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典과 史書에서 찾은 ‘三’이 든 文章 探究(續)
諮問委員 愼齋 金鍾國
들어가며
古典과 史書에서 찾은 ‘三’이 든 文章 探究은 2022년 발행의 ‘明倫’지에 실으려고 제출했던 원고였었는데, 사무착오로 싣지 못하여 ‘명륜’ 27輯(2023)‘에 실렸다. 더 많은 古典과 史書에서 찾은 ‘三’이 든 文章 探究(續)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애국가에서 무궁화 三千里江山이라고 노래하며 애국심을 발흥시킨다. 三이라는 숫자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친밀감과 안정감을 준다. 三月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등 三은 우리에게 밀착되어 내려온 느낌을 준다.
우리는 출생에서 三이라는 숫자에 또한 연관이 많다. 우선 孫子를 원하는 할머니들은 우물가에서 정화수 떠 놓고 三神에게 비는 풍습도 있었다. 여기서 三神은 桓因, 桓雄, 檀君을 의미하는 말이다. 고조선 시기에 환인, 환웅, 단군 三代가 약 2,200여 년간 古朝鮮이 이어지게 한 始祖이며, 三神을 모시는 祭壇의 구조도 3단으로 되어 있다. 삼신을 높여서 三聖으로, 그래서 三聖閣이라하여 웬만한 사찰이면 다 삼성각이 대웅전 왼쪽이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럼 古典이나 史料에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자료에서 발췌해 보았다.

▲三子者: 管仲이 齊나나라의 威公(桓公)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고, 夷狄을 물리쳐 그 몸을 바치도록 하니 제나라가 부강하여 제후들이 감히 배반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管仲이 죽자 견조(堅刁), 易牙, 開方이 등용되어 위공이 난에 죽었고, 다섯 公子가 즉위하기를 다투어 그 화가 만연되어 簡公에 이르도록 제나라는 편안한 해가 없었다. 堅刁, 易牙, 開方 세 사람은 저들은 진실로 남의 나라를 혼란시키는 자들이거니와 돌아보건대 이들을 등용한 자는 威公이다. (管仲 相威公 霸諸侯 攘夷狄 終其身 齊國富强 諸侯不敢叛 管仲死 堅刁 易牙 開方 用 威公薨於亂 五公子爭立 其過蔓延 訖簡公 齊無寧歲 堅刁, 易牙, 開方三子 彼固亂入國者 威公也. 古文眞寶 管仲論 蘇洵) ⚙霸 으뜸 패, 刁 바라 조, 攘 물리칠 양, 薨 죽을 훙
▲三閭大夫: 朱熹가 말하였다. 굴원의 이름은 平이고, 楚나라 왕실과 同姓이었다. 회왕(懷王)을 섬기어 三閭大夫가 되었는데, 上官大夫외 근상이 투기하여 그를 모함해서 회왕이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朱文公曰 原의 名은 平이오 與楚로 同姓이라. 仕於懷王하여 爲三閭大夫(屈氏, 景氏, 昭氏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관직)러니 上官大夫와 及斳尙이 妬毁之라. 離騷經 屈平 古文眞寶後集)
▲三后之純粹兮여: 三后 즉 夏나라 禹王, 憂나라 湯王, 周나라 文王을 가리킴.
