있던 선조들의 위상을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충격과 경외감이 밀려왔습니다. 환단고기에는 또 다른 놀라운 기록들이 있었어요. 고조선의 행정체계, 군사조직, 문화 수준에 대한 상세한 기술들이었어요. “삼한관 경제라고 해서 지방자치제도가 있었고, 소도라는 종교적 성역도 있었어요”
이런 복잡한 행정 체계는 단순한 부족사회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고도로 발달한 국가 시스템의 증거였어요. “팔조법금이라는 법률 체계도 있었고,” 함무라비 법전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인도적인 법률이었어요. 특히 여성의 지위나 노예 제도에 관한 규정들이 당시로써는 매우 진보적이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문명이었다면 1억 8천만 인구도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저는 점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외면받았지만 문명이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깊은 자각과 함께 민족적 자부심이 폭발했어요.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문명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오히려 일부 면에서는 더 앞선 문명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세계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날 밤 호텔에서 저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어요. 제가 발견한 것들의 의미가 너무 컸거든요. 인류문명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며칠 후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어요. 이번에는 수메르문명이 동이족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들이 관련성을 조사하고 싶었거든요. 고대사 전문 서적들을 찾아 헤매던 중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수메르문명의 동방기원설”이라는 제목의 연구서였어요. 저자는 국내의 고고학자였지만 내용은 상당히 학술적이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놀라운 내용이 가득했어요.
수메르문명이 동이족, 즉 동방 민족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거든요. “동이족은 고대 중국 기록에서 동쪽에 사는 민족들을 가리키는 말이군요”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고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과거 중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사방의 민족을 분류했는데 동쪽에 있던 민족이 비로 동이였다. 더 읽어보니 정말 흥미로운 비교 연구들이 나와 있었어요. “수메르와 한국어의 문법 구조가 비슷하다고?” 어순이 주어 목적어 동사로 같고, 조사를 사용하는 교착어적 특성도 공통점이었어요. 인도유럽어족과는 전혀 다른 구조였죠. “수메르 신화와 단군신화의 서사 구조도 유사하네요”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지상에 문명을 전해준다는 기본 틀이 똑 같았어요. 창조신화의 패턴도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수메르 설형문자 형태를 보세요” 초기 수메르 문자의 일부가 가림토 문자와 유사한 구조를 보였어요. 직선과 곡선의 조합, 기하학적 패턴이 거의 일치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몰랐던 문명의 시작점이 동방에 있었단 말인가?” 저는 점점 흥분했어요. 이 모든 자료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고대 수메르인이 동방에서 이주했거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더 놀라운 건 고고학적 증거들이었어요. “수메르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기술이 동아시아와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네요.”
합금비율, 제작기법, 장식 문양까지 동아시아 청동기와 공통점이 많았어요. 특히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와의 유사성이 두드러졌습니다. “농업기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쌀농사 기술이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있었어요. 관계시설의 구조나 농기구의 형태도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계속해서 쌓여가는 증거들 앞에서 저는 깊은 흥분과 혼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 머릿속엔 이전엔 상상하지 못한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문명의 흐름이 서방에서 동방이 아니라 동방에서 서방으로 흘렀을 가능성이었죠.
세계 4대 문명의 기원이 모두 서방 혹은 중화 중심으로만 설명되던 기존 역사관을 넘어서서 동방의 빛으로서 한국 문명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의 뿌리가 동방에 있다”라는 이 선언은 곧 한민족 정체성에 대한 전 세계적 재조명을 의미했어요. 문명의 중심이 동방에 있었다는 이 발견은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전 세계가 바라보게 만드는 강력한 반전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제가 발견한 연결교리들이 너무나 중요했거든요. 인류 문명사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발견이었으니까요. 다음 주 저는 베이징으로 향했어요.
베이징대학교는 중국 고대사 연구의 중심지 중 하나로 황제 헌원과 치우천황의 전쟁 서사를 포함한 방대한 역사 기록과 주석이 보관되어 있었거든요.
