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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丹齋) 申采浩의 우리역사 바로잡기 2) 백제의 해외경락설
23/07/16 14:04:52 金 鍾國 조회 2143
2) 百濟의 海外經略說
丹齋의 史學이 對外抗爭을 강조한 만큼, 그의 歷史敍述에서도 이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朝鮮上古史》 전편에 흐르는 高句麗 對外抗爭 및 對外征服은 돋보이고도 남는다. 또 단재는 朝鮮族의 海外經略 또는 植民活動 대해서도 주시하였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上古時代에 이미 朝鮮族은 중국 山東半島 및 陽子江‧淮水 연안까지 진출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海外經略은 삼국시대에도 있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高句麗의 대외정복은 且置하고 新羅 및 百濟의 海外經略說만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 위의 지도는 현재까지 연구된 자료에서 인용한 것임.

단재는 新羅 眞興王의 업적을 소개하면서 巡狩碑에 나타난 왕의 업적마저도 本紀에는 탈락되었다고 비판하고, 《滿洲源流考》 《吉林遊歷記》 및 《燕嚴集》에 의거 新羅가 吉林 동북지방과 中國 福建省의 泉州에까지 진출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福建省 진출의 경우 統一新羅 때에 海外貿易이 번창 했을 때에 이곳에 新羅坊 新羅所 등이 설치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新羅보다 百濟가 海外經略說이 흥미롭다. 이 기록은 거의 中國側 사료에 의한 것으로 《海東繹史》가 이를 주목하게 하였으나, 中國側이 고증할 수 없다 했으나 丹齋가 처음 거론했다. 단재는 近仇首王(378~384)과 東城王(475~501)떼의 것이고, 경락 지역은 중국과 일본이라 했다.

丹齋는 《梁書》 《宋書》 및 《資治通鑑》에 의거 百濟의 遼西地域 經略을 주장했다. ※ 위의 지도는 현재까지 연구된 자료에서 인용한 것임(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百濟 近仇首王 때 鮮卑族의 慕容氏를 처서 遼西와 北京을 빼앗고 遼西‧晉平 二郡을 설치하였으며, 鹿山까지 쳤다. 前秦이 소유한 山東지방과 東晋이 소유한 江蘇‧浙江(절강) 등지를 자주 경략하였다. 또 東城王 때는 중국뿐 아니라 日本까지도 海外植民地를 삼았음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丹齋의 海外經略說이 중국지역 뿐 아니라 倭에까지 미쳤다고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日本地域에 대한 百濟의 海外經略說은 三韓‧三國系의 日本進出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後學들에 의해 보다 진지한 檢證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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