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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 古典 한마디 22. 孔子 一生 回顧
25/02/18 10:28:33 金 鍾國 조회 290
東洋 古典 한마디 22. 孔子 一生 回顧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때 채나라 국경을 지나기다가 뽕 따는 여인을 보았는데 동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얼굴이 구슬처럼 예뻤고 서쪽에서 뽕 따는 여인은 곰보처럼 얽었다.
공자가 농담하기를 ”동지박(東枝璞) 서지박(西枝縛)“이르고,
동쪽 가지는 구슬 박이고
서쪽 가지는 얽을 박이라”
서쪽 곰보 여인이 공자를 힐끗 보도니
이렇게 대꾸한다.
‘건순노치(乾脣露齒) 칠일절량지상(七日絶糧之相)
이백어면(耳白於面) 천하명문지상(天下名文之相)
 
“입술은 바짝 마르고
이빨이 툭 튀어나온 게
7일간 굶은 상인데,

귀가 얼굴색보다
흰 걸 보니 문장만은
천하에 알려질 만하겠군.”
 
무안을 당한 공자가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채나라 국경에서 포졸에게 잡힌다.
천하의 석학 공자를 몰라보는 포졸이
묘한 숙제를 던지는데
 
’당신이 노나라 성현 공자라면 보통
사람과는 다른 비범함이 있을 터
구멍이 아홉 개 뚫린 구슬들을 명주실로
한 번 꿰어보라’
 
공자가 명주실을 잡고 구슬을 꿰는데
연나흘을 끙끙댔지만 실패라
할 수 없이 자신을
 
건골노치(乾骨露齒) 칠일절양지상(七日絶糧之相)
이라 했던 여인에게 제자를 보낸다.
 
제자가 가보니 여인은 간데없고 짚신만 거꾸로 뽕나무에 걸려
있었던바
소식을 접한 공자가
무릎을 ‘탁’치며 제자에게 이르되
“계혜촌(繫鞋촌)을 찾아가 보아라”
 
제자가 우여곡절 끝에 계혜촌에서
그 여인을 찾아 구슬 꿰는 가르침을 청하자
 
여인은 말없이 양피지의 글자를 적어준다.
<<밀의사(蜜蟻絲)>>
 
글귀를 받은 공자가 탄복하며
꿀과 실과 개미 한 마리를 잡아 오게
하여 개미 뒷다리에 명주실을
묶어 놓고 구슬 구멍에 꿀을 발라
두었더니 하룻밤 상이에 개미가 구슬을
다 꿰어 놓았는지라!
그날을 공자가 밥 한 끼 못 먹고
굶은 지 바로 칠 일째 되는
날이었다.
옥문을 나서는 공자가 혼자 말을
중얼거렸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참지식에
통달 되도다”
 
자신의 오만방자한 어리석음을 깊이
뉘우친 공자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진다.
 
왜? 구멍이 다섯도 일곱도 아닌
아홉 개 뚫린 구슬을 나에게
주었을까?
 
공자는 70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이치를 깨달았다는데,
 
인생이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지고 태어나서
두 눈으로 바로 보고
두 귀로 바로 듣고
두 코로 향내를 감지하고
입으로 정갈하게 먹고
진실하게 말하며
두 구명으로 배설하는데 막 함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이 무리가 없이
삶을 이어가는 기본이요,
하늘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천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나이 70에
그 이치를 비로소 통달하니
공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하여
종심 하고 싶어 하는바 불유구
(從心所欲而不踰矩)라고 한다.
마음 따라 행해도 재제받을 일이 없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 73세에 사망하였는데,
만년에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인격의 발달과정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자립하고, 사십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고, 오십에 천명을 알고
육십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
칠십에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하셨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 而 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慾而不踰矩

23학년도 논어 강의를 하신 金敬愛 선생님의 학습 자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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