저는 치우라는 인물이 단순한 신화가 아닌 실제 존재였던 고대 동이족 지도자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치우는 가림토 문자와 연결된 환단고기 속 기술 문명의 핵심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전체 문명 기원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조각이었습니다. 베이징대학교 고고학과의 이 교수님과 만남은 정말 흥미로웠다. “치우천황에 관해 연구하고 계신다고요? 흥미로운 주제네요.” “네 한국의 고대문명과 연관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60대 후반의 학자로 중국 고대사에 정통한 분이었어요. 그가 보여준 자료들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인 사기, 산해경에서도 치우를 단순한 반란군이 아니라 중원 밖 동이족 출신의 강력한 지도자로 언급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록되어 있나요?” “치우는 특히 전쟁의 신, 철의 제왕으로 불릴 만큼 우수한 금속 무기 기술과 전투력을 보유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교수님이 고서를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한문으로 빼곡히 적힌 기록들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청동 투구와 철제 무장을 갖춘 치우 황제 헌원과의 전투에서 하늘까지 어지럽게 만들었다고 묘사될 만큼 압도적인 존재였어요”
“정말 놀랍네요. 이는 환단고기 속 기술 기록과도 맞물리는군요” “그렇습니다. 치우가 실제 존재했던 고대 동이 문명의 상징일 수 있어요”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의 민간 설화였어요. “장 교수님이라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원로 학자가 계시는데, 그분에 따르면 치우가 동이족 출신이라는 민간 설화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고 해요” “동이족이요?” “네, 지금의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살던 민족들 말입니다. 중궁에서도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이 아닌 동방민족의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어요” 이는 정말 중요한 증언이었어요. 중국 스스로가 치우를 동이족, 즉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거든요. “특히 주목할 점은 치우의 무기제조 기술입니다.” 이 교수님이 또 다른 자료를 보여주었어요. “당시 중원지역에서는 아직 철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는데 치우는 이미 고도의 철제 무기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동이족의 기술 수준이 중원보다 앞서 있었다는 의미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초기 철기시대 유물들이 중국 내륙보다 시기적으로 빠르거든요”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술이 단순한 민족주의 신화가 아니라는 뒷받침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서구뿐 아니라 중국에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역사적 진실에 대한 회한이 들었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로 감도는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 교수님의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외부에서 인정된 동이족의 고도 문명과 그 기술력은 “역사적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버드로 돌아온 저는 곧바로 국제 문명학회 발표를 준비했다. 제가 한국에서 발견한 모든 증거를 세계 학계에 공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거든요. 발표 당일, 강당은 세계 각국에서 온 학자들로 가득 찼어요. 저명한 고고학자, 문자학자 역사학자들이 모여 있었어요. 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존경하는 동료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께 인류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어요. 시베리아 유물 사진이 스크린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바이칼 근처에서 발견된 기원전 2500년경의 문자 유물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문자들이 한국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가림토 문자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청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어요. 일부는 회의적인 표정이었지만 많은 학자가 흥미를 보였습니다. “컴퓨터 분석 결과 87.3%의 구조적 유사성을 확인했습니다.” 다음으로 천문기록을 발표했습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기원전 1734년의 오성취루 현상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한 결과, 실제로 그 시기에 해당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천문 시뮬레이션 영상이 재생되자 청중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이런 정밀한 천문기록이 우연의 일치일 확률은 0.007%에 불과합니다.” 그다음엔 유물 증거들을 제시했어요.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물들의 기술 수준과 분포 범위, 그리고 중국 사료에 기록된 동이족의 문명 수준을 종합해볼 때, 회의적인 짊 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회의적인 반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브리이튼 교수,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위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요?” “물론 논란이 있는 문헌입니다. 하지만 과학적 검증이 가능한 부분들에서 놀라운 정확성을 보이고 있어요. 우리는 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 증거를 봐야 합니다.” “시베리아 유물과 가림토의 유사성이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은 없나요?”
통계적으로 우연일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87.3%의 유사성은 문자학에서 동일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천문기록의 정확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으로 환단고기 전체를 진서로 볼 수는 없지 않나요? “저도 전체를 검증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부분들이 정확하다면 나머지 내용들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발표가 끝난 후 청중들의 반응은 엇갈렸어요. 일부는 여전히 회의적이었지만 많은 학자가 새로운 관점에서 흥미를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연구네요. 더 많은 후속연구가 필요하겠어요” “기존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시도입니다.” 발표 이후 일부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버드 대학신문, 고고학 전문지, 심지어 주요 일간지에서도 제 연구를 소개했습니다.
하버드 교수, 동방 문명론으로 학계에 파장“ ”인류문명 기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하지만 가장 놀라운 일은 1년 후에 벌어졌어요. 유네스코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브라이튼 교수님, 선생님의 연구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고대문자 연구 프로젝트’를 공식으로 승인합니다.
85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겠습니다.” 그 순간 저는 울컥했어요. 회의와 긴장 뒤의 승리감이었어요. 외롭지만 옳은 길을 걸었다는 확신과 함께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진실은 결국 빛을 본다.” 韓民族의 역사에 대한 글로벌 자긍심의 절정이었어요. 세계가 드디어 동방 문명의 가능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네스코 프로젝트 승인 소식을 들은 저는 다시 한국을 찾았어요. 이번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을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연구에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강화도로 향하는 길, 제 가슴은 두근거렸습니다.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적인 장소였거든요.
