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감동사연' 에서 인용했습니다.
“누군가의 의도로 지워진 역사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시 찾아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김 교수가 다가왔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 학계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됩니다.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알아요, 하버드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건 제 경력보다 더 중요한 일이에요. 그날 밤 호텔 방에서 하버드 동료 마이클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진실은 생각보다 더 놀라웠습니다. 곧 모든 걸 보여줄게. 다큐멘터리 촬영이 한창이던 어느 날, 김정구 교수가 서둘러 전화를 걸어왔다. “앨리스 지금 당장 국립도서관으로 와요. 중요한 것을 발견했어요. 한 시간 후, 국립중앙도서관의 특별 열람실에 도착했다. 김 교수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처음 보는 노년의 학자가 앉아 있었다.
이분은 윤태현 교수님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전문가십니다. 인사를 나눈 후 윤 교수가 흰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고문서를 펼쳤다. 이건 세종실록 원본의 복사본입니다. 김 교수님의 부탁으로 특별히 살펴보았는데,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윤 교수가 특정 페이지를 가리켰습니다. “여기 보세요. 세종 15년(서기 1433년)의 기록입니다. 윤 교수가 천천히 읽었다.
”고조선의 옛 문자는 가림토라 하며, 하늘의 이치를 담았다고 전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이게 진짜인가요?” 운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세종대왕 시대에 가림토 문자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김 교수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이건 큰 발견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 고대문자를 연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한글의 철학적 기반에도 가림토의 영향이 있을 수 있겠네요. 윤 교수가 미소지었다. “젊은 학자의 통찰력이 놀랍군요. 사실 저도 그 가능성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습니다.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단은 철학적 체계이기도 하니까요. 세 시간 동안 우리는 세종실록의 여러 구절을 분석했습니다. 고대 문제에 대한 언급은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했어요. 世宗大王이 한글을 만들기 전, 고대문자 체계를 연구했다는 증거였습니다. 열람실을 나오며 김 교수에게 물었다. “왜 이런 중요한 기록이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을까요?” 김 교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 시대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역사가 왜곡되었어요.
특히 고조선과 관련된 기록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어요. 카페에 앉자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까지 수집한 모든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몽골 석판의 문자, 지리산 천제단의 표식, 백두산 신단수의 기록, 그리고 이제 세종실록의 기록까지 조선의 왕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 왜 지금은 금기처럼 여기는 걸까요? “화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김 교수가 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역사는 항상 승자의 기록이었으니까요. 일제는 한국의 고대 문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지요. 윤 교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가방에서 낡은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이건 내가 평생 모아온 자료들입니다. 이제 앨리스 교수께 맡기고 싶어요. 더 많은 진실을 찾아내길 바랍니다.
책을 받아들고 펼쳐보니 손으로 쓴 메모와 오래된 사진들이 가득했어요. 윤 교수가 수십 년간 모아온 단군 관련 자료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윤 교수님·그날 밤 호텔로 돌아와 윤 교수의 책을 밤새도록 읽었습니다. 그 안에는 일제강점기 때 숨겨진 유물들의 위치, 독립운동가들이 보호했던 古文書 목록 등 놀라운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노트북을 덮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세종대왕도 알고 있던 비밀, 저도 알게 되었네요. 창밖으로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다짐했습니다. 이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것이 제 사명이었어요. 윤 교수님의 자료집 속에서 한 이름이 계속 눈에 띄었다. ‘이유립’ 그는 누구였을까요?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였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환단고기의 원본을 수집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김 교수님,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계시는가요? “다음 날 아침 김정우 교수와 만나 물었다. 그의 표정이 변했어요. 이유립, 복잡한 인물이지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였지만, 해방 후에 친일파로 오해받아 역사에서 지워졌어요. 그의 자료가 아직 남아 있을까요? “대부분 사라졌지만, 서울 북부의 작은 박물관에 그의 이부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서울 외곽 조그만 사립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한국 독립운동사 박물관”이라는 소박한 간판이 걸려있었다. 박물관 관장님은 70대의 노신사였다. 우리의 방문 목적을 듣고 깊이 감명받은 듯했다. “이유립 선생의 유품을 보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그는 우리를 작은 수장고로 안내했다.
먼지 쌓인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이건 이유립 선생의 개인 일기와 수집품입니다. 그의 손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박물관에 기증하셨지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낡은 일기장과 몇 장의 사진, 그리고 작은 천 주머니가 있었다.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1930년대 만주에서의 기록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던 중, 한 구절에서 숨이 멈췄다. “오늘 마침내 찾았다. 東夷 族의 잃어버린 문자를 선조들이 남긴 天符印의 흔적을. 이것이 우리 민족의 혼이다. 1934년 7월 15일 김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이어지는 페이지에는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스케치가 그려져 있었다. 몽골에서 발견된 문자와 놀랍도록 유사했다. “다음 페이지에는 뭐라고 적혀있나요?” 관장님이 궁금해했다. 더 읽어 내려갔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리 뒤를 쫓고 있다.
