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百有餘年: 韓愈의 뒤 삼백여 년 만에 歐陽子를 얻으니, 그 학문은 한유와 孟子를 미루어 孔子에 도달하였으며 仁義와 禮樂의 실제를 드러내어 大道에 합하였으니, 그 말이 간략하면서도 분명하고 신실하면서도 통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러므로 청하에서는 그러므로 천하에서는 흡연히 그를 스승으로 삼고 높였다. 歐陽子가 생존했을 때에는 세상에 그를 기뻐하지 않는 자들이 시끄럽게 공격하여 그 몸을 좌절시키고 곤궁하게 하였으나 그의 말을 굽히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선비 중에 어진이나 불초한 이를 막론하고 상의하지 않았는데도 똑같이 “구양자는 지금의 한유다”라고 말하고 있다.
愈之後三百有餘年而後에 得歐陽子하여 其學이 推韓愈孟子하여 以達於孔氏하고 著禮樂仁義之實하여 以合於大道라 其言이 簡而明하고 信而通하여 引物連類하여 折之於至理하여 以服人心이라 故로 天下翕然師尊之라 自歐陽子之存으로 世之不悅者 譁而攻之하여 能折困其身이로되 而不能屈其言이라 士無賢不肖히 不謨而同曰 歐陽子는 今之韓愈也라하나이다. 六一居士集序 蘇軾 古文眞寶後集)
▼韓愈(768년 ~ 824년)는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정치가‧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燕居三月: 객이 돌아와서 삼월에 거처한 지 3개월 만에 재계하고 다시 청하니, 의원은 “그대의 기운이 다소 회복되었다.” 하고는 약을 취하여 주면서 말하기를 “복용한 지 3개월에 병이 다소 낫고, 또 3개월에 조금 편안해지고, 이 해를 마치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 약을 마실 때에 빨리 마시지 말라 하였다. (客歸 하여 燕居三月에 齋戒而復請之 한대 醫曰 子之氣少復(복)矣라하고 取藥而授之曰 服之三月而病少平하고 又三月而少康하고 終是年而復常하리라. 且飮藥에 不得亟進하라 藥戒 張 耒, (文潛) 古文眞寶後集)
▲三墳五典八索九丘: 孔子는 성인이셨는데도 그 배움이 반드시 책을 통해서 시작하셨으니, 이때를 당하여 오직 周나라의 柱下史인 노빙(老聘)이 서책이 많았었고, 한의자가 魯나라에 간 연후에 易象이 魯나라 「춘추」를 구경하였고, 계찰이 상국(魯)으로 聘問간 연후에 「詩經」의 風 · 雅·頌을 얻어들었고, 楚나라에는 홀로 左史인 의상이 삼분‧오전과 팔삭‧구구를 읽었다 하니, 선비로서 이때에 태어나서 六經을 본 자가 몇 명이 안 되었으니, 그 배움이 어렵다고 이를 만하였다. 그런데도 모두 예악에 익숙하고 도덕에 심오하여 후세의 군자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自孔子聖人으로도 其學이 必始於觀書라 當是時하여 惟周之柱下史老聃이 爲多書하고 韓宜子適魯然後에 見易象與魯春秋하고 季札이 聘於上國然後에 得聞詩之風雅訟하고 而楚獨有左史倚相이 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하니 士之生於是時하여 得見六經者蓋無幾하니 其學이 可謂難矣로되 而皆習於禮樂하고 深於道德하여 非後世君子所及이니라. 自秦漢以來로 紙與字畫이 日趨於簡便하여 而書益多하여 世莫不有라 然學者益以苟簡은 何哉오 李君山房記 蘇軾 古文眞寶後集)