만약 이곳에서 가림토 문자와 관련된 흔적을 찾는다면 제 연구의 완결편이 될 수 있었어요. 마니산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어요. 하지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와, 정말 장관이네요” 참성단의 돌 구조물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거대한 돌들이 정교하게 쌓여 있었는데, 단순한 제단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돌들의 배치가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요” 함께 온 문화해설사가 설명해 주었어요. “네, 이 참성단의 구조는 고대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됩니다.” 저는 더 자세히 살펴봤어요. 돌들의 배치를 보니 정말 별자리를 구현한 정밀 구조였어요.
“이 각도와 방향이” 컴퍼스로 측정해 보니 주요 별자리들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했어요. 북극성, 북두칠성, 그리고 계절의 별자리들의 방향을 모두 고려한 설계였습니다. “고대에 이런 정밀한 천문 지식이 있었다는 건 정말 놀라워요”
그런데 더 놀라운 발견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교수님, 이 돌에 뭔가 새겨진 것 같은데요” 해설사가 가리킨 돌을 자세히 보니 희미하지만, 문양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어요. 비록 많이 훼손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요? 확실한가요?” “네, 이 곡선의 형태가 기하학적 패턴이 분명히 가림토 문자와 일치해요”
저는 즉시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나가며 디지털카메라로도 촬영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컴퓨터 분석을 시작했어요. 스케치한 문양들을 디지털화하고 가림토 문자와 비교 분석했습니다. “놀라워요” 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89.3%의 유사도가 나온 거예요. 이는 동일한 문자 체계로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이제 확신합니다. “그 순간 저는 경이로움과 자긍심,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역사적 존재감을 느꼈습니다. 4천 년 전 이 땅에서 실제로 고도의 문명이 꽃피웠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은 거였어요. “인류 최초의 문자 체계가 한국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제 저는 역사에 대해 경배하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역사의 증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가림토 문자가 인류 기록의 시작이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韓民族(한민족) 문명의 위대함이 세계사 중심으로 자리하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참성단에서 바라본 서해의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4천 년 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던 단군의 후예들이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참성단을 바라보며 저는 ”진실은 결국 빛을 본다“는 신념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한민족의 고대 문명이 인류사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저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35년간 서구 중심의 문명론만 믿어왔던 제가 동방 문명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된 거죠. 서울의 야경 아래 4천 년 문명의 숨결을 느끼며, 한국이 인류문명의 시작점으로 시계 교과서에 기록될 날이 오리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가림토 문자, 오성취루(五星翠樓) 천문기록, 청동기 기술, 참성단의 문양까지 모든 증거가 하나의 결론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인류문명의 진정한 시작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 이 모든 것들의 뿌리가 바로 이곳 동방, 한국에 있을 수 있어요.
제가 하버드에서 35년간 연구해온 모든 것들이 이 한 가지 진실을 향해 이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문명의 시작점은 바로 이곳에 있어요. 이 놀라운 여정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외 실제 사연을 기본으로 일부 각색하여 제작된 것입니다.) * 고조선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어 유튜브에 게재된 내용을 받아 옮겨 적었습니다.
하버드의 권위 있는 문자학자 교수가 인류 역사를 바꾸는 폭탄선언을 한 것입니다. 인류 최초 문자의 발생지가 메소포타미아가 아니라 바로 한국이었다는 것이다.
세계 4대 문명의 한반도에 있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그가 밝혀낸 것은 4천 년 전 위대한 한국 고대 왕조 고조선에서 창조된 가림토의 실존 증거였어요. 고조선에서 창조한 신비한 문자 가림토의 실존 증거였어요.
한국의 찬란한 고대 문명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거수 학계는 당황했고, 중국 역사학자들은 격분했다. 그동안 동서양 모든 학계가 철저히 부정해왔던 한국 역사의 위대함, 한국 문명의 놀라운 우수성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한국이 인류문명의 시조임을 증명한 그 경이로운 발견의 전말을 낱낱이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에드워드 브라이턴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인류문명 학과에서 35년간 고대문자를 연구해온 교수입니다. 제가 평생 연구한 분야는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 이류 최초의 문자 체계라고 믿어왔던 그것이었습니다.
