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相 孟思誠이 大司憲이고, 朴安信이 持平이었을 적에 平壤君 趙大臨을 鞫問하는데 임금께 아뢰지 않고 拷問하였다. 임금이 매우 성내어 두 사람을 수레에 태우고 장차 市街에서 죽이려 하였다. 孟 相이 얼굴빛이 파랗게 질려서 말이 없었으나, 박공은 安閑하여 거의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맹 상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기를 ‘너는 나의 상관이고, 나는 하관이다. 이제 사형수가 되었으니 어찌 지위의 높고 낮음이 있겠는가. 나는 일찍이 네가 지조가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어째서 오늘 겁냄이 이와 같은가? 너는 (우리를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는) 저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이제 무엇을 겁내는가?’ 하였다.
나졸에게 ‘네 기왓장을 가지고 오너라, 라고 말하니, 나졸이 듣지 않았다. 공이 눈을 부릅뜨고 꾸짖어 말하기를 ’네가 매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 반드시 너부터 먼저 병들게 할 것이다‘고 하면서 말소리와 얼굴빛이 더욱 사나워졌다. 나졸이 두려워하여 드디어 기왓조각을 가져다주었다. 공이 詩를 지어 기왓장에 그어서 짓기를 ’직책을 다하지 못했으니, 죽음을 달게 받겠으나, 임금이 간신을 죽였다는 이름 남길 것을 두려워하네’라고 하였다. 나졸에게 주며 ‘빨리 달려가서 임금께 올리라’고 하였다. 나졸이 아니할 수 없어서 가서 대궐에 바쳤다. 그때 獨谷(成石璘)이 좌정승이었다. 병을 무릅쓰고 대궐에 나아가 극력으로 간하니 임금도 성냄을 거두고 마침내 사하여 죽이지 아니하였다.
맹 정승이 젊었을 때 祭官으로 昭格殿에 致祭하였는데, 잠이 채 들기도 전에 꿈에 한 하인이 전해 외치기를 ‘七星이 들어오십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뜰에 내려가 공손히 맞이하였는데, 여섯 丈夫가 이미 들어오고, 일곱 번째는 獨谷이 成 政丞이었다. 공이 죄를 입고 장차 市街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 독곡이 간하여 건져준 힘을 입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평생에 독곡을 부모와 같이 섬겼으며, 독곡이 돌아간 뒤에는 비록 눈·비가 오는 때라도 독곡의 사당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렸다.
慵齋叢話(용재총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