▲五帝三王: 오제는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의 다섯 임금을 가리키는바 소호 대신 황제를 넣기도 하며 三王은 夏의 禹王, 商의 湯王, 周의 文王과 武王을 가리킨다. (上秦皇遂客書李斯 古文眞寶後集)
▲天下三分: 적벽대전을 기점으로 중소 군벌들이 몰락하고 魏, 蜀, 吳 세 나라가 지배하는 제2기가 시작된다. (出師表 諸葛亮 古文眞寶後集)
▲三徑就荒: 뜰 앞에 난 세 개의 작은 길. 옛날 장우(蔣詡)라는 사람이 집의 대나무 숲 사이에 세 가닥의 길을 내놓고 求仲과 羊仲이란 두 친구만 오게 하여 함께 놀았다. 여기에서 세 가닥 길(三徑)이 隱士가 사는 곳을 가리키게 되었다. ( 歸去來辭 陶淵明 古文眞寶後集)
▲三輔豪 馳聲九州牧: 경조부(京兆府), 좌빙익(左馮翊), 우부풍(右扶風)의 세 곳 장관의 발자취를 좇으며, 온 천하의 지방 장관 중에서 이름을 떨치려 하였다. (古文眞寶 孔稚圭의 北山移文)
▲襟三江而帶五湖: 삼강은 荊江, 松江, 浙江이며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있다는 의미. 오호는 太湖, 파양호(鄱陽湖), 靑草湖, 丹陽湖, 洞庭湖를 이름. 옛날에 남창군이 있던 이곳은 지금은 홍도부가 있다. 별자리로는 익성과 진성에 해당되며, 땅은 형산과 여산에 접해있다. 세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다섯 호수가 띠처럼 둘려 있다. (南昌故郡이요 洪都는 新府라 星分翼軫하고 地接衡盧하며 襟三江而帶五湖 하고 控蠻荊而引甌越이라. 古文眞寶 王勃의 滕王閣序)
▲三尺微命: 보잘 것 없는 목숨. 나왕발은 보잘 것 없는 목숨을 지닌 천한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아서, 밧줄을 청할 길 없으니 약관의 종군 같은 사람을 기다려도 보고, 붓을 던질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종각의 장풍을 부러워하기도 한다.(勃은 三尺微命이요 一介書生이라 無路請纓하니 等終軍之弱冠이요 有懷投筆하니 慕宗慤之長風이라. 滕王閣序 王勃 古文眞寶後集)
▲三綱淪而九法斁(두): 삼강이 매몰되고 구법이 무너지다.
揚墨交亂而聖賢之道不明하니 聖賢之道不明이면 則 三綱淪而九法斁(두)하고 禮樂崩而九法斁하고 禮樂崩而夷狄橫하리니 幾何其不爲禽獸也리오. 양주와 묵적가 서로 어지럽히여 성현이 도가 밝지 못하면 삼강이 매몰되고 구법이 무너지며 이적이 횡행할 것이니, 법도가 무너지게 될 것이며, 예악이 무너지면 오랑케들이 횡행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새나 짐승들처럼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斁:무너질 두 (與孟簡尙書書 韓愈 古文眞寶後集)
▲序屬三秋: 절서는 삼추에 속한다. 三秋는 孟秋(七月), 仲秋(八月), 季秋(九月). 절서는 삼추라 장마 물이 다하니 차가운 못의 물이 맑고, 연광이 엉기니 저녁 山이노을져 붉다. ( 序이 屬三秋라 潦水盡而寒潭淸하고 煙光凝而慕潭淸하고 煙光凝山紫라. 王勃의 滕王閣序 古文眞寶後集)
▲三光同其得失: 삼광이 정치의 득실을 함께 하다. 예로써 질서를 예방하고 예로써 사치함을 금지하고 낙으로써 사치함을 방지하고 왼쪽에는 말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일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으며 나가면 경계하고 사시가 참서를 기르고 삼광이 청치의 득실을 함께 합니다. (豫以禁其奢하고 禮以防其奢하며 左言而右事하고 出警而入蹕하여 四時調其慘舒하고 三光同其得失이라 大寶箴 張蘊吉 古文眞寶後集)
▲三代之前後:: 3대의 전후. 아! 그 또한 다행히 3대의 이후에 태어나서 우왕·탕왕·문왕·무왕‧주공·공자에게 축출울 당하지 않았고, 그 또한 불행히 삼대의 이전에 나오지 못하여 우왕·탕왕·문왕·무왕‧주공·孔子에게 바로잡음을 받지 못하였다. (嗚呼라 其亦幸而出於三代之後하여 而不見出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요 其亦不幸而不出於三代之前하여 不見正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로다 原道 韓愈 古文眞寶後集).