학계에서 저를 가리켜 ‘문자학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5천 년 전 점토판 조각 하나만 봐도 어느 도시에서 언제 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거든요. 그만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죠. 하지만 그 모든 확신이 무너져 내린 날이 있었습니다. 2023년 9월,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그 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버드 인류 문명학 연구실, 그날도 평범한 오후였다. 창밖으로 단풍이 물들어가는 캠퍼스가 보이는 9월의 따뜻한 날이었다. 저는 언제나처럼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35년간 이 분야만 파온 저에게 문자학은 일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구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제자인 마크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의 그가 이렇게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교수님, 이걸 당장 보셔야 합니다‘ 마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러시아에서 보내온 고고학 발굴 사진들이 들려 있었습니다 ”시베리아 바이칼호 근처에서 발견된 유물인데, 이 문자들을 보세요! “사진을 받아든 순간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35년간 수천 개의 고대문자를 봐온 제 눈에도 이건 뭔가 달랐거든요. 기원전 250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유물의 문자들은 제가 과거 민속 문헌에서 본 적이 있는 형태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이건 가림토 문자잖아?” 한국의 고대 문헌인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고대문자였다. 공식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기원전 2000년에서 3000년경 사용되었다고 주장되는 문자이다. 저도 학회에서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자가 허구로 치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 앞에 놓인 시베리아 유물의 문자들은 곡선의 배열, 선의 리듬감, 상형적 기호들의 조합이 가림토 문자와 너무나 치밀하게 일치했다. 35년간 문자연구를 해온 제 경험상 이런 유사성은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크, 이 유물의 연대 측정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기원전 2500년 전후로 추정됩니다. 교수님“
기원전 4000년 공식적으로 인류 최초 문자로 인정받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설형문자가 기원전 3100년경이니까 약 600년 뒤의 유물이었어요. 연대만 보면 메소포타미아가 더 오래된 것이 맞았죠. 하지만 제가 받은 충격은 단순한 시기 문제가 아니었어요. 사진 속 문자와 가림토 문자가 너무나 똑같았거든요. 곡선 하나하나, 선의 각도, 기호들의 배치까지 완벽하게 일치했어요.
”이건 우연이 아니야. 같은 문자체계야.” 35년간 문자를 연구해온 제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유사성은 절대 우연이 아니에요. 한 뿌리에서 나온 문자가 분명했죠. 그렇다면 가림토 문자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뜻이고,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문자가 시베리아까지 퍼져있었다는 거예요.
한국의 고대문명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강력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연구실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기존의 문자학, 언어학 자료들을 모두 뒤져가며 시베리아 문자와 가림토 문자의 구조를 비교했습니다.
패턴 분석 알고리즘까지 동원한 끝에 놀라운 결과를 얻었어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수치를 보자마자 제 손이 떨렸어요. 87.3%의 구조적 유사성이었습니다. 이 정도 수치는 우연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게 틀렸을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함께 찾아온 경이로움이었다. 하지만 저는 학자로서 저는 진실을 추적해야 했습니다.
가림토 문자가 단순한 전설이 아닌 실재했을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기존 학계의 서구 중심 문자기원론을 전면 부정하는 대발견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혼란과 회의였지만 점점 떨리는 손과 함께 찾아온 확신, “그럼에도 나는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라는 학자의 사명감이 “내가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기존 학회가 철저히 외면했던 한국의 고대문명이 세계 문명사 자체를 다시 쓰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자긍심이 밀려왔어요. 비록 메소포타미아보다 시기상 늦더라됴 문자구조의 유사성과 과학적 정밀함은 동방 문명의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단서였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어요. 이 놀라운 발견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인천 공항에 도착한 건 9월 말이었다. 가을 공기가 상쾌하게 느꼈죠. 저는 곧장 서울대학교로 향했다. 사전에 연락을 취해둔 김석훈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하버드에서 온 에드워드 브라이튼입니다.” 김 교수님은 60대 중반의 온화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어요. 제가 환단고기의 천문기록을 검증하고 싶다고 말하자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지었었다. “환단고기요? 그 책은 학계에서 위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五星출현이라는 천문현상을 컴퓨터로 검출해 볼 수 있을까요? 정말 중요한 발견일 수 있어요”
오성 출현, 즉 오성 취로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한 줄로 정렬되는 아주 드문 현상이에요. 환단고기에는 13대 홀단 단군 50년, 즉 기원전 1734년에 이 현상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흥미롭네요, 한 번 확인해보죠.”
