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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왕이~
24/12/27 12:19:00 金 鍾國 조회 71
신라①의 왕이 정월 15일에 천천정(天泉亭)에서 거동하였더니 까마귀가 은으로 만든 합(榼 술그릇)을 물어다가 왕 앞에 놓았다. 합 속에 편지가 있었는데 매우 굳게 봉하였으며 겉에 씌여 있기를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왕이 말하기를 두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은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하니 한 大臣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임금을 말한 것이고 두 사람이라고 한 것은 신하를 말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봉을 열어보니 그 속에 있는 편지에 말하였기를 「궁중의 금갑 속에 금갑(琴甲)을 쏘라(射宮中琴匣)」라고 하였다. 왕이 달려 돌아와 궁중에 들어가서 금갑을 보고 활시위를 한껏 잡아당겨서 쐈더니 금갑 속에 사람이 있었다. 바로 內院의 분수승(焚修僧: 분향하고 도를 닦는 중)으로서 왕비와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비와 중은 다 사형을 받았다.
왕이 까마귀의 은혜를 감사하여 매년 이날에는 향기로운 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먹였는데, 지금까지도 그 풍습을 전수하여 名日의 음식이 되었다.

그것을 만드는 법은 찰밥을 잘 씻어 쪄서 밥을 짓고 잘게 썰은 곶감과 밤 대추 마른 고사리 석이버섯 등의 물건을 맑은 물과 맑은 장에 썩어서 다시 찐 다음에 또 잣, 호도를 넣는다. 그 맛이 매우 달다. 이것을 약밥이라고 한다. 세속에서 전하는 말에 약밥은 마땅히 까마귀가 아직 일어나기 전에 먹어야 한다. 아마 天泉寺의 故事에 因由 함일 것이다.
 
*①이 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온다. 三國遺事에 의하면 그때의 신라왕은 비처왕(毗處王) 또는 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과는 다르다.   위의 글은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 韓國名著大全集에 따온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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