諮問委員 愼齋 金鍾國
들어가며
古典과 史書에서 찾은 ‘三’이 든 文章 探究은 2022년 발행의 ‘明倫’지에 실으려고 제출했던 원고였었는데, 사무착오로 싣지 못하여 ‘명륜’ 27輯(2023)‘에 실렸다. 더 많은 古典과 史書에서 찾은 ‘三’이 든 文章 探究(續)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애국가에서 무궁화 三千里江山이라고 노래하며 애국심을 발흥시킨다. 三이라는 숫자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친밀감과 안정감을 준다. 三月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등 三은 우리에게 밀착되어 내려온 느낌을 준다.
우리는 출생에서 三이라는 숫자에 또한 연관이 많다. 우선 孫子를 원하는 할머니들은 우물가에서 정화수 떠 놓고 三神에게 비는 풍습도 있었다. 여기서 三神은 桓因, 桓雄, 檀君을 의미하는 말이다. 고조선 시기에 환인, 환웅, 단군 三代가 약 2,200여 년간 古朝鮮이 이어지게 한 始祖이며, 三神을 모시는 祭壇의 구조도 3단으로 되어 있다. 삼신을 높여서 三聖으로, 그래서 三聖閣이라하여 웬만한 사찰이면 다 삼성각이 대웅전 왼쪽이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럼 古典이나 史料에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자료에서 발췌해 보았다.
▲三子者: 管仲이 齊나나라의 威公(桓公)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고, 夷狄을 물리쳐 그 몸을 바치도록 하니 제나라가 부강하여 제후들이 감히 배반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管仲이 죽자 견조(堅刁), 易牙, 開方이 등용되어 위공이 난에 죽었고, 다섯 公子가 즉위하기를 다투어 그 화가 만연되어 簡公에 이르도록 제나라는 편안한 해가 없었다. 堅刁, 易牙, 開方 세 사람은 저들은 진실로 남의 나라를 혼란시키는 자들이거니와 돌아보건대 이들을 등용한 자는 威公이다. (管仲 相威公 霸諸侯 攘夷狄 終其身 齊國富强 諸侯不敢叛 管仲死 堅刁 易牙 開方 用 威公薨於亂 五公子爭立 其過蔓延 訖簡公 齊無寧歲 堅刁, 易牙, 開方三子 彼固亂入國者 威公也. 古文眞寶 管仲論 蘇洵) ⚙霸 으뜸 패, 刁 바라 조, 攘 물리칠 양, 薨 죽을 훙
▲三閭大夫: 朱熹가 말하였다. 굴원의 이름은 平이고, 楚나라 왕실과 同姓이었다. 회왕(懷王)을 섬기어 三閭大夫가 되었는데, 上官大夫외 근상이 투기하여 그를 모함해서 회왕이 굴원을 멀리하게 되었다.(朱文公曰 原의 名은 平이오 與楚로 同姓이라. 仕於懷王하여 爲三閭大夫(屈氏, 景氏, 昭氏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관직)러니 上官大夫와 及斳尙이 妬毁之라. 離騷經 屈平 古文眞寶後集)
▲三后之純粹兮여: 三后 즉 夏나라 禹王, 憂나라 湯王, 周나라 文王을 가리킴.
