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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36). 원호(元豪)가 왜적(倭敵)을 쳐부숨.(37). 권응수(權應銖) 등이 영천(永川)을 수복함.
23/07/15 10:07:40 金 鍾國 조회 2180
36. 원호(元豪)가 왜적(倭敵)을 쳐부숨.
江原道助防將元豪 擊賊于龜尾浦 殲之. 又戰于春川 兵敗而死.
時賊大陣 在忠州及原州 連營達于京都 其在忠州者 取路竹山⋅陽智⋅龍仁往來 其在原州者 欲從砥平⋅楊根⋅楊州⋅廣州抵京.
元豪擊殲于驪州⋅龜尾浦. 利川府使邊應里 又船載射手 乘霧邀賊於驪州之馬灘 殺賊頗多.
由是原州賊路遂斷 悉由忠州之路. 而利川⋅驪州⋅楊根⋅砥平等邑之民 見遣於賊鋒者 人以爲豪之功也.
巡察使柳永吉 又催豪擊春川賊. 豪旣勝 頗有輕敵之意 賊知豪將至 設伏以待 豪不知而進 伏發遂爲所殺. 於是江原一道 無禦賊者.

강원도조방장(江原道助防將) 원호(元豪)가 왜적(倭敵)을 구미포(龜尾浦)에서 쳐서 이를 섬멸시켰다. 그는 또 춘천(春川)에서 싸우다가 패하여 죽었다. 이때 왜적(倭敵)의 대진(大陣 : 큰 진영)이 충주(忠州)와 원주(原州)에 있었는데, 그 병영(兵營 : 군영)이 서울에까지 연달아 있었다. 충주에 있는 적들은 죽산(竹山)⋅양지(陽智)⋅용인(龍仁)의 길을 왕래하고, 그 원주에 있는 적들은 지평(砥平)⋅양근(楊根)⋅양주(楊州)⋅광주(廣州) 등지로부터 서울에 이르려고 하였다. 원호(元豪)는 倭敵을 여주(驪州)의 구미포(龜尾浦)에서 쳐서 섬멸시켰다. 이천부사(利川府使) 변응성(邊應星)은 또 배에 활쏘는 군사를 싣고 안개 낀 틈을 타서 倭敵을 여주의 마탄(馬灘)에서 맞아 쳐서 적을 죽인 것이 자못 많았다.

이로부터 원주(原州) 倭敵들의 길은 드디어 끊어져서 모두 충주(忠州)의 길을 경유하여 다니게 되었고, 이천(利川)⋅여주(驪州)⋅양근(楊根)⋅지평(砥平) 등 고을의 백성들은 倭敵의 칼날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사람마다 원호의 공이라고 생각하였다.
순찰사(巡察使) 유영길(柳永吉)은 또 원호를 재촉하여 춘천(春川)의 倭敵을 치게 하였는데, 원호는 벌써 적을 쳐서 이겼으므로 자못 倭敵을 깔보는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춘천의 倭敵들은 원호가 장차 쳐들어올 것을 알고 복병을 베풀고 기다렸다. 원호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나가다가 倭敵의 복병이 일어나 드디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있어서 강원도(江原道) 한 도(道)에서는 倭敵을 막아 낼 사람이 없었다.
 
 
37. 권응수(權應銖) 등이 영천(永川)을 수복함.
訓鍊副奉事權應銖⋅鄭大任等 以鄕兵擊永川賊 破之 遂復永川.
應銖永川人 有膽勇 與大任率鄕兵千餘人 圍賊于永川 軍士畏賊不進.
應銖斬數人 士卒爭奮 踰城而入 與賊巷擊. 賊不勝 奔入倉中 或上明遠樓 我軍以火攻之 悉燒死 臭聞數里.
餘賊數十 遁歸慶州.
自是新寧⋅義興⋅義城⋅安東等處賊 皆聚一路. 而左道郡邑得保 永川一戰之功也.

훈련원부봉사(訓鍊院副奉事*1) 권응수(權應銖)*2)와 정대임(鄭大任)*3) 등이 향병(鄕兵)*4)을 거느리고 영천*永川)에 있던 왜적(倭敵)을 쳐서 이를 파하고 드디어 영천을 수복하였다. 권응수[應銖]는 영천 사람인데, 담력과 용맹이 있었다. 그는 정대임[大任]과 함께 향병(鄕兵) 천여 명을 거느리고 倭敵을 영천성(永川城)에서 포위하였는데, 군사들이 倭敵을 두려워하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권응수는 그 몇 사람을 베니, 군사들이 다투어 기운을 뽐내며 성을 넘어 들어가서 倭敵과 좁은 골목에서 싸워 쳐부수니 倭敵들은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하여 창고 속으로 들어가고, 혹은 명원루(明遠樓) 위로 올라갔다. 우리 군사는 불로써 이를 공격하여 모두 태워 죽였는데, 그 시체 타는 냄새가 몇 리까지 풍겼다.

그 살아남은 倭敵 수십 명은 도망하여 경주(慶州)로 돌아가 버렸다. 이로부터 신녕(新寧)⋅의흥(義興)⋅의성(義城)⋅안동(安東) 등지의 倭敵들도 다 한쪽 길로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경상좌도(慶尙左道)의 여러 고을이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천(永川)에서 한 번 싸워 이긴 공이었다.
*1)훈련원부봉사(訓鍊(練)院副奉事) : 훈련원(訓鍊院)의 정9품 벼슬. 훈련원은 병사의 시재(詩才 : 시험), 무예(武藝)의 연습, 병서(兵書)의 강서(講書)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관아).

*2)권응수(權應銖, 1546∼1608) : 조선조 宣祖 때의 무장. 자는 중평(仲平), 호는 백운재(白雲齋), 시호는 충의(忠毅), 본관은 안동(安東).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영천(永川)을 수복하고는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음. 뒤에 경상도병마사(慶尙道兵馬使)⋅밀양부사(密陽府使)⋅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 등을 지냄.
*3)정대임(鄭大任, 1553∼1594) : 조선조 宣祖 때의 무장.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 본관은 연일(延日).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銖)와 의병을 거느리고 영천(永川)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움. 뒤에 무과에 급제하고 왜적(倭敵)과 싸우다가 전사함.
*4)향병(鄕兵) : 시골 사람들로 편성된 군대. 향토(鄉土)의 군사. 여기서는 의병(義兵)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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