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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22). 이일(李鎰)이 평양(平壤)으로 쫓겨옴.
23/06/08 19:00:10 金 鍾國 조회 2367
22. 이일(李鎰)이 평양(平壤)으로 쫓겨옴.
李鎰至平壤 鎰旣敗于忠州 渡江入江原道界 輾轉至行在.
時諸將自京城南下 或走或死 無一人扈駕者 聞賊將至 人心益懼 鎰於武將中 素有重名 雖奔敗之餘 而人聞其來 無不喜悅.
鎰旣屢敗 竄荊棘中 戴平凉子 穿白布诊草屨而至 形容憔悴 觀者歎息 余語之曰「此處人 將倚君爲重 而槁枯如此 何以慰衆?」索行橐得藍色紗帖裏與之. 於是諸宰 或與騣笠 或與銀頂子彩纓 當面改換 服飾一新 燭無有脫靴與之者. 猶著草屨 余笑曰「錦衣草屨不相稱矣.」左右皆笑.
俄而碧潼土兵任旭景 探報賊已至鳳山 余謂尹相曰「賊之斥候 應已至江外 此間詠歸樓下 江水岐而爲二 水淺可涉 萬一賊得我民嚮導 而暗渡猝至 則城危矣. 何不急遣鎰往把淺灘,以防不測乎?」尹公曰「然」卽遣鎰. 時鎰所率江原道軍 僅數十餘人 益以他軍.
鎰坐含毬門點兵 不卽行 余念事急 遣人視之 猶在門上. 余連語尹公使催之 鎰始去.
旣出城 無指路者 誤向江西. 路遇平壤座首金乃胤自外來 問之使前引 馳至萬頃臺下 距城纔十餘里.
望見江南岸 賊兵來聚者 已數百 江中小島居民 驚呼奔散. 鎰急令武士十餘人 入島中射之 軍士畏不卽進 鎰拔劎欲斬之 然後乃進. 賊已在水中多近岸 我軍急以强弓射之 連斃六七 而賊遂退. 鎰仍留守渡口.

이일(李溢)이 평양(平壤)에 이르렀다. 이일은 이미 충주(忠州)에서 패전한 뒤 강을 건너 강원도(江原道) 지경까지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이곳(평양) 행재소行在]에 이른 것이다.
이때 여러 장수들이 서울로부터 남하하여 혹은 도망하고, 혹은 죽고 하여 한 사람도 임금을 호종(扈從)할 사람이 없었는데, 적군이 장차 이곳에 이를 것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하였다. 이일은 무장(武將)들 중에서 평소 이름이 높았었으므로 그가 비록 싸움에 패하여 도망 온 형편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일은 이미 여러 번 패하여 가시덤불 속에 숨어 있었던 터이므로 평량자(平凉子)*1)를 쓰고 흰 베적삼을 입고 짚신을 신고 왔는데, 얼굴이 몹시 수척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을 자아내게 하였다. 나는 그에게 말하기를, "이곳(평양) 사람들이 장차 그대에게 의지하여 든든하게 여기고 있는데, 이와 같이 메마르고서야 어떻게 여러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겠는지?" 하며 행장을 뒤져 남색 비단 첩리(帖裏)*2)를 찾아 그에게 주었다. 이에 여러 재신[諸宰]들이 종립(騣笠)*3)도 주고, 혹은 은정자(銀頂子)*4)와 채색 갓끈도 주어 그 자리에서 바꿔 입혀 옷차림은 일단 새로 갖추었으나, 다만 가죽신을 벗어 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짚신을 신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기를, "비단옷에 짚신은 서로 격이 맞지 않구먼." 하니,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다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벽동(碧潼)에 사는 토병(土兵) 임욱경(任旭景)이 倭敵들이 벌써 봉산(鳳山)에 이르렀다는 정보를 탐지하여 가지고 와서 알리므로, 나는 윤상(尹相 : 左相 尹斗壽)에게 일러 말하기를, "倭敵의 척후(斥候)가 틀림없이 벌써 대동강(大同江) 밖에 와 있을 것이오. 이 강 사이에 있는 영귀루(詠歸樓) 밑은 강물이 두 갈래로 나뉘어서 물이 얕으므로 사람이 건널 수가 있는데, 만일 倭敵이 우리 백성을 잡아 향도(嚮導)를 만들고 몰래 건너와서 갑자기 달려든다면 성(城)이 위태로우리다. 어찌 이일을 급히 파견하여 가서 그 얕은 여울목을 거머잡고 뜻밖의 변고를 방비하지 않으리오?" 하니, 윤공(尹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므로, 곧 이일을 파견하였다. 이때 이일이 거느리고 있는 강원도 군사는 겨우 수십 명이었으므로 다른 군사를 더 붙여주게 하였다.

이일은 함구문(含毬門 : 평양성平壤城의 남문)에 앉아서 군사를 점고하고 곧바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사세가 급한 것을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는 그대로 함구문 위에 있었다. 내가 연달아 윤공(尹公)에게 말하여 이를 독촉하게 하였더니, 이일은 비로소 떠나갔다. 그는 성 밖으로 나가기는 하였으나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잘못 강서(江西)쪽으로 향하였는데, 길에서 평양좌수(平壤座首) 김내윤(金乃胤)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만나서 길을 물어 그로 하여금 앞에서 인도하게 하여 만경대(萬頃臺) 아래로 달려가니, 여기는 성으로부터 떨어지기 겨우 10여 리쯤 되는 곳이었다.

이일이 강의 남쪽 언덕을 바라보니 적병이 와서 모여 있는 것이 이미 수백 명이라, 강안의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며 도망하여 흩어지고 있었다. 이일은 급히 무사(武士) 10여 명으로 하여금 섬 안으로 들어가서 활을 쏘게 하였으나, 군사들이 두려워하여 곧 나아가지 않았다. 이일이 칼을 빼어들고 그를 베려하자, 그제야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倭敵들은 벌써 강물 속에 들어서 있다가 많이 강언덕으로 가까이 왔는데, 우리 군사들이 급히 굳센 활을 당겨 이들을 쏘아 연달아 6, 7명을 거꾸러뜨리니, 倭敵들은 드디어 물러가 버렸다. 이일은 그대로 머물러 나루터의 어귀를 지켰다.

*1)평량자(平凉子) : 패랭이. 역졸(驛卒)⋅보부상(褓負商) 같이 천한 사람이나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이 쓰는 모자의 일종.
*2)첩리(帖裏) : 철릭. 깃이 길고 허리에 주름올 잡은 옷으로,곧 무관이 입는 공복(公服)의 하나.
*3)종립(騣笠) : 말총으로 만든 갓.
*4)은정자(銀頂子) : 전립(戰笠 : 무관이 쓰던 벙거지(병졸이 쓰던 모자), 털로 검고 두껍게 갓처럼 만들었음.) 따위의 위에 꼭지처럼 만든 꾸밈새로, 품계에 따라 금, 은, 옥, 석의 차등이 있다. 증자(鏳子) 또는 징자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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