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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 동안 숨겨진 칭기스 칸 가문의 비밀(後)
23/11/12 15:49:34 金 鍾國 조회 4792
우리 역사의 여러 잃어버린 고리들을 보면 그는 ‘고구려는 우리, 말갈(발해)은 퉁구스족’ 이라는 주류학설을 뒤엎고 발해를 세운 칭기스 칸의 先祖인 대(大)씨 가문은 고구려왕가의 서자(庶孼)집안이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는 한 가계에서 나온 우리 역사라는 것이다.

또 발해가 망하는 시점에 고려를 세운 王建은 ‘신라의 개성 호족’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왕가의 외손임을 밝힌다.
구체적으로 王建은 金나라 시조 함보(函普)의 아버지 今幸의 外曾孫이라고 밝힌다. 왕건은 거란이 발해를 무너뜨리자, 격노하면서 예물로 보내온 낙타를 만부교 다리 아래서 굶어 죽게 하면서, 거란과 국교수립을 거부했다.
 
이 때 그는 “발해는 내 친척의 나라”:라고 말을 하면서, 망명해온 발해 세자 대광현 일행을 왕씨 종적(宗籍, 족보)에 올리는데, 그 이유는 한 집안 종씨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왕건이 몸소 보인 그 미스테리한 선언(발해는 내 친척의 나라)과 행동(발해 세자를 자신의 족보에 올린 것)이 이해 될 수 있다. 또 발해가 무너진 우리 북한 땅에서 丁若鏞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명백히 보여주듯이 서기 948년 고려 正宗 3년 때부터 이미 女眞이 들어섰는데, 이는 발해의 계승국이였음을 보여준다. 金始祖 函普는 이 때에 약 3세대 전에 장차 ‘여진’으로 불리게 될 발해 盤安郡으로 들어갔는데, 渤海가 망한 뒤 4세대 후에 함보의 4대손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가 금나라를 세웠다. 金 始祖 函普는 이때에서 약 3세대 전에 장차‘여진’으로 불리게 될 발해 盤安郡으로 들어갔는데, 발해가 망한 후에 함보의 4대손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가 금나라를 세웠다.

