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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30). 이순신(李舜臣)이 거북선[龜船]으로 왜적(倭敵)을 격파함.
23/07/01 16:22:41 金 鍾國 조회 2233
30. 이순신(李舜臣)이 거북선[龜船]으로 왜적(倭敵)을 격파함.

全羅水軍節度使李舜臣 與慶尙右水使元均 全羅右水使李億祺等 大破賊兵于巨濟洋中.
初賊旣登陸 均見賊勢大 不敢出擊 悉沉其戰船百餘艘及火炮軍器於海中 獨與手下裨將李英男⋅李雲龍等 乘四船奔至昆陽海口 欲下陸避賊. 於是水軍萬餘人皆潰.
英男諫曰「公受命爲水軍節度 今棄軍下陸 後日朝廷按罪 何以自解 不如請兵於全羅道 與賊一戰 不勝然後逃未晚也?」均然之 使英男往舜臣請援.
舜臣辭「以各有分界 非朝廷之命 豈宜擅自越境?」均又使英男往請 凡往返至五六不已 每英男回 均坐船頭 望見痛哭.
旣而舜臣率板屋船四十艘 幷約億祺到巨濟 與均合兵進. 與賊船遇於見乃梁.
舜臣曰「此地海狹水淺 難於回旋 不如佯退誘賊 至海濶處相戰也.」均乘憤欲直前博戰.
舜臣曰「公不知兵 如此必敗.」遂以旗揮其船退 賊大喜 爭乘之.
旣出隘口 舜臣鳴鼓一聲 諸船一齊回棹 擺列*11)於海中 正與賊船撞著*12) 相距數十步.
先是舜臣 創造龜船 以板鋪其上 其形穹窿如龜 戰士櫂夫 皆在其內 左右前後 多載火炮 縱橫出入如梭.
遇賊船 遠以大砲碎之 諸船一時合攻 烟焰漲天 焚賊船無數. 有賊將在樓船 高數丈 上施樓櫓 以紅段彩氈*13)圍其外 亦爲大砲所破 賊悉赴水死.
其後賊連戰皆敗 遂遁 入釜山⋅巨濟 不復出.
一日方督戰 流丸中舜臣左肩 血流至踵 舜臣不言 戰罷 始以刀割肉出丸 深入數寸 觀者色墨 而舜臣談笑自若.
捷聞 朝廷大喜 上欲加舜臣以一品 言者以爲大濫 陞正憲 億祺⋅均 陞嘉善.
先是賊將平行長 到平壤投書曰 <日本舟師十餘萬 又從西海來 未知大王龍御 自此何之?>
蓋賊本欲水陸合勢西下 賴此一戰 遂斷賊一臂. 行長雖得平壤 而勢孤不敢更進. 國家得保全羅⋅忠淸 以及黃海⋅平安沿海一帶 調度軍食 傳通號令 以濟中興.
而遼東金復海蓋與天津等地 不被震驚 使天兵從陸路來援 以致卻賊者 皆此一戰之功.
嗚呼! 豈非天哉? 舜臣因率三道舟師 留屯于閑山島 以遏賊西犯之路.

전라수군절도사(全羅水軍節度使) 이순신(李舜臣)*1)이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2),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3) 등과 함께 적병을 거제도(巨濟島) 바다 가운데서 크게 격파하였다.  이보다 먼저 倭敵이 바다를 건너 육지로 올라왔을 때에 원균(元均)은 倭敵의 형세가 대단한 것을 보고 감히 나가서 치지 못하고, 그 전선(戰船) 백여 척과 화포(火砲)⋅군기(軍器)를 바닷속에 침몰시켜 버린 다음, 홀로 수하의 비장(裨將) 이영남(李英男)*4)⋅이운룡(李雲龍)*5) 등과 함께 네 척의 배를 타고 달아나 곤양(昆陽)의 바다 어귀에 이르러 육지로 올라가서 倭敵을 피하려고 하였다. 이에 그 수군(水軍) 만여 명이 다 무너져 버렸다.