김 교수님은 천문헉과와 연결해 주셨고, 우리는 슈퍼컴퓨터가 있는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최신 천문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기원전 1734년의 하늘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컴퓨터가 계산을 시작했어요. 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환단고기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뀔 수 있었다. “계산이 완료되었다.” 화면에 나타난 결과를 본 순간 저는 숨이 막힐 듯 전율을 느꼈습니다.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 서쪽 하늘에 금성, 목성, 토성, 수성, 화성이 나란히 정렬되어 나타나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초승달까지 함께 모여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했었다. “이건 정말 놀라운데요!” 제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것보다 1년의 오차는 있었으나 이 정도의 정합성은 결코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지난 4000년간 이런 현상이 일어날 확률은 평균 250년에 한 번꼴이었다. “만약 이 기록이 조작을 위해 임의로 삽입되었다면 실제 현상과 1년 차이로 우연히 맞을 확률은 0.007%입니다.” 김 교수님도 놀란 표정이었다. “정말 흥미로운 결과네요. 이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겠네요” 이 관측 결과는 충격적 앗았습니다.
기존의 인류 최고 천문기록으로 여겨졌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점성술 기록이 기원전 2000년경인데, 그보다 약 300년 앞선 기록이었어요. 정밀도 면에서도 한국의 고대 기록이 훨씬 뛰어났다. “이것은 환단고기의 일부 기술이 신화가 아닌 실제 고대 과학의 산물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한 인간이자 학자로서 진실의 무게를 처음 실감하게 되었다. 그동안 무시되어 온 동방의 기록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고조선의 천문 기술이 메소포타미아를 넘어섰다는 정밀도 비교는 동방 문명이 단순한 신화가 아닌 고도 과학을 지닌 실체였음을 강력히 시사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과거에 대한 재발견은 곧 민족적 자긍심의 회복으로 이어졌어요. 그날 밤 호텔에서 저는 잠을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의 의미가 너무 컸거든요. 인류 문명사 자체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는 발견이었으니까요. 다음 날 아침 저는 국립 중앙 박 물가로 향했다. 환단고기 기록과 실제 고고학 유물을 직접 대조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거든요. 박물관 입구에서 학예사 담당자가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브라이튼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청동기 시대 유물 관람을 원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네 특히 환단고기에 기록된 시기의 유물들을 보고 싶습니다. “
학예사 씨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논란이 많은 문헌이긴 하지만 일부 내용에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죠“ 우리는 청동기 전시실로 향했습니다. 비파형 동검이 가장 제 눈에 들어왔어요. 세련된 곡선과 정교한 제작기술이 인상적이었다. ”이 비파형 동검은 기원전 언제 경인가요?“
”대략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 사이로 추정합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 연해주, 심지어 일본 북부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고조선의 영역과 정확히 일치했다. 저는 점점 더 흥분했습니다. “이 청동방울은 어떤가요?“ ”정말 정교하지요“ 당시 금속 가공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습니다. 고인돌 모형, 청동거울, 각종 장신구들 모든 것이 환단고기에 기록된 시기와 부합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유물들의 금속 순도예요” 학예사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분석 결과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청동기보다 순도가 높고 기술도 더 정교했어요” “정말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기요?” “구리 함량이 85% 이상이고 주석 비율도 매우 정확합니다.
이 정도 기술력은 당시로선 최고 수준이었죠” 제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기술적으로도 앞서 있었다는 증거였거든요. “게다가 이 유물들의 분포 범위를 보세요” 학예사 씨가 지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비파형 동검의 발견 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한반도에서 시작해서 만주, 연해주, 심지어 일본 규수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이 정도 범위면 상당한 규모의 문명권이었다고 봐야겠네요. “그렇습니다. 단순한 부족사회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광범위한 문화권이었어요” 저는 전율 섞인 감탄을 했어요. “이게 어떻게 위서일 수 있어요?” 환단고기의 기록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고고학적 사실과 일치할 가능성이 점점 커졌습니다. 동아시아 한반도에서 이미 높은 기술 문명이 꽃피웠다는 강한 자부심을 느꼈어요.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청동기들의 문양입니다.” 학예사씨가 청동거울을 가리켰어요. “이 기하학적 문양들이 가림토 문자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정말 흥미롭네요. 혹시 더 자세한 분석 자료가 있나요?” “네, 최근 연구 결과들을 보여드릴게요” 우리는 연구실로 이동했습니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문양 사진들을 보니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일부 기호들이 가림토 문자와 명백한 유사성을 보였거든요. “이런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환단고기의 기록을 단순히 무시할 수만은 없겠지요” 학예사 씨도 조심스럽게 동의했습니다. “학계 정설과는 다르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서구 박물관의 편견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현장의 실감이었죠. 제가 직접 보고 만진 유물들이 환단고기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요.
