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순신(李舜臣)의 발탁
擢井邑懸監李舜臣 爲全羅左道水軍節度使.
舜臣有膽略善騎射 嘗爲造山萬戶時 北邊多事 舜臣以計誘致叛胡于乙其乃 縛送兵營斬之 虜患遂息.
巡察使鄭彦信 令舜臣護鹿屯島屯田. 一日大霧 軍人盡出收禾 柵中但有十餘人 俄而 虜騎四集 舜臣閉柵門 自以柳葉箭 從柵內連射賊數十墮馬 虜驚駭退走. 舜臣開門 單騎大呼逐之 虜衆大奔 盡奪所掠而還.
然朝無推挽者 登第十餘年不調 始爲井邑懸監.
是時倭聲日急 上命備邊司 各薦才堪將帥者 余擧舜臣 遂自井邑超拜水使 人或疑其驟.
時在朝武將中 惟*26)申砬⋅李鎰最有名 慶尙右兵使曺大坤 年老無勇 衆憂不堪閫寄
余於經席啓請以鎰代大坤 兵曹判書洪汝諄曰「名將當在京都. 鎰不可遣」余再啓曰「凡事貴預 況治兵禦賊 尤不可猝辦. 一朝有變 鎰終不得不遣 等遣之 寧早往一日 使預備待變. 庶或有益 不然倉卒之際 以客將馳下 旣不諳本道形勢 又不識軍士勇㤼 此兵家所忌 必有後悔.」不答.
余又出備邊司 與諸人議 啓請修祖宗鎭管之法. 大略以爲「國初各道軍兵 皆分屬鎭管 有事則鎭管統率屬邑 鱗次整頓 以待主將號令. 以慶尙道言之 則金海⋅大丘⋅尙州⋅慶州⋅安東⋅晉州是爲六鎭管 脫有敵兵 一鎭之軍 雖或失利 他鎭次第嚴兵堅守 不至於靡然奔潰. 往在乙卵變後 金秀文在全羅道 始改分軍法 割道內諸邑 散屬於巡邊使⋅防禦使⋅助防將⋅都元帥及本道兵水使 名曰 ≪制勝方略≫ 諸道皆效之. 於是 鎭管之名雖存 而其實不相維繫 一有驚急 則必將遠近俱動 使無將之軍 先聚於原野之中 以待將帥於千里之外 將不時至 而賊鋒已逼 則軍心驚懼 此必潰之道他. 大衆一潰 難可復合 此時將帥雖至 誰與爲戰? 不如更修祖宗鎭管之制 平時易於訓鍊*27) 有事得以調集 且使前後相應 內外相倚 不至於土崩瓦解*28) 於事爲便」
事下本道 慶尙監司金睟以爲 制勝方略 行用已久 不可猝變 議遂寢.
정읍현감(井邑縣監)*1) 이순신(李舜臣)*2)을 발탁하여 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3)로 삼았다.
이순신은 담력과 지략[膽略]이 있고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았다. 그는 일찍이 조산만호(造山萬戶)*4)가 되었는데,이때 북쪽 변방에는 사변(분쟁)이 많았다. 이순신은 좋은 계교로써 배반한 오랑캐 우을기내(于乙其乃)를 유인하여 와서 병영(兵營)으로 묶어 보내어 베어 죽이니 드디어 오랑캐의 근심이 없어졌다.
순찰사(巡察使)*5) 정언신(鄭彦信)*6)은 이순신으로 하여금 녹둔도(鹿屯島)*7)의 둔전(屯田)*8)을 지키게 하였다. 하루는 크게 안개가 끼었는데, 군인들은 다 벼[禾]를 거두려 나가고 목책(木柵)*9) 안에는 다만 군인 10여 명만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랑캐의 기병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이순신은 목책의 문을 닫고서 스스로 유엽전(柳葉箭)*10)을 목책 안에서 연달아 쏘아 적 수십 명이 말에서 떨어져 죽으니 오랑캐들은 크게 놀라서 도망하였다. 이순신은 문을 열고 혼자서 말을 타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쫓아가니 오랑캐들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이에 약탈된 재물을 다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 조정에서 그를 추천하여 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과(武科)에 급제한지 10여 년이 되도록 승진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비로소 정읍현감이 되었다. 이때 倭敵이 쳐들어온다는 소리가 날로 심하게 전해지자 임금께서는 비변사(備邊司)*11)에 명하여 각각 재모가 장수감이 될만한 사람을 추천하라고 하므로, 내가 이순신을 추천하여 드디어 정읍현감으로부터 수사(水使 : 수군절도사)로 뛰어 임명되니, 사람들은 혹은 그가 갑작스레 승진한 것을 의아하게 여기기도 하였다.
당시 조정에 있는 무장(武將) 가운데서는 오직 신립(申砬)*12), 이일(李鎰)*13)이 가장 유명하였다.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14) 조대곤(曺大神)은 나이도 늙고 용맹도 없으므로 여러 사람들은 그가 군사의 전권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근심하였다.
나[柳成龍]는 경연(經筵)*15)에서 임금에게 아뢰어 이일로 조대곤을 대신하게 할 것을 청하니, 병조판서(兵曹判書)*16) 홍여