이 문서들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백두산 근처 동굴에… 여기서 끊겼네요. 천 주머니를 열어보니, 작은 돌조각이 들어 있었다. 표면에는 희미하게 문양이 새겨져 있었어요. 이건 가림토예요. 흥분해서 외쳤다. 관장님이 노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인가요? 우리는 그저 이상한 돌 조각이라고 생각했는데,
김 교수가 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문양은 천제단에서 본 것과 일치해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일기장에 페이지를 넘기며 이유립의 여정을 따라갔다. 그는 이제의 감시를 피해 만주와 중국 북부를 누비며 고대 문헌과 유물을 수집했다. 그리고 마지막 기록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동료의 증언이 있었다. “이유립 선생은 마지막 문서를 읽고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우리 민족의 진짜 역사를 발견했다고 했다.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닫으며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다. “누군가는 목숨 걸고 지키려 한 진실이었다. 이제 제가이어야 해요.
관장님은 우리에게 이유립 선생의 유품을 연구용으로 빌려주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김 교수가 말했다. 이유립이 백두산 동굴에 숨겨둔 문서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한번 시도할 필요가 있어요. 이건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에요. 역사의 진실을 찾는 여자죠. 참성단 앞, 그녀의 선언. 백두산 탐사는 성공적이었다. 이유립의 일기에 언급된 동굴을 찾았고, 그곳에서 더 많은 가림토 문자 기록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제 마음속에 생긴 변화였습니다. 한국에 온 지 세 달이 지났다. 하버드에선 끝없는 메일과 전화가 왔다. 언제 돌아오냐, 연구 휴가가 너무 길다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더는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밤이 적기예요. “김정우 교수가 차 안에서 말했다. 우리는 강화도로 향하고 있었다.
참성단이라는 고대 천문 관측소가 있는 곳이었다. 달력을 보니 양력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죠. 물었습니다. 김 교수가 미소지었다.
그리고 천문학적으로도 특별한 날입니다. 오늘 밤 참성단에서는 특정 별자리가 정확히 중앙에 위치하게 됩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우리는 참성단에 도착했다. 평평한 돌로 만들어진 원형 구조물이었다. 중앙에 서니 하늘과 가깝게 느껴졌다. “이곳은 4천 년 전에 만들어진 천문대예요. “김 교수가 설명했다. 우리 조상들은 여기서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기록했죠.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놀랍도록 선명했습니다. 특히 북두칠성이 눈에 띄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여정이 꿈만 같아요. “감정이 북받쳐 말했다. 다큐멘터리 촬영팀이 우리 주변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을 찍기 위해서였다. 지난 몇 개월간 우리의 발견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거의 완성 단계였습니다. 김 교수가 나지막이 물었다. “앨리스, 정말 이렇게 하시겠어요?
이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 학계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 확신해요 이건 내 경력보다 중요해요. 별빛 아래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감독이 신호를 보내자 말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앨리스 카터, 하버드 대학 고대문명학교수입입니다. 석 달 전 저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갑니다. 심호흡하고 계속했습니다. “저는 평생 무신론자였습니다. 고대 신화는 그저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별이 빛나는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별들은 4천 년 전 단군이 보았던 것과 같은 별들입니다. 제가 발견한 증거들은 분명합니다. 가림토 문자, 천제단의 석각, 세종실록의 기록, 이유립의 발견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진실을 가르치고 있어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선언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저는 단군을 믿습니다.
그 순간 북두칠성이 참성단의 정 중앙에 있었습니다. 마치 하늘이 제 선언에 응답하는 것 같았어요. 카메라가 꺼지고 김 교수가 다가와 제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용기 있는 선언이었어요. 시실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거든요. 미소지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역사는 판단할 것입니다. “김 교수가 말했어요.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적으로 방영되었습니다. 예상대로 학계에서는 엄청난 논쟁이 일었습니다. 하버드 동료들의 반응은 차가웠지만, 놀랍게도 많은 젊은 학자들이 저의 연구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6개월 후 서울 강남에서 ’가림토 문자 국제 연구소‘ 개소식이 열렸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학자들과 함께, 저는 테이프 절단씩에 참여했어요. “카터 교수, 이 연구소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으신가요? 기자가 물었다. 미소지으며 대답했다.”이건 한국만의 유산이 아니라, 인류의 유산이에요. 우리는 잊힌 역사의 퍼즐을 함께 맞추게 도리 것입니다. 하버드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서울이 제 새로운 집이 되었어요. 단군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 역사였고, 저는 그 역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참성단에서의 그 밤을 떠올리며, 연구소 창문 너머로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같은 별들이 4천 년 동안 이 땅을 지켜보았습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습니다. 檀君은 신화가 아니었습니다. “창밖의 별들에 속삭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진실을 세상에 알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