그날 오후 저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환단고기 원문을 더 자세히 분석하고 싶었거든요. 고서 열람실에서 환단고기를 펼쳐 놓고 꼼꼼히 읽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부분에서 저는 깜짝 놀랐어요. 고조선의 인구가 1억 8천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거든요. “이건 말이 안 돼”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전체 인구가 700만 정도였는데, 그보다 25배나 많은 인구라니요. 처음엔 번역 오류이거나 과장된 기록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비파형 동검의 분포지역을 다시 계산해 보니 한반도에서 시작해서 만주 전역, 러시아 연해주, 몽골 일부, 심지어 일본 북부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이 정도 영역이면” 지도에 표시해보니 현재의 중국 동북부 전체와 한반도, 연해주를 합친 것보다도 큰 면적이었어요. 유럽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대한 영토였죠. “혹시 정말로 이 정도 규모의 제국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더 자세히 조사해보니 당시 이 지역의 인구밀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이 있어요.
청동기 유물의 밀도, 거주지 유적의 분포, 농업기술의 발달 정도 등을 종합해보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었습니다. “고조선이 단순한 부족국가가 아니었구나” 숨어있던 선조들의 위상을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충격과 경외감이 밀려왔습니다. 환단고기에는 또 다른 놀라운 기록들이 있었어요. 고조선의 행정체계, 군사조직, 문화 수준에 대한 상세한 기술들이었어요. “삼한관 경제라고 해서 지방자치제도가 있었고, 소도라는 종교적 성역도 있었어요”
이런 복잡한 행정 체계는 단순한 부족사회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고도로 발달한 국가 시스템의 증거였어요. “팔조법금이라는 법률 체계도 있었고,” 함무라비 법전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인도적인 법률이었어요. 특히 여성의 지위나 노예 제도에 관한 규정들이 당시로써는 매우 진보적이었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문명이었다면 1억 8천만 인구도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저는 점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외면받았지만 문명이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깊은 자각과 함께 민족적 자부심이 폭발했어요.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문명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오히려 일부 면에서는 더 앞선 문명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세계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날 밤 호텔에서 저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어요. 제가 발견한 것들의 의미가 너무 컸거든요. 인류문명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며칠 후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어요. 이번에는 수메르문명이 동이족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들이 관련성을 조사하고 싶었거든요. 고대사 전문 서적들을 찾아 헤매던 중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수메르문명의 동방기원설”이라는 제목의 연구서였어요. 저자는 국내의 고고학자였지만 내용은 상당히 학술적이었습니다. 책을 펼쳐보니 놀라운 내용이 가득했어요.
수메르문명이 동이족, 즉 동방 민족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거든요. “동이족은 고대 중국 기록에서 동쪽에 사는 민족들을 가리키는 말이군요” 한민족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고대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과거 중국은 자신들을 중심으로 사방의 민족을 분류했는데 동쪽에 있던 민족이 비로 동이였다. 더 읽어보니 정말 흥미로운 비교 연구들이 나와 있었어요. “수메르와 한국어의 문법 구조가 비슷하다고?” 어순이 주어 목적어 동사로 같고, 조사를 사용하는 교착어적 특성도 공통점이었어요. 인도유럽어족과는 전혀 다른 구조였죠. “수메르 신화와 단군신화의 서사 구조도 유사하네요”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지상에 문명을 전해준다는 기본 틀이 똑 같았어요. 창조신화의 패턴도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수메르 설형문자 형태를 보세요” 초기 수메르 문자의 일부가 가림토 문자와 유사한 구조를 보였어요. 직선과 곡선의 조합, 기하학적 패턴이 거의 일치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몰랐던 문명의 시작점이 동방에 있었단 말인가?” 저는 점점 흥분했어요. 이 모든 자료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고대 수메르인이 동방에서 이주했거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더 놀라운 건 고고학적 증거들이었어요. “수메르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기술이 동아시아와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네요.”
합금비율, 제작기법, 장식 문양까지 동아시아 청동기와 공통점이 많았어요. 특히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와의 유사성이 두드러졌습니다. “농업기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쌀농사 기술이 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있었어요. 관계시설의 구조나 농기구의 형태도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계속해서 쌓여가는 증거들 앞에서 저는 깊은 흥분과 혼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 머릿속엔 이전엔 상상하지 못한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했어요. 문명의 흐름이 서방에서 동방이 아니라 동방에서 서방으로 흘렀을 가능성이었죠.
세계 4대 문명의 기원이 모두 서방 혹은 중화 중심으로만 설명되던 기존 역사관을 넘어서서 동방의 빛으로서 한국 문명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의 뿌리가 동방에 있다”라는 이 선언은 곧 한민족 정체성에 대한 전 세계적 재조명을 의미했어요. 문명의 중심이 동방에 있었다는 이 발견은 한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전 세계가 바라보게 만드는 강력한 반전이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제가 발견한 연결교리들이 너무나 중요했거든요. 인류 문명사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발견이었으니까요. 다음 주 저는 베이징으로 향했어요.
