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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9)
23/10/15 18:27:54 金 鍾國 조회 1282
 
▲三聖祠: 다시 서쪽으로 九月山에 이르러서 당장평을 돌아보고, 三聖祠에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으며, 평양으로 용만(만주)벌판을 바라보니 요동벌판의 나무와 계주에 떠 있는 구름이 점점이 연결되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돌아다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更西遊至九月山 低徊於唐莊坪感淚於三聖祠及 自平壤到龍灣 登統郡亭 北望遼野樹薊 雲點綴徘徊於指顧之間也) 揆園史話序 *용만-압록강 하구에 있는 의주
 
▲天符三印: 하나의 큰 주장하는 신(환인천왕)이 4번째 환웅천왕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지금 사람과 그 밖의 만물을 이미 만들어져 완성된 것 같으니, 너는 가히 그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 뭇 사람들을 거느리고서 몸소 스스로 아래 내려가 하늘을 이어 가르침을 세워 만세 후생에 모범이 되어라하고 명령을 하고, 이에 天符印 3개를 가지고 말하기를, 가히 이것을 가지고 가서 천하에 교화를 베풀라 하니, 이에 환웅천왕이 기쁜듯하여 명령을 거느리고 천부인 3개를 가지고 風伯, 雨師, 雲師 등 3천의 무리를 거느리고서 태백산 박달나무 밑에 내려왔으니, 태백산이란 백두산이로다. *檀木-박달나무, 박달은 배달이라는 뜻이다. (一大主神乃四命桓雄天王曰 如今人物業已造完矣 君可勿惜厥勞率衆人躬自降落下界天立敎爲萬世後生之範乃授之以天符三印曰 可持此敷化於天下桓雄天王欣然領命持 天符三印率風伯雨師雲師等 三千之徒下降太白山之山檀木之下 太白山卽白頭山也 揆園史話 肇判記)
 
▲三氏苗裔: 삼씨의 후손들이 또 가느다랗게 나뉘고 9파로 나뉘어서 즉 견이족, 우이족, 방이족, 황이족, 백이족, 적이족, 현이족, 풍이족, 양이족의 따위들이 다 가지는 다르지만 할아버지는 같으니 심히 서로 멀지 않는 것이며, ‘이(夷)’라고 말한 것은 큰 활을 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을 말하기를 ‘이(夷)’라고 말한 것이다. 설문에 이른바 夷는 ‘大’와 ‘弓’이라 했고 동방사람이라는 것이 이것이다.(三氏苗裔又細分九族 卽畎夷嵎夷方夷黃夷白夷赤夷玄夷風夷晹夷之屬皆異支同祖不甚相遠夷之爲言大弓稱也. 故謂我族曰夷說文所謂夷從大弓東方之人者是也
揆園史話 太始記)
 
▲唐虞三代: 당우(요순),삼대(하, 은, 주)와 진, 한, 수, 당돠 같은 대에 이르러서는 중국 역대를 말한 것이요, 험윤, 훈육, 형만, 월상이라고 하는 따위는 즉 상고의 융과 적족을 일컬음이다.(至如唐虞三代 秦漢隨唐者中國歷代之謂也 獫狁獯鬻荊越裳之屬則上古戎狄之稱也 揆園史話 太始記) *獫-오랑캐이름 험, 狁-오랑캐이름 윤, 獯-오랑캐이름 훈, 鬻-죽 죽
 
▲三年之喪, 三年不爲: 宰我가 말하였다. “삼년상을 기년에 하더라도 너무 오래 한다고 할 것입니다. 期는 1주년이다. 군자가 삼년 동안 예를 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宰我가 밖으로 나가자 ”재아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이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父母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三年喪은 온천하의 공통된 喪이니 宰予는 3년의 사랑이 그 부모에게 있었는가?“ (宰我問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三年不爲樂 惡必崩, 宰我出 子曰予之不仁也 子生三年然後 免於父母之喪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三年之愛於其父母乎 論語 陽貨)
 
▲民有三疾: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백성들이 세 가지 병폐가 있는데, 지금에는 그것마저 없어졌구나!” (子曰 古者 民有三疾 今也 或是之亡也 論語 陽貨) 기운이 화평함을 잃으면 병(疾)이 된다. 그러므로 기품이 편벽된 것도 병(疾)이라고 말한다. 옛날의 이른바 병폐가 지금에는 없어졌다고 말했으니, 이는 풍속이더욱 야박해진 것을 슬퍼하신 것이다.
 