▲三請, 三揖 三獻 三拜: 정성은 마음에서 나와 몸에 나타나고 용색에 도달하기 때문에 또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을 세 번 청하고 폐백을 세 번 올리며 세 번 읍하고 올라가며 세 번 절하고 나오니, 예는 너무 번거로우면 지나치고 너무 간략하면 촌스러운 바, 셋은 예에 적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으로써 그공경을 그 공경을 지극히 한다고 한 것이다. (誠發于心而論于身하고 達于容色이라 고로 又有儀焉하니 詞以三請하고 贄以三獻하며 三揖而升하고 三拜而出이니 禮本則泰요 簡則野니 三者는 禮之中也라 故로 曰 儀以致其敬이라 上林秀州書 陳師道 古文眞寶後集)
▲三子: 春秋의 左傳을 지은 左丘明과 公羊傳을 지은 公羊高, 穀梁傳을 지은 穀梁赤 등 세 사람을 이른다. 三子가 말하기를 ‘春秋에 趙循이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大惡을 가하였고, 조순이 실지로 시해한 것이 아니므로 또다시 經文에 나타내어 조순의 무죄함을 밝혔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죄를 가하였다가 곧 용서해준 것이다. 조순이 시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이를진댄 어찌 가볍게 대악을 가할 수 있으며, 조순이 역적을 토벌하지 않는 것이 情理上 꾸짖을 만하여 죄를 가해야 한다고 할진댄 그 후에 완연히 역적을 토벌하지 아니하여 이미 잘못을 고쳐 스스로 속죄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대번에 용서해주어 무죄한 사람과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모두 불가하니, 이는 春秋의 본의가 아니다. (春秋論 歐陽公 文章軌範)
▲三曰化及民: 무릇 道가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正道를 행하다가 난을 무릅쓰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聖人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요, 셋째는 교화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이다. 殷나라에 仁人이 있었으니, 箕子인데 실로 이 도를 구비하여 세상을 세웠다. 그러므로 孔子께서 六經의 뜻을 전술함에 더욱 殷勤(懇曲)히 하신 것이다. 紂王의 때를 당하여 대도가 어그러지고 혼란하니, 하늘의 위엄을 動하여도 능히 경계하지 못하고 聖人의 말씀은 쓸데가 없었다. (凡大人之道有三하니 一曰蒙難이요, 二曰法授聖이요, 三曰化及民이라. 殷有仁人하니, 曰箕子니 實具玆道하여 以立於世라 故로 孔子述六經之旨에 尤殷勤焉하시니라. 當紂之時하여 大道悖亂하니 天威之動이 不能戒요 聖人之言이 無所用이라. 書箕子廟碑陰 柳柳州(宗元) 文章軌範 )
▲三歸之家: 三歸에 대한 설은 구구하다. ⟪論語⟫〈八佾〉에 ”어떤 사람이 관중은 검소했습니까?“하고 묻자 孔子께서 ”관중은 三歸를 두었으며 家臣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셨으니 *歸를 嫁로 보아 세 여자에게 장가들고 그 여자들이 거처할 집을 지어 주었다는 說. 地名으로 管仲의 彩色라는 설 ⟪漢書⟫〈地理志 下〉”몸이 배신하면서 三歸를 취하였다. “라고 하였다. 호화스런 세 개를 臺, (戰國策 제1권 68P).
