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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과 史書에서 찾은 ‘三’이 든 文章 探究 (13 최종회)
24/07/22 07:56:24 金 鍾國 조회 91
▲三宅三俊: 또한 및 성탕이 올라가 천자가 되시어 상제의 밝은 명을 크게 다스린 것은 등용한 三有宅이 능히 宅(지위)에 나아가며, 이른바 三有俊이 능히 俊(덕)에 나아가서 엄숙히 생각하고, 크게 본받아 三宅과 三俊을 능히 등용하였음으로 商나라 도읍에서는 그 읍에 화합하였으며, 사방에서는 크게 본받아 덕을 나타나게 하였다. (亦越成湯 陟不釐上帝之耿命 乃用三有宅 克卽宅 曰三有俊 克卽俊 嚴惟丕式 克用三宅三俊 其在商邑 用協于蹶邑 其在四方 用丕式見德. 書經 周書 立政) *用丕式見德: 사방에서 덕을 보고 본받는 것. 文王과 武王이 능히 三有宅의 마음을 알고, 三有俊의 마음을 분명히 보시어, 공경히 상제를 섬기며 백성의 長과 伯을 세웠다. ⚙釐:다스릴 리
▲玆惟三公: 태사⋅태부⋅태보를 세우노니, 이가 三公이니 도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음양을 조화하여 다스리니 관원을 반드시 구비할 것이 아니요 오직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임명하여야 한다.(立太師太傅太保 玆惟三公 論道經邦 燮理陰陽 官不必備 惟其人. 書經 周書 周官) *관원을 굳이 구비할 것이 없고 오직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입명하는 것이다.
 
▲曰三孤: 少師⋅少傅⋅少保를 三孤라하니, 公의 다음이 되어 조화를 넓혀 천지를 공경하여 밝혀서 나 한 사람을 보필한다.(少師少傅少保 曰三孤 二公弘化 寅亮天地 弼予一人. 書痙 周書 周官)*孤는 특별함이니, 三少는 비록 三公의 부관이니, 부관이 아니므로 孤라고 한 것이다.
▲三事曁大夫: 왕이 말씀하셨다. “아! 三事와 대부들아, 네가 보유한 관직을 공경히 수행하며, 네가 보유한 정사를 다스려서 너희 군주를 도와 길이 兆民을 편안히 해서 만방이 싫어함이 없게 하라.” (王曰 嗚呼 三事曁大夫 敬爾有官 難爾有政 以佑乃辟 永康兆民 萬邦 惟無斁. 書經 周書 周官) *三事는 立政의 삼사이다. ⚙斁; 싫을 역, 섞을 두, 曁: 및 기, 함께 기
▲三宿, 三祭, 三咤: 마침내 동과 모를 받아 왕이 세 번 宿(술잔을 잡고 신에게 나아감)하고, 세 번 祭(땅에 부음)하고 세 번 咤(다시 신에게 술잔을 올림)하시자, 上宗이 “흠향했노라” 하였다. (乃受同瑁 王三宿, 三祭, 三咤 上宗曰 饗. 書經 周書 顧命)
▲凡三易韻: 休齎(陳知柔)가 말했다. “시(詩經)가 변하여 離騷(이소)가 되고, 이소가 변하여 사가 되었으니, 이들은 모두 노래로 부를 수 있다. 辭는 시와 이소의 소리를 겸하였는데 더욱 간결하고 깊다” 한 무제는 분음에서 후토에게 제사하고, 추풍사 한 장을 지었는데, 무릇 세 번 운을 바꾸어 節(리듬)이 짧고 소리가 애처러우니, 이는 辭의 權與(시조)이다“ (休齋云 詩變而爲騷 騷變爲辭 皆可歌也 辭則兼詩騷之聲而尤簡䆳焉者 漢武帝因祠后土於汾陰 作秋風辭一章 凡三易韻 其節短 其聲哀 此辭之權輿乎. 古文眞寶後集 秋風辭) *䆳” 깊을 수
 
