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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12). 김늑(金玏)의 민심(民心) 수습
23/05/14 15:39:21 金 鍾國 조회 2493
12. 김늑(金玏)의 민심(民心) 수습
以僉知金玏爲慶尙左道安集使. 時 監司金睟在右道 而賊兵橫貫中路 與左道聲聞不通 守令皆棄官逃走 民心解散.
朝廷聞之 以金玏榮川人 詳知本道民情 可以安集 故白遣之.
玏旣至 左道之民 始聞朝廷之令 稍稍還集
榮川⋅豐基二邑 賊幸不至 而義兵頗起云.

첨지(僉知) 김늑(金玏)*1)을 경상좌도(慶尙左道)*2)안집사(安集使)*3)로 삼았다. 이때 경상감사(慶尙監司) 김수(金睟)는 경상우도(慶尙右道)*2)에 있었는데, 적병이 그 중로(中路)를 가로 꿰뚫고 있어 경상좌도와 서로 소식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수령(守令)들이 모두 관직을 버리고 도망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풀어지고 흩어졌다. 조정에서는 이 말을 듣고 김늑이 영천(榮川) 사람으로 경상좌도 백성들의 실정을 자세히 알고 있어 가히 백성들을 불러 모아 안정시킬 만하다고 한 까닭으로 임금에게 알려 그를 보내게 된 것이다. 김늑이 부임하자 경상좌도의 백성들은 비로소 조정의 명령이 있다는 것을 듣고 차츰 도로 모여들었다.
이때 영천과 풍기(豊基) 두 고을에는 倭敵이 다행스럽게도 오지 않았고,의병(義兵)*4)도 자못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1)김늑(金玏, 1540∼1616) :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柏巖). 시호는 민절(敏節). 본관은 예안(禮安). 영천(榮川) 출신. 1576년 宣祖 9년 식년(式年) 문과 병과로 급제. 1584년 영월군수(寧越郡守).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집사(安集使)로 영남(嶺南)에 가서 민심을 수습하였고, 1593년 경상우도관찰사(慶尙右道觀察使). 이어 대사헌(大司憲)이 됨. 형조참판(刑曹參判). 저서에는 ≪백암문집柏巖文集)≫이 있다.
*2)경상좌도(慶尙左道)⋅경상우도(慶尙右道) : 조선 中宗 때 처음으로 경상도(慶尙道)를 좌우(左右)로 나누었다. 한양(漢陽)의 궁전(宮殿)에서 볼 때 낙동강(洛東江)의 오른쪽을 경상우도, 낙동강의 왼쪽을 경상좌도로 이름 붙였다.
*3)안집사(安集使) : 국가에 변고가 일어났을 때 민심을 안정시키고 어울리게 하는 임시 벼슬.
*4)의병(義兵) : 나라가 위태로울 때 조정의 명령이나 소집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적을 무찌르던 민병(民兵). 임진왜란 때에는 많은 의병이 일어나 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는 데 공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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