베이징대학교는 중국 고대사 연구의 중심지 중 하나로 황제 헌원과 치우천황의 전쟁 서사를 포함한 방대한 역사 기록과 주석이 보관되어 있었거든요.
저는 치우라는 인물이 단순한 신화가 아닌 실제 존재였던 고대 동이족 지도자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치우는 가림토 문자와 연결된 환단고기 속 기술 문명의 핵심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전체 문명 기원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조각이었습니다. 베이징대학교 고고학과의 이 교수님과 만남은 정말 흥미로웠다. “치우천황에 관해 연구하고 계신다고요? 흥미로운 주제네요.” “네 한국의 고대문명과 연관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60대 후반의 학자로 중국 고대사에 정통한 분이었어요. 그가 보여준 자료들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인 사기, 산해경에서도 치우를 단순한 반란군이 아니라 중원 밖 동이족 출신의 강력한 지도자로 언급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록되어 있나요?” “치우는 특히 전쟁의 신, 철의 제왕으로 불릴 만큼 우수한 금속 무기 기술과 전투력을 보유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교수님이 고서를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한문으로 빼곡히 적힌 기록들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청동 투구와 철제 무장을 갖춘 치우 황제 헌원과의 전투에서 하늘까지 어지럽게 만들었다고 묘사될 만큼 압도적인 존재였어요”
“정말 놀랍네요. 이는 환단고기 속 기술 기록과도 맞물리는군요” “그렇습니다. 치우가 실제 존재했던 고대 동이 문명의 상징일 수 있어요” 더 놀라운 것은 중국의 민간 설화였어요. “장 교수님이라는 중국 사회과학원의 원로 학자가 계시는데, 그분에 따르면 치우가 동이족 출신이라는 민간 설화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온다고 해요” “동이족이요?” “네, 지금의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살던 민족들 말입니다. 중궁에서도 치우를 자신들의 조상이 아닌 동방민족의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어요” 이는 정말 중요한 증언이었어요. 중국 스스로가 치우를 동이족, 즉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거든요. “특히 주목할 점은 치우의 무기제조 기술입니다.” 이 교수님이 또 다른 자료를 보여주었어요. “당시 중원지역에서는 아직 철기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는데 치우는 이미 고도의 철제 무기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동이족의 기술 수준이 중원보다 앞서 있었다는 의미인가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초기 철기시대 유물들이 중국 내륙보다 시기적으로 빠르거든요”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술이 단순한 민족주의 신화가 아니라는 뒷받침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서구뿐 아니라 중국에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역사적 진실에 대한 회한이 들었지만 동시에 내부적으로 감도는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진실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 교수님의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외부에서 인정된 동이족의 고도 문명과 그 기술력은 “역사적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버드로 돌아온 저는 곧바로 국제 문명학회 발표를 준비했다. 제가 한국에서 발견한 모든 증거를 세계 학계에 공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거든요. 발표 당일, 강당은 세계 각국에서 온 학자들로 가득 찼어요. 저명한 고고학자, 문자학자 역사학자들이 모여 있었어요. 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존경하는 동료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께 인류문명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어요. 시베리아 유물 사진이 스크린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바이칼 근처에서 발견된 기원전 2500년경의 문자 유물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문자들이 한국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가림토 문자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청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어요. 일부는 회의적인 표정이었지만 많은 학자가 흥미를 보였습니다. “컴퓨터 분석 결과 87.3%의 구조적 유사성을 확인했습니다.” 다음으로 천문기록을 발표했습니다. “환단고기에 기록된 기원전 1734년의 오성취루 현상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한 결과, 실제로 그 시기에 해당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천문 시뮬레이션 영상이 재생되자 청중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어요. “이런 정밀한 천문기록이 우연의 일치일 확률은 0.007%에 불과합니다.” 그다음엔 유물 증거들을 제시했어요.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청동기 유물들의 기술 수준과 분포 범위, 그리고 중국 사료에 기록된 동이족의 문명 수준을 종합해볼 때, 회의적인 짊 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회의적인 반응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브리이튼 교수, 환단고기는 학계에서 위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데요?” “물론 논란이 있는 문헌입니다. 하지만 과학적 검증이 가능한 부분들에서 놀라운 정확성을 보이고 있어요. 우리는 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 증거를 봐야 합니다.” “시베리아 유물과 가림토의 유사성이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은 없나요?”