▲三顧草廬: 신은 본래 포의(평민)로서 몸소 남양 땅에서 농사를 지어 난세에 구차하게 성명(생명)을 부존하려 하였고, 제후에게 알려지거나 영달하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선제께서는 신을 비루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이 직접 왕림하시어 초려 가운데로 세 번이나 신을 찾아주시고 신에게 당세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 때문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구치(국사에 분주함)할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 후 경복을 만나 패군한 즈음에 임부를 맡고 위난한 때에 명령을 받든 지가 21년이 되었습니다. (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問達於諸侯 先帝不以臣卑鄙 猥自枉屈 三顧臣於草廬之中 咨臣以當世之事 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 後置傾覆 受任於敗軍之際 復命於危難之間 爾來二十有一年矣. 古文眞寶 諸葛亮의 出師表)
▲未解三也: 조조는 智計가 보통사람보다 크게 뛰어나 용병하는 것이 孫武⋅吳起와 방불합니다. 그러나 남양에서 곤궁을 당하고, 오소에서 위험을 겪고 기연에서 위태롭고, 여양에서 핍박을 당하고, 기산에서 패할 뻔하고, 동관에서 죽을 뻔한 뒤에야 임시로 천하를 평정하려 하니, 이것은 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 번째입니다. (曹操智計殊絶於人 其用兵也 髣髴孫吳 然困於南陽 險於烏巢 危於祁連 偪於黎陽 幾敗北山 殆死潼關 然後僞定一時爾 況臣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 此臣之未解三也. 古文眞寶 諸葛亮의 後出師表) ⚙髣: 비슷할 방 髴: 비슷할 불 祁: 성할 기 偪: 핍박할 핍 黎: 검을 여 潼: 강이름 동
▲襟三江帶五湖: 남창은 옛 고을의 명칭이요, 홍도는 새로 생긴 도독부의 소재지이다. 별의 분야는 익수(翼宿)와 진수(軫宿)에 해당하고 땅은 형산과 여산에 접해있다. 삼강을 옷깃처럼 전면에 놓고 오호를 띠처럼 둘렀으며, 형산과 여산에 접해있다. ~ 때는 9월이요, 節序는 三秋에 속한다. 삼추는 맹추(7월) 중추(8월) 계추(9월) *三江은 荊江, 松江, 浙江이고 五湖는 太湖, 都陽湖 , 靑草湖, 端陽湖, 洞庭湖이다. 三秋는 孟秋, 仲秋, 季秋 (南昌故郡 洪都新府 星分翼軫 地接衡盧 襟三江而帶五湖 控蠻荊而引甌越.~時維九月 序屬三秋 古文眞寶 王勃의 縢王閣序) ⚙控: 제어할 강, 甌: 사발 구 *三尺微命: 士의 띠 길이가 三尺이므로 낮은 관직을 뜻한다. 命은 옛날 벼슬의 품계에 一命에서 九命까지 있는데, 王勃이 일찍이 虢州(괵주)參軍이 되어 되었음으로 말한 것이다.
