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명(明)나라 구원병이 평양성(平壤城)을 치다가 실패함
十九日 祖摠兵軍 攻平壤 不利而退 史遊擊戰死.
先是 祖承訓 至義州 史儒以其軍爲先鋒.
祖乃遼左勇將 累與北虜戰有功 是行 謂倭必可取 至嘉山 問我人曰「平壤賊 無乃已走耶?」曰「不退.」承訓擧酒仰天祝之曰「賊猶在 必天使我成大功也.」
是日 自順安三更發軍進攻平壤
適大雨 城上無賊守兵. 天兵從七星門 入城內 路狹多委巷 馬足不可展. 賊依險阨*1) 亂發鳥銃 史遊擊中丸卽斃 軍馬多死 祖遂退軍. 賊不急追 後軍陷泥潦中 不能自拔者 悉爲賊所害.
承訓引餘兵 還過順安⋅肅川 夜中至安州城外立馬呼譯官朴義儉 曰「吾軍今日多殺賊 不幸史遊擊傷死 天時又不利 大雨泥濘 不能殲賊 當添兵更進矣. 語汝宰相毋動 浮橋亦不可撤.」言畢 馳渡兩江 駐軍於控江亭.
蓋承訓戰敗膽㥘 恐賊追躡 欲前阻二江 故疾急如此. 余使辛從事往慰 且載送糧饌.
承訓留控江亭二日 連日夜大雨 諸軍露處野中 衣甲盡濕. 皆怨承訓 已而退還遼東. 余恐人心動搖 啓請仍留安州 以待後軍之至.
7월 19일에 조총병(祖總兵 : 祖承訓)의 군사가 평양성(平壤城)을 치다가 이롭지 못하여 물러가고, 사유격(史遊擊 : 史懦)이 전사하였다.
이보다 먼저 조승훈(祖承訓)이 의주(義州)에 이르자, 사유(史儒)는 그 부대의 선봉(先鋒)이 되었다.
조승훈은 곧 요좌(遼左 : 遼東)의 용맹스러운 장수로 여러 번 북쪽 오랑캐와 싸워 공을 세웠으므로, 이번 행군에 있어서도 倭敵을 반드시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가산(嘉山)에 이르러 우리나라 사람에게 묻기를, "평양성[平壤]에 있는 倭敵이 벌써 달아나지나 않았는지?" 하므로, "아직 물러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조승훈은 술잔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축도하기를, "적군이 아직 있다고 하니, 반드시 하늘이 나로 하여금 큰 공을 이루도록 하심이다." 하였다.
이날 그는 순안(順安)으로부터 삼경(三更)에 군사를 출발시켜 나아가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마침 큰 비가 와서 성 위에는 지키는 군사도 없었다. 명(明)나라 군사는 칠성문(七星門)으로부터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길은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이라서 말을 달릴 수가 없었다. 倭敵들은 험협한 곳에 의지하여 어지럽게 조총(鳥銃)을 쏘았는데, 사유격(史遊擊 : 史儒)은 총알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군사와 말들도 많이 죽었다. 조승훈은 드디어 군사를 후퇴시켰는데, 적은 급히 쫓아오지는 않았으나 뒤에 있는 군사들로 진흙구덩이에 빠져서 스스로 빼낼 수 없었던 사람은 모두 적에게 죽음을 당한 바 되고 말았다.
조승훈(祖承訓)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돌아서서 순안(順安)⋅숙천(肅川)을 지나 밤중에 안주성(安州城) 밖에 이르러 말을 세우고 통역관[譯官] 박의검(朴義儉)을 불러 말하기를, "우리 군사는 오늘 倭敵을 많이 죽였으나, 불행히 사유격(史遊擊)이 부상하여 죽고 날씨도 이롭지 못하여 큰비가 와 진흙투성이가 되어 능히 倭敵을 섬멸시킬 수가 없었으나 마땅히 군사를 더 보태어 다시 쳐들어갈 것이다. 너의 재상(宰相 : 柳成龍)에게 말하여 동요하지 말게 하고, 부교(浮橋)는 철거해서도 안 된다." 하고 말을 마치고는, 말을 달려 두 강[청청강淸川江, 대정강大定江]을 건너 군사를 공강정(控江亭)에 주둔시켰다. 대개 조승훈은 싸움에 패하여 마음에 겁을 내고 적병이 뒤쫓아 올까 두려워 하여 앞에 두 강으로 가로막으려 한 까닭으로 이와같이 빨리 서둘렀던 것이다. 나는 신종사(辛從事 : 辛慶晉)로 하여금 가서 위로하게 하고, 또 양식과 음식을 실어보냈다.
조승훈이 공강정에 머무른지 2일 동안은 날마다 밤에 큰비가 와서 여러 군사들이 들판에서 노숙하고 있었으므로 옷과 갑옷이 다 젖어 모두 조승훈을 원망하였는데, 얼마 안 되어 물러나 요동(遼東)으로 돌아갔다. 나는 인심이 동요될까 두려워하여 임금에게 계청(啓請)하여 그대로 안주(安州)에 머무르면서 明나라 후군(後軍)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1)험액(險阨) : 지세(地勢)가 험함, 험한 곳. 험애(險隘) : 길이 험하고 좁음. 險 : ①험할 험. 다니기에 위태롭다. 요해(要害)의 땅. ②괴로워할 삼. 몹시 어려움이 있어 괴로워하다. ③낭떠러지 암. 험하다. 阨 : ①좁을 애. 좁고 험하다. 좁고 험한 길. ②막힐 액. 통로가 막히다. 험한 길. 곤란. 어려움. 시달리다.