통계적으로 우연일 확률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87.3%의 유사성은 문자학에서 동일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천문기록의 정확성은 인정하지만, 그것으로 환단고기 전체를 진서로 볼 수는 없지 않나요? “저도 전체를 검증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부분들이 정확하다면 나머지 내용들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발표가 끝난 후 청중들의 반응은 엇갈렸어요. 일부는 여전히 회의적이었지만 많은 학자가 새로운 관점에서 흥미를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연구네요. 더 많은 후속연구가 필요하겠어요” “기존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시도입니다.” 발표 이후 일부 언론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하버드 대학신문, 고고학 전문지, 심지어 주요 일간지에서도 제 연구를 소개했습니다.
하버드 교수, 동방 문명론으로 학계에 파장“ ”인류문명 기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하지만 가장 놀라운 일은 1년 후에 벌어졌어요. 유네스코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브라이튼 교수님, 선생님의 연구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고대문자 연구 프로젝트’를 공식으로 승인합니다.
85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겠습니다.” 그 순간 저는 울컥했어요. 회의와 긴장 뒤의 승리감이었어요. 외롭지만 옳은 길을 걸었다는 확신과 함께 감격이 밀려왔습니다. “진실은 결국 빛을 본다.” 韓民族의 역사에 대한 글로벌 자긍심의 절정이었어요. 세계가 드디어 동방 문명의 가능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네스코 프로젝트 승인 소식을 들은 저는 다시 한국을 찾았어요. 이번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을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 연구에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강화도로 향하는 길, 제 가슴은 두근거렸습니다.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적인 장소였거든요.
만약 이곳에서 가림토 문자와 관련된 흔적을 찾는다면 제 연구의 완결편이 될 수 있었어요. 마니산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어요. 하지만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와, 정말 장관이네요” 참성단의 돌 구조물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거대한 돌들이 정교하게 쌓여 있었는데, 단순한 제단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돌들의 배치가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는데요” 함께 온 문화해설사가 설명해 주었어요. “네, 이 참성단의 구조는 고대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됩니다.” 저는 더 자세히 살펴봤어요. 돌들의 배치를 보니 정말 별자리를 구현한 정밀 구조였어요.
“이 각도와 방향이” 컴퍼스로 측정해 보니 주요 별자리들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했어요. 북극성, 북두칠성, 그리고 계절의 별자리들의 방향을 모두 고려한 설계였습니다. “고대에 이런 정밀한 천문 지식이 있었다는 건 정말 놀라워요”
그런데 더 놀라운 발견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교수님, 이 돌에 뭔가 새겨진 것 같은데요” 해설사가 가리킨 돌을 자세히 보니 희미하지만, 문양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어요. 비록 많이 훼손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요? 확실한가요?” “네, 이 곡선의 형태가 기하학적 패턴이 분명히 가림토 문자와 일치해요”
저는 즉시 스케치를 시작했어요.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나가며 디지털카메라로도 촬영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컴퓨터 분석을 시작했어요. 스케치한 문양들을 디지털화하고 가림토 문자와 비교 분석했습니다. “놀라워요” 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89.3%의 유사도가 나온 거예요. 이는 동일한 문자 체계로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이제 확신합니다. “그 순간 저는 경이로움과 자긍심,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역사적 존재감을 느꼈습니다. 4천 년 전 이 땅에서 실제로 고도의 문명이 꽃피웠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은 거였어요. “인류 최초의 문자 체계가 한국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이제 저는 역사에 대해 경배하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역사의 증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가림토 문자가 인류 기록의 시작이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韓民族(한민족) 문명의 위대함이 세계사 중심으로 자리하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참성단에서 바라본 서해의 노을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4천 년 전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던 단군의 후예들이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참성단을 바라보며 저는 ”진실은 결국 빛을 본다“는 신념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한민족의 고대 문명이 인류사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저는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쓰는 존재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35년간 서구 중심의 문명론만 믿어왔던 제가 동방 문명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된 거죠. 서울의 야경 아래 4천 년 문명의 숨결을 느끼며, 한국이 인류문명의 시작점으로 시계 교과서에 기록될 날이 오리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가림토 문자, 오성취루(五星翠樓) 천문기록, 청동기 기술, 참성단의 문양까지 모든 증거가 하나의 결론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인류문명의 진정한 시작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 문명 이 모든 것들의 뿌리가 바로 이곳 동방, 한국에 있을 수 있어요.
제가 하버드에서 35년간 연구해온 모든 것들이 이 한 가지 진실을 향해 이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문명의 시작점은 바로 이곳에 있어요. 이 놀라운 여정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