▲三道水軍統制使: 統制使의 정식 명칭은 三道水軍統制使 겸 慶尙右道水軍節度使였다. 三道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 (水軍)을 총지휘하는 조선시대의 관직으로 관품은 종2품 이다. 지휘 관청과 해군기지로 삼도수군통제영을 두었다. 李舜臣 將軍은 1593년 8월 1일 (49세) 삼도 수군통제사에 임명되셨다.(三道水軍統制營 洗兵館 懸板解說輯)
▲三千之中 有毛遂: 전국시대 趙나라 公子인 平原君 趙勝은 선비를 좋아하여 門客이 3천 명에 이르렀는데, 趙나라가 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하자, 文武에 능한 문객 20명을 뽑아 함께 楚나라로 가서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19명을 구하고 한 명은 선발하지 못하였다. 이때 毛遂가 자신을 데리고 갈 것을 청하자, 평원군은 “선비가 세상에 거처함은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으면 그 끝이 반드시 저절로 나오는 것과 같아서 자연 그 명성이 드러나기 마련이오. 그런데 나는 아직까지 당신의 명성을 듣지 못했으니, 이는 당신이 아무런 재주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소.” 하였다. 이에 毛遂는 “내 진작 주머니 속에 있었더라면 송곳의 자루가 통째로 나왔을 것이요, 단지 송곳 끝이 나올 뿐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여, 그동안 자신이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음을 말했다. 평원군은 마침내 그를 데리고 楚나라로 갔는데, 모수는 과연 楚王을 설득시켜 구원병을 파견하게 되었다. (古文眞寶 李白의 與韓荊州書)
 
▲處其三: 옛날 백성들은 네 종류였는데 지금의 백성들은 여섯 종류이며, 옛날의 가르침은 그 하나에 해당되었는데, 지금의 가르침은 셋에 해당되도다. 농사짓는 집은 하나인데, 곡식을 먹는 집은 여섯이며, 기물을 사용하는 집은 여섯이며, 장사하는 집은 하나인데 이용하는 집은 여섯이니, 어찌하여 백성들이 곤궁하고 또 도둑질하지 않겠는가? (古之爲民者四 今之爲民者六 處其一 今之敎者處其三 農之家家一而食栗之家六 工之家一而用其之家六 賈之家一而資焉之家六 奈之何民不窮且盜也. 古文眞寶 韓愈의 原道)
▲三綱九法: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천하는 楊朱에게로 가지 않으면 묵적에게로 간다.” 하셨으니, 양주와 묵적이 서로 어지럽힘에 성현의 도가 밝아지지 못하며, 성현의 도가 밝지 못하면 삼각이 매몰되고 九법이 무너지며, 예악이 무너지고 이적이 횡행할 것이니, 어찌 금수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께서는) “양주와 묵적의 도를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孟子云 今天下不之楊則之墨 楊墨交亂而聖賢之道不明 賢聖之道不明 則三綱淪而九法斁(두) 禮樂崩而夷狄橫 幾何其不爲禽獸也 故 曰能言踞楊墨者 聖人之徒也. 古文眞寶 韓愈의 與孟簡尙書書) *三綱淪而九法斁(두): 三綱= 父子, 君臣, 夫婦의 윤리이며 九法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아홉 가지 원리인 洪範九疇를 가리킨다. 九疇는 ①五行, ②五事, ③八政, ④五紀, ⑤皇極, ⑥三德, ⑦稽疑, ⑧庶徵, ⑨五福⋅六極이다. ▲三子者: 管仲이 齊나나라의 威公(桓公)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게 하고, 夷狄을 물리쳐 그 몸을 바치도록 하니 제나라가 부강하여 제후들이 감히 배반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管仲이 죽자 견조(堅刁), 易牙, 開方이 등용되어 위공이 난에 죽었고, 다섯 公子가 즉위하기를 다투어 그 화가 만연되어 簡公에 이르도록 제나라는 편안한 해가 없었다. 堅刁, 易牙, 開方 세 사람은 저들은 진실로 남의 나라를 혼란남의 나라를 혼란시키는 자들이거니와 돌아보건대 이들을 등요한 자는 威公이다. (管仲 相威公 霸諸侯 攘夷狄 終其身 齊國富强 諸侯不敢叛 管仲死 堅刁 易牙 開方 用 威公薨於亂 五公子爭立 其過蔓延 訖簡公 齊無寧歲 堅刁, 易牙, 開方三子 彼固亂入國者 威公也. 古文眞寶 管仲論 蘇洵) ⚙霸 으뜸 패, 刁 바라 조, 攘 물리칠 양, 薨 죽을 훙
 
나가며
愛國歌에서 출발하여 四書, 經典, 민속놀이, 己未獨立宣言文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의식 속에 ‘三’의 개념이 녹아있는 문구를 찾아 ‘三’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三가’이라는 숫자는 균형을 잡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가려 뽑으면서 마음에 양식으로 삼으려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런 문장들이 있음을 인식하시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은 글귀마다 기록해 두었음으로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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