이영남(李英男)이 간하기를, "공(公)은 임금의 명령을 받아 수군절도사가 되었는데, 지금 군사를 버리고 내려간다면 뒷날 조정에서 죄를 조사할 때 무슨 이유를 들어 스스로 해명하겠습니까? 그보다는 구원병을 전라도(全羅道)에 청하여 倭敵과 한번 싸워 보고, 이기지 못 하겠으면 그 연후에 도망하여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니, 원균(元均)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겠다고 여겨 이영남으로 하여금 이순신에게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이에 대하여 "각각 분담한 한계가 있으니, 조정의 명령이 아니면 어찌 함부로 경계를 넘어갈 수 있으리오?" 하며 거절하였다.

원균은 또 이영남으로 하여금 가서 청하게 하여 무릇 대 여섯 차례나 마지 않고 왔다가 돌아갔는데, 늘 이영남이 돌아갈 때마다 원균은 뱃머리에 앉아서 바라보고 통곡하였다.  얼마 뒤에 이순신은 판옥선(板屋船)*6) 40척을 거느리고 아울러 약속한 이억기와 함께 거제(巨濟)*7)에 이르렀다. 이에 원균과 함께 군사를 합세하여 나아가 倭敵의 배와 견내량(見乃梁)에서 만났다.  이순신은 말하기를, "이곳은 바다가 좁고 물이 얕아서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어려우니 거짓으로 물러가는 척하고 적을 유인하여 바다가 넓은 곳으로 나가서 서로 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원균이 분함을 못이겨 바로 앞으로 나아가서 싸우려고 덤볐다.

이순신은 말하기를, "공(公)은 병법을 모릅니다, 그려. 그렇게 하다가는 반드시 패하고 맙니다." 하고는, 드디어 깃발로써 그 배들을 지휘하여 물러나니 倭敵들은 크게 기뻐하며 서로 앞을 다투어 따라 나왔다. 배가 벌써 좁은 어귀를 다 벗어나왔을 때 이순신이 북소리를 한 번 울리니 , 모든 배들이 일제히 노를 돌려 저어 바다 가운데 열 지어 벌여 서서 바로 적선과 맞부딪치니 서로의 거리는 수십 보쯤 떨어져 있었다.
이보다 먼저 이순신은 거북선[龜船]*8)을 창조하였다. 이 배는 널판자로 배 위를 덮어 그 모양이 활처럼 가운데가 높고 주위가 차츰 낮아져 서 거북[龜]과 같았고, 싸우는 군사들과 노젓는 사람들은 다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활동하고, 왼쪽, 오른쪽 앞뒤에는 화포(火砲)를 많이 싣고 마음대로 이리저리 드나드는 게 마치 베짜는 북[梭] 드나들 듯 하였다.

이순신은 적선을 만나자 대포를 쏘아 이들을 쳐부수며 여러 배들이 일시에 합세하여 공격하니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였고, 적선을 불태운 것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때 적장은 누선(樓船)*9)을 타고 있었는데, 그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고, 그 위에는 높은 망대가 있어 붉은 비단과 채색 담요로 그 밖을 둘러 쌓았다. 이 배도 또한 우리 대포에 맞아 부서져 버리고 배에 탔던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어 버렸다. 그 뒤에도 倭敵들은 싸움마다 연달아 다 패하여 드디어는 도망하여 부산(釜山)⋅거제(巨濟)로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였다.

하루는 이순신이 바야흐로 싸움을 독려하다가 날아오는 총알이 그의 왼쪽 어깨에 맞아서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렸으나, 이순신은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그는 싸움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칼로써 살을 베고 총알을 꺼내니 두어 치나 깊이 박혀 보는 사람들은 낯빛이 까맣게 질렸으나, 이순신은 말하고 웃고 하는 것이 태연하여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첩보[捷]가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크게 기뻐하여 임금께서는 이순신에게 한 품계[一品] 벼슬을 더 높여 주려고 하였으나, 간하는 사람이 너무 지나친 일이라고 하므로 이순신을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이억기와 원균을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높였다.