▲殷有三仁, 三黜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나라에 세 仁者가 있었다. 微子는 紂庶兄이요, 箕子와 比干은 紂諸父(叔父)라. 微子는 주왕의 무도함을 보고 떠나가서 宗祀를 보존하였으며, 箕子와 比干은 모두 간하니 紂王이 比干을 죽이고 箕子를 가두어 종(奴)으로 삼았다. 箕子는 거짓 미친척하고, 욕(辱)을 받았다. *三黜(삼출): 유하혜가 士師가 되어 세 번 당하자, 혹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아직 떠날만하지 않은가?” 하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道를 곧게 하여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간들 세 번 내침을 당하지 않겠으며, 道를 굽혀 사람을 섬긴다면 어찌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나겠는가?”(柳下惠爲士師 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論語 微子)
 
▲三日不朝: 齊나라 사람이 女樂(美女 樂工)을 보내니, 季桓子가 그것을 받고 3일을 조회하지 않자, 孔子께서 떠나셨다. 季桓子는 魯나라 대부, “이 편은 仁者와 賢者의 출처를 기록하고 聖人이 행실로써 절충하였으니, 中庸을 道를 밝힌 것이다.”라고 范氏가 말했다. 論語 微子)
 
 ▲有三異人: 마침내 남해의 上長(상장)이 되어 평양에 돌아오니 세 명의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동방으로부터 패수를 건너 이르른 첫 번째 도라(道羅)라고 하고 또 그 다음을 동무(東武)라고 하였는데. 이 깨에 두 용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어 호가를 고쳐서 용가라 하고, 선라로 하여금 용가를 맡게 했고, 道羅가 학가가 되었고, 동무가 구가가 되었고, 또 제도와 다스림이 전에 비해 완성되었다. 이 때에 당하여 檀君의 교화가 저 사방 땅에 흡족하게 되었으니, 북쪽으로 시베리아 벌판에 이르렀고, 서쪽으로 알유 땅을 거느렸고, 남쪽으로 해대(중국 산동반도)까지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동해바다를 끝까지 하여 임금의 명령과 교화가 점점 커지고 넓어졌다. *해대(海垈)-중국 땅의 회수와 태산(산동성 남쪽), 패수는 발해만에 위치한 강 東海는 우리나라 서해를 중국에서 동해라 부른다, (遂爲南海上長及還至平壤有三異人 自 東方渡浿水而至 首曰(....) 道羅 又其次曰東武 於是 因二龍之祥 改虎曰龍加 使仙羅主之 道羅爲鶴加 東武爲狗加 又因蒼鹿之瑞 改鷺加曰鹿加 依前 使夫虞主之⋯ 揆園史話 檀君記)
 
▲東來三人: 그후 夫婁가 또 동쪽에서 온 세 사람을 각지에다 봉해 주었으니, 후세에 옥저, 졸본, 비류라는 일컬음은 다 그 봉해준 바의 나라 이름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통틀어 단군의 세상에서는 무릇 큰 나라 아홉과 작은 나라가 열둘이었는데, 나누어 천하 여러 고을을 다스렸으니, 지금 자세히 알 수 없다.(其後 夫婁又封東來三人於各地 後世之沃沮卒本沸流之稱 皆起於其所封國名也 通檀氏之世 凡大國九 小國十二 分治天下諸州 今不可詳也 揆園史話 檀君記)
*夫婁: 檀君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부루(夫婁), 부여(夫餘), 부우(夫虞), 부소(夫蘇)로서 각기 뛰어난 재주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장남인 부루(夫婁)는 夏나라의 禹 임금이 도산에서 제후들을 소집했을 때 알현하러 갔고, 부여(夫餘)는 '구이설유의 난'이 일어나자 평정하였으며, 부우(夫虞)는 나라에 질병이 돌면 의약을 마련하여 백성들을 구제하였고, 부소(夫蘇)는 산에 맹수가 들끓었을 때 사냥을 하여 퇴치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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