▲三川: 지금의 河南城 洛陽부근을 지나는 河水, 洛水, 伊水. 三川은 周나라 天子의 도읍지. (戰國策 제2권)
▲三國攻秦反: 魏, 韓, 齊 삼국이 秦을 공격하고 돌아오자, 西周는 위나라가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할까 걱정이었다. 德三國은 진나라가 삼국에게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맺는 일을 말한다. (戰國策 제2권)
▲三王: 夏나라 禹王, 商나라 湯王, 周나라 文·武王으로 開國 始祖 (戰國策 제5권)
▲三公: 周나라 관직으로 천자를 보위하는 太師, 太傅, 太保로 신하로서의 최고 직위 (戰國策 제5권)
▲三人成虎: ⟪淮南子⟫〈要山訓〉에 사실이 아닌 것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사실로 곧이듣게 됨을 이르는 말. (戰國策 제5권)
▲三國攻秦: 魏, 韓, 齊 삼국이 秦나라를 공격하여 함곡에 들어갔다. 秦王(昭王)이 公子 池를 사자로 삼아 세 성으로 삼국과 강화를 맺었다. (戰國策 제6권)
▲三戰三勝: 齊나라 威王 때 재상 田忌 장군이 魏나라와 세 번 싸워 세 번 승리하였다. (戰國策 제8권)
愈之後三百有餘年而後에 得歐陽子하여 其學이 推韓愈孟子하여 以達於孔氏하고 著禮樂仁義之實하여 以合於大道라 其言이 簡而明하고 信而通하여 引物連類하여 折之於至理하여 以服人心이라 故로 天下翕然師尊之라 自歐陽子之存으로 世之不悅者 譁而攻之하여 能折困其身이로되 而不能屈其言이라 士無賢不肖히 不謨而同曰 歐陽子는 今之韓愈也라하나이다. 六一居士集序 蘇軾 古文眞寶後集)
▼韓愈(768년 ~ 824년)는 당(唐)을 대표하는 문장가·정치가‧사상가이다. 당송 8대가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자(字)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이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燕居三月: 객이 돌아와서 삼월에 거처한 지 3개월 만에 재계하고 다시 청하니, 의원은 “그대의 기운이 다소 회복되었다.” 하고는 약을 취하여 주면서 말하기를 “복용한 지 3개월에 병이 다소 낫고, 또 3개월에 조금 편안해지고, 이 해를 마치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 약을 마실 때에 빨리 마시지 말라 하였다. (客歸 하여 燕居三月에 齋戒而復請之 한대 醫曰 子之氣少復(복)矣라하고 取藥而授之曰 服之三月而病少平하고 又三月而少康하고 終是年而復常하리라. 且飮藥에 不得亟進하라 藥戒 張 耒, (文潛) 古文眞寶後集)
▲三墳五典八索九丘: 孔子는 성인이셨는데도 그 배움이 반드시 책을 통해서 시작하셨으니, 이때를 당하여 오직 周나라의 柱下史인 노빙(老聘)이 서책이 많았었고, 한의자가 魯나라에 간 연후에 易象이 魯나라 「춘추」를 구경하였고, 계찰이 상국(魯)으로 聘問간 연후에 「詩經」의 風 · 雅·頌을 얻어들었고, 楚나라에는 홀로 左史인 의상이 삼분‧오전과 팔삭‧구구를 읽었다 하니, 선비로서 이때에 태어나서 六經을 본 자가 몇 명이 안 되었으니, 그 배움이 어렵다고 이를 만하였다. 그런데도 모두 예악에 익숙하고 도덕에 심오하여 후세의 군자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自孔子聖人으로도 其學이 必始於觀書라 當是時하여 惟周之柱下史老聃이 爲多書하고 韓宜子適魯然後에 見易象與魯春秋하고 季札이 聘於上國然後에 得聞詩之風雅訟하고 而楚獨有左史倚相이 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하니 士之生於是時하여 得見六經者蓋無幾하니 其學이 可謂難矣로되 而皆習於禮樂하고 深於道德하여 非後世君子所及이니라. 自秦漢以來로 紙與字畫이 日趨於簡便하여 而書益多하여 世莫不有라 然學者益以苟簡은 何哉오 李君山房記 蘇軾 古文眞寶後集)