이보다 먼저 적장 평행장(平行長 : 小西行長)은 평양(平壤)에 이르러 글을 보내 말하기를, <日本의 수군[舟師] 10만여 명이 또 서해(西海)로부터 올 것입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대왕의 행차는 이로부터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하였는데, 대체로 적은 본래 수군과 육군[水陸]이 합세하여 서쪽으로 내려오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한 번의 싸움에 힘입어 드디어는 그 한 팔이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小西行長은 비록 평양성[平壤]을 빼앗았다고 하더라도 그 형세가 외로워서 감히 다시는 전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나라에서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아울러 황해도[黃海]와 평안도[平安] 연안 일대도 보전할 수가 있었고, 군량을 조달하고 호령을 전달할 수가 있어서 나라의 중흥(中興)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동(遼東)의 금(金)⋅복(復)⋅해(海)⋅개주[蓋]와 천진(天津) 등지도 적의 침해로 놀람을 당하지 않고, 明나라 군사로 하여금 육로(陸路)로 와서 도와 倭敵을 물리치게 된 것이니, 이는 다 이순신 이 한 번 싸움에 승리한 공이었다. 아, 이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 이순신은 이로 인하여 삼도(三道 : 경상⋅전라⋅충청도)의 수군[舟師]을 거느리고 한산도(閑山島)*10)에 주둔하여 왜적이 서쪽으로 침범하려는 길을 막았다.

*1)이순신(李舜臣, 1545∼1598) : 조선조 宣祖 때의 명장(名將).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萬戶)⋅조방장(助防將)⋅정읍현감(井邑縣監)⋅군수(郡守) 등을 거쳐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가 되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倭敵을 크게 무찔러 나라를 구하고, 정유재란 때 노량해(露梁海)에서 倭敵의 퇴로를 막고 섬멸시키다가 전사함.
*2)원균(元均, ?∼1597) : 조선조 宣祖 때의 무장(武將). 자는 평중(平仲).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萬戶)⋅부령부사(富寧府使)를 거쳐 임진왜란 때엔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로 倭敵과 싸우다가 패사(敗死)함.

*3)이억기(李億祺, 1561∼1597) : 조선조 宣祖 때 무장(武將). 자는 경수(景受),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시호는 의민(毅愍). 무과에 급제하여 함흥부사(咸興府使)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로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倭敵을 크게 파하고, 1597년 정유재란 때 칠천량(漆川梁)에서 倭敵과 싸우다가 원균(元均)과 함께 전사함.
*4)이영남(李英男, ?∼1598) : 조선조 宣祖 때의 무관(武官). 임진왜란 때 가리포첨절제사(加里浦僉節制使)로 원균(元均)을 도와 倭敵을 쳤고, 뒤에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진도(珍島)에서 倭敵을 쳐 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 적을 섬멸시키다가 전사함.

*5)이운룡(李雲龍, 1562∼1610) : 자는 경현(景見),호는 동계(東溪).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宣祖 18년(1585) 무과에 급제. 조선조 宣祖 때의 무관(武官). 임진왜란 때 옥포만호(玉浦萬戶)에 임명되어 원균(元均)이 패전한 뒤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倭敵을 물리쳐 공을 세우고 그 추천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가 됨. *6)판옥선(板屋船) : 널판자로 지붕과 벽을 만든 전선(戰船).

*7)거제(巨濟) : 경상남도 동남단 대한해협(大韓海峽)에 있는 우리나라 제2의 섬.
*8)거북선[龜船] :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창조하여 倭敵을 격멸시킨 전투용 공격선.
*9)누선(樓船) : 다락처럼 만든 큰 배.
*10)한산도(閑山島) :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의 중부, 거제도(巨濟島)의 서남쪽에 있는 섬. 이순신(李舜臣)이 倭敵을 파하여 크게 승리한 곳.

*11)파렬(擺列) : 열 지어 벌려 서서. 擺 : 열릴 파. 벌여놓다. 배열하다. 흔들리다. 요동하다. 列 : ①벌릴 렬. 나란히 하다. 가지런하다. 다스리다. 행렬. 차례. 등급. 나누다. 차례를 세우다. ②보기 례 <例>.
*12)당착(撞著) : ①서로 맞부딪침. ②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모순(矛盾). 撞 : 칠 당. 쳐서 찌르다. 부딪치다. 돌진하다. 著 : ①분명할 저. 짓다. 저술하다. ②둘 저. 비축하다. ③붙일 착. 달라붙다. 정착하다. 바둑을 두다. ④뜰 저.
*13)홍단채전(紅段彩氈) : 붉은 직물[비단]로 채색된 융단(담요). 段 : 구분 단. 포목. 직물. 氈 : 모전(毛氈) 전. 털로 짠 모직물. 융단. 속자 毡. 동자 氊. 간체 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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