▲五帝三王: 오제는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의 다섯 임금을 가리키는바 소호 대신 황제를 넣기도 하며 三王은 夏의 禹王, 商의 湯王, 周의 文王과 武王을 가리킨다. (上秦皇遂客書李斯 古文眞寶後集)
▲天下三分: 적벽대전을 기점으로 중소 군벌들이 몰락하고 魏, 蜀, 吳 세 나라가 지배하는 제2기가 시작된다. (出師表 諸葛亮 古文眞寶後集)
▲三徑就荒: 뜰 앞에 난 세 개의 작은 길. 옛날 장우(蔣詡)라는 사람이 집의 대나무 숲 사이에 세 가닥의 길을 내놓고 求仲과 羊仲이란 두 친구만 오게 하여 함께 놀았다. 여기에서 세 가닥 길(三徑)이 隱士가 사는 곳을 가리키게 되었다. ( 歸去來辭 陶淵明 古文眞寶後集)
▲三輔豪 馳聲九州牧: 경조부(京兆府), 좌빙익(左馮翊), 우부풍(右扶風)의 세 곳 장관의 발자취를 좇으며, 온 천하의 지방 장관 중에서 이름을 떨치려 하였다. (古文眞寶 孔稚圭의 北山移文)
▲襟三江而帶五湖: 삼강은 荊江, 松江, 浙江이며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있다는 의미. 오호는 太湖, 파양호(鄱陽湖), 靑草湖, 丹陽湖, 洞庭湖를 이름. 옛날에 남창군이 있던 이곳은 지금은 홍도부가 있다. 별자리로는 익성과 진성에 해당되며, 땅은 형산과 여산에 접해있다. 세 강이 옷깃처럼 두르고 다섯 호수가 띠처럼 둘려 있다. (南昌故郡이요 洪都는 新府라 星分翼軫하고 地接衡盧하며 襟三江而帶五湖 하고 控蠻荊而引甌越이라. 古文眞寶 王勃의 滕王閣序)
▲三尺微命: 보잘 것 없는 목숨. 나왕발은 보잘 것 없는 목숨을 지닌 천한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아서, 밧줄을 청할 길 없으니 약관의 종군 같은 사람을 기다려도 보고, 붓을 던질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종각의 장풍을 부러워하기도 한다.(勃은 三尺微命이요 一介書生이라 無路請纓하니 等終軍之弱冠이요 有懷投筆하니 慕宗慤之長風이라. 滕王閣序 王勃 古文眞寶後集)
▲三綱淪而九法斁(두): 삼강이 매몰되고 구법이 무너지다.
揚墨交亂而聖賢之道不明하니 聖賢之道不明이면 則 三綱淪而九法斁(두)하고 禮樂崩而九法斁하고 禮樂崩而夷狄橫하리니 幾何其不爲禽獸也리오. 양주와 묵적가 서로 어지럽히여 성현이 도가 밝지 못하면 삼강이 매몰되고 구법이 무너지며 이적이 횡행할 것이니, 법도가 무너지게 될 것이며, 예악이 무너지면 오랑케들이 횡행하게 될 것이니 어떻게 새나 짐승들처럼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斁:무너질 두 (與孟簡尙書書 韓愈 古文眞寶後集)
▲序屬三秋: 절서는 삼추에 속한다. 三秋는 孟秋(七月), 仲秋(八月), 季秋(九月). 절서는 삼추라 장마 물이 다하니 차가운 못의 물이 맑고, 연광이 엉기니 저녁 山이노을져 붉다. ( 序이 屬三秋라 潦水盡而寒潭淸하고 煙光凝而慕潭淸하고 煙光凝山紫라. 王勃의 滕王閣序 古文眞寶後集)
▲三光同其得失: 삼광이 정치의 득실을 함께 하다. 예로써 질서를 예방하고 예로써 사치함을 금지하고 낙으로써 사치함을 방지하고 왼쪽에는 말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고, 오른쪽에는 일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으며 나가면 경계하고 사시가 참서를 기르고 삼광이 청치의 득실을 함께 합니다. (豫以禁其奢하고 禮以防其奢하며 左言而右事하고 出警而入蹕하여 四時調其慘舒하고 三光同其得失이라 大寶箴 張蘊吉 古文眞寶後集)
▲三代之前後:: 3대의 전후. 아! 그 또한 다행히 3대의 이후에 태어나서 우왕·탕왕·문왕·무왕‧주공·공자에게 축출울 당하지 않았고, 그 또한 불행히 삼대의 이전에 나오지 못하여 우왕·탕왕·문왕·무왕‧주공·孔子에게 바로잡음을 받지 못하였다. (嗚呼라 其亦幸而出於三代之後하여 而不見出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요 其亦不幸而不出於三代之前하여 不見正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로다 原道 韓愈 古文眞寶後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