이와 관련, 최근 수년간 몇몇 학자들이 신문, 방송 인터넷, 논문 등에서 주장하여 金 太祖 완안아골타의 가계가 신라 왕족아라고 하는 견해가 광범위하게 퍼졌는데, 全原徹 박사는 책에서 이 견해는 철저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금나라를 세운 ‘와안아골타’의 7대조 함보와 그 아버지 今幸은 남국 신라가 망할 때 936년대의 인물이 아니라 北國 발해가 엄연히 존재할 때인 840~50년대에 발해 왕족들로 각각 대야발의 5대와 4대손이라고 밝힌다.
또 그는 신라 왕가의 후손이라고 우리 학자들이 믿어온 청나라의시조 아이신교로(愛新覺羅(애신각라) 누루하치 역시 고구려-발해-고려와 한 가문인 금나라 황족의 후손이라고 한다. 결국 고구려 - 발해 = 고려 - 금나라 - 원나라제국-청나라가 한 가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주장과는 정 반대로 그들 왕조응 창조한 것이 우리 민족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칭기스 칸을 한낱 소수의 양치기 야만 유목민이 세계정복? 이라고…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칙스 칸에 대해 몽골초원의 여러 유민을 통합한 ‘좀더 힘 있는’야만적 유목민 부족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초원에서 양이나 치던 민족이 갑자기 부족 통일을 이루고, 여러 문명세계를 정복한 동기와 힘의 원천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인 전인철 박사의 말대로 칭기스 칸이 고구려-발해 후손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칭기스 칸과 그의 원정대는 더 이상 ‘말을 탄 야만 유목민’이 아니며, 그가 벌인 정복활동 그저 영토의 확장이나 재물 약탈, 혹은 ‘그저 별다른 이유 없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벌인 게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원철 박사는 “그 이전에 세계지도에도 없는 땅에서 느닷없이 전 세계를 떨게 한 ‘세계 정복자’가 탄생했다.”며 “아무런 문화, 전통, 기술, 조직력의 배경이 없던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양치기 유목민 무리 따위가 자기보다 인구면에서 1,000배가 더되고 또 당시의 세상을 지배하던 여러 개의 문명세계를 그렇게 단시일 내에 정복하는 일을 과연 이룰 수 있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결국 세계를 정복한 칭기스칸의 몽골족은 뛰어난 무기 제조술과 오랫동안 집착된 문화와 정보 전달체계, 그리고 윤리와 도덕을 겸비하여, 더불어 잘 정비된 사회조직을 가진 고구려-발해-후고구려의 유민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또 여기에다가 그들이 유목민의 말 타는 기술과 잘 조합했기 때문에 그런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全 박사의 주장이다
칭기스 칸의 집안은 자기 조상이 패배한 전쟁의 기록을 후손에게 절대 잊지 않도록 기록하였고, 마침내 승리의 기록으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과거를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습니까? 라고 한 것이다. 비록 발해와 후고구려가 망해 이 땅을 떠났지만 우리 피붙이로 났던 그들이 나중에 전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든 그 역사의 발굴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바로 알고, 또 우리의 미래 비전이 제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라고 했다.전원철 박사는 칭기스 칸 선조의 계보를 연구하고, 《칭기스 칸》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 혼자 29개의 언어로 된 사서를 전부 독파했다.
서양에서 옛날에 발간된 라틴어 기록들을 비롯하여, 중세 투루크어와 사서는 물론 동방의 《몽골비사》 등 중세 몽골문, 청대 만주어본, 《遼史》, 《金史》, 《元史》, 《元史》 및 우리의 《三國史記》, 《高麗史》 등 각 사서들의 내용을 교차 체크하여, 인명 및 지명을 각 시대별 언어의 변천과정을 통해 면밀히 분석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몽골비사》, 《집사》, 《사국사》, 《투르크의 계보》 등 서방사서에 기록된 칭기스 칸의 先祖의 ‘계보(shejare, 족보)’를 동방 및 우리 사서들과 교차 체크하여 그 인물들의 이름 소리만 대충 맞추어 나가는 식이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곳의 지명, 그들의 활동시기와 연도, 행적, 족보상의 계보까지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우리 사서에서 확인하여 칭기스 칸의 계보를 추적했다. 그 결과 사서들의 내용이 서로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이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십 수개 민족어로 쓰인 주요 원복사서의 해독만 하더라도 전문역사가나 전공자조차도 엄두도 내기 어려울 작업이다. 하지만 그는 이 원서를 해독뿐 아니라 그 내용을 대조, 비교, 교차확인까지 해내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연구⋅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전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여러 가지 언어를 이해하는 여러 동서양 학자들 여럿이 모여, 함께해야 할 연구를 혼자 해낸 셈이다. 그 결과 1126년 칭기스 칸 탄생 이래 853년간 숨겨진 비밀과 내력과 또한 선조로부터 치면 고구려 멸망 후 1300년 동안 숨겨진 세계적인 대비밀이 드러났다고 자부한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한 학자는 全박사 이룬 연구 성과를 보고 ‘세계사 1,000년간을 다시 써야할 大發見’ 이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사실 테무진이 통일한 지역은 이름조차 없던 땅이며, 종족의 이름도 메르키드, 케레이트, 나이만 족 등 여러 종족이 살고 있어서 하나로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몽골’이라는 명칭은 칭기스 칸의 선조 나라인 ‘말갈’(=물길), 즉 ‘말 고을’의 옛 소리인 ‘몰-고을, 곧 ’몰(말,馬)-고을(邑,城)‘에서 생긴 말입니다.
 
고구려는 여러 개의 고을(구려)과 ’일곱 개의 말 골(말갈)‘로 이루어져 커진(高) 나라 ’커구려(고구려)‘였고, 결국 ’말갈‘, 곧 옛 소리로 ’몰골‘이 몽골의 어원입니다..全 박사는 “칭기스 칸은 몽골리아 땅의 여러 종족들을 통일한 뒤 자신의 나라 이름으로 ‘고구려-말갈’ 가운데 후자를 선택했다”며 “그 이유는 자신의 선조가 바로 말갈(발해) 왕족이었고, 또 그가 나라를 세울 당시 동쪽에는 이미 자신과 같은 선조에서 나온 혈통을 나눈 왕건의 ‘고려(고구려)’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라는 국명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몽골(말갈)’의 전음인 ‘몽골(멀갈)’의 전음인 ‘몽골’을 자기 국명으로 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그들 왕조를 창조한 것이 우리민족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全原徹 법학박사이자 중앙아시아 및 북방민족 사학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체첸전쟁 때 전장에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현장주재관으로 일했다. 우리 역사 복원에 매력을 느껴 세계정복자 칭기즈칸의 뿌리가 한민족에 있음을 밝힌 <고구려-발해인 칭기스 칸-몽골 제국의 기원> 1, 2권을 출간했고, 고구려발해학회·한국몽골학회 회원으로 활약하며 다수의 역사분야 저서와 글을 썼다.   *역사팩트: 1300년 동안 숨겨진 칭기스 칸의 비밀 #(유투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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