十九日 祖摠兵軍 攻平壤 不利而退 史遊擊戰死.
先是 祖承訓 至義州 史儒以其軍爲先鋒.
祖乃遼左勇將 累與北虜戰有功 是行 謂倭必可取 至嘉山 問我人曰「平壤賊 無乃已走耶?」曰「不退.」承訓擧酒仰天祝之曰「賊猶在 必天使我成大功也.」
是日 自順安三更發軍進攻平壤
適大雨 城上無賊守兵. 天兵從七星門 入城內 路狹多委巷 馬足不可展. 賊依險阨*1) 亂發鳥銃 史遊擊中丸卽斃 軍馬多死 祖遂退軍. 賊不急追 後軍陷泥潦中 不能自拔者 悉爲賊所害.
承訓引餘兵 還過順安⋅肅川 夜中至安州城外立馬呼譯官朴義儉 曰「吾軍今日多殺賊 不幸史遊擊傷死 天時又不利 大雨泥濘 不能殲賊 當添兵更進矣. 語汝宰相毋動 浮橋亦不可撤.」言畢 馳渡兩江 駐軍於控江亭.
蓋承訓戰敗膽㥘 恐賊追躡 欲前阻二江 故疾急如此. 余使辛從事往慰 且載送糧饌.
承訓留控江亭二日 連日夜大雨 諸軍露處野中 衣甲盡濕. 皆怨承訓 已而退還遼東. 余恐人心動搖 啓請仍留安州 以待後軍之至.
7월 19일에 조총병(祖總兵 : 祖承訓)의 군사가 평양성(平壤城)을 치다가 이롭지 못하여 물러가고, 사유격(史遊擊 : 史懦)이 전사하였다.
이보다 먼저 조승훈(祖承訓)이 의주(義州)에 이르자, 사유(史儒)는 그 부대의 선봉(先鋒)이 되었다.
조승훈은 곧 요좌(遼左 : 遼東)의 용맹스러운 장수로 여러 번 북쪽 오랑캐와 싸워 공을 세웠으므로, 이번 행군에 있어서도 倭敵을 반드시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가산(嘉山)에 이르러 우리나라 사람에게 묻기를, "평양성[平壤]에 있는 倭敵이 벌써 달아나지나 않았는지?" 하므로, "아직 물러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조승훈은 술잔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축도하기를, "적군이 아직 있다고 하니, 반드시 하늘이 나로 하여금 큰 공을 이루도록 하심이다." 하였다.
이날 그는 순안(順安)으로부터 삼경(三更)에 군사를 출발시켜 나아가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마침 큰 비가 와서 성 위에는 지키는 군사도 없었다. 명(明)나라 군사는 칠성문(七星門)으로부터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길은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이라서 말을 달릴 수가 없었다. 倭敵들은 험협한 곳에 의지하여 어지럽게 조총(鳥銃)을 쏘았는데, 사유격(史遊擊 : 史儒)은 총알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군사와 말들도 많이 죽었다. 조승훈은 드디어 군사를 후퇴시켰는데, 적은 급히 쫓아오지는 않았으나 뒤에 있는 군사들로 진흙구덩이에 빠져서 스스로 빼낼 수 없었던 사람은 모두 적에게 죽음을 당한 바 되고 말았다.
조승훈(祖承訓)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돌아서서 순안(順安)⋅숙천(肅川)을 지나 밤중에 안주성(安州城) 밖에 이르러 말을 세우고 통역관[譯官] 박의검(朴義儉)을 불러 말하기를, "우리 군사는 오늘 倭敵을 많이 죽였으나, 불행히 사유격(史遊擊)이 부상하여 죽고 날씨도 이롭지 못하여 큰비가 와 진흙투성이가 되어 능히 倭敵을 섬멸시킬 수가 없었으나 마땅히 군사를 더 보태어 다시 쳐들어갈 것이다. 너의 재상(宰相 : 柳成龍)에게 말하여 동요하지 말게 하고, 부교(浮橋)는 철거해서도 안 된다." 하고 말을 마치고는, 말을 달려 두 강[청청강淸川江, 대정강大定江]을 건너 군사를 공강정(控江亭)에 주둔시켰다. 대개 조승훈은 싸움에 패하여 마음에 겁을 내고 적병이 뒤쫓아 올까 두려워 하여 앞에 두 강으로 가로막으려 한 까닭으로 이와같이 빨리 서둘렀던 것이다. 나는 신종사(辛從事 : 辛慶晉)로 하여금 가서 위로하게 하고, 또 양식과 음식을 실어보냈다.
조승훈이 공강정에 머무른지 2일 동안은 날마다 밤에 큰비가 와서 여러 군사들이 들판에서 노숙하고 있었으므로 옷과 갑옷이 다 젖어 모두 조승훈을 원망하였는데, 얼마 안 되어 물러나 요동(遼東)으로 돌아갔다. 나는 인심이 동요될까 두려워하여 임금에게 계청(啓請)하여 그대로 안주(安州)에 머무르면서 明나라 후군(後軍)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1)험액(險阨) : 지세(地勢)가 험함, 험한 곳. 험애(險隘) : 길이 험하고 좁음. 險 : ①험할 험. 다니기에 위태롭다. 요해(要害)의 땅. ②괴로워할 삼. 몹시 어려움이 있어 괴로워하다. ③낭떠러지 암. 험하다. 阨 : ①좁을 애. 좁고 험하다. 좁고 험한 길. ②막힐 액. 통로가 막히다. 험한 길. 곤란. 어려움. 시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