▲三請, 三揖 三獻 三拜: 정성은 마음에서 나와 몸에 나타나고 용색에 도달하기 때문에 또 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말을 세 번 청하고 폐백을 세 번 올리며 세 번 읍하고 올라가며 세 번 절하고 나오니, 예는 너무 번거로우면 지나치고 너무 간략하면 촌스러운 바, 셋은 예에 적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으로써 그공경을 그 공경을 지극히 한다고 한 것이다. (誠發于心而論于身하고 達于容色이라 고로 又有儀焉하니 詞以三請하고 贄以三獻하며 三揖而升하고 三拜而出이니 禮本則泰요 簡則野니 三者는 禮之中也라 故로 曰 儀以致其敬이라 上林秀州書 陳師道 古文眞寶後集)
▲三子: 春秋의 左傳을 지은 左丘明과 公羊傳을 지은 公羊高, 穀梁傳을 지은 穀梁赤 등 세 사람을 이른다. 三子가 말하기를 ‘春秋에 趙循이 역적을 토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大惡을 가하였고, 조순이 실지로 시해한 것이 아니므로 또다시 經文에 나타내어 조순의 무죄함을 밝혔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죄를 가하였다가 곧 용서해준 것이다. 조순이 시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이를진댄 어찌 가볍게 대악을 가할 수 있으며, 조순이 역적을 토벌하지 않는 것이 情理上 꾸짖을 만하여 죄를 가해야 한다고 할진댄 그 후에 완연히 역적을 토벌하지 아니하여 이미 잘못을 고쳐 스스로 속죄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대번에 용서해주어 무죄한 사람과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모두 불가하니, 이는 春秋의 본의가 아니다. (春秋論 歐陽公 文章軌範)
▲三曰化及民: 무릇 道가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正道를 행하다가 난을 무릅쓰는 것이요, 둘째는 법을 聖人에게 전수해 주는 것이요, 셋째는 교화가 백성에게 미치는 것이다. 殷나라에 仁人이 있었으니, 箕子인데 실로 이 도를 구비하여 세상을 세웠다. 그러므로 孔子께서 六經의 뜻을 전술함에 더욱 殷勤(懇曲)히 하신 것이다. 紂王의 때를 당하여 대도가 어그러지고 혼란하니, 하늘의 위엄을 動하여도 능히 경계하지 못하고 聖人의 말씀은 쓸데가 없었다. (凡大人之道有三하니 一曰蒙難이요, 二曰法授聖이요, 三曰化及民이라. 殷有仁人하니, 曰箕子니 實具玆道하여 以立於世라 故로 孔子述六經之旨에 尤殷勤焉하시니라. 當紂之時하여 大道悖亂하니 天威之動이 不能戒요 聖人之言이 無所用이라. 書箕子廟碑陰 柳柳州(宗元) 文章軌範 )
▲三歸之家: 三歸에 대한 설은 구구하다. ⟪論語⟫〈八佾〉에 ”어떤 사람이 관중은 검소했습니까?“하고 묻자 孔子께서 ”관중은 三歸를 두었으며 家臣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셨으니 *歸를 嫁로 보아 세 여자에게 장가들고 그 여자들이 거처할 집을 지어 주었다는 說. 地名으로 管仲의 彩色라는 설 ⟪漢書⟫〈地理志 下〉”몸이 배신하면서 三歸를 취하였다. “라고 하였다. 호화스런 세 개를 臺, (戰國策 제1권 68P).
▲三川: 지금의 河南城 洛陽부근을 지나는 河水, 洛水, 伊水. 三川은 周나라 天子의 도읍지. (戰國策 제2권)
▲三國攻秦反: 魏, 韓, 齊 삼국이 秦을 공격하고 돌아오자, 西周는 위나라가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할까 걱정이었다. 德三國은 진나라가 삼국에게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맺는 일을 말한다. (戰國策 제2권)
▲三王: 夏나라 禹王, 商나라 湯王, 周나라 文·武王으로 開國 始祖 (戰國策 제5권)
▲三公: 周나라 관직으로 천자를 보위하는 太師, 太傅, 太保로 신하로서의 최고 직위 (戰國策 제5권)
▲三人成虎: ⟪淮南子⟫〈要山訓〉에 사실이 아닌 것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사실로 곧이듣게 됨을 이르는 말. (戰國策 제5권)
▲三國攻秦: 魏, 韓, 齊 삼국이 秦나라를 공격하여 함곡에 들어갔다. 秦王(昭王)이 公子 池를 사자로 삼아 세 성으로 삼국과 강화를 맺었다. (戰國策 제6권)
▲三戰三勝: 齊나라 威王 때 재상 田忌 장군이 魏나라와 세 번 싸워 세 번 승리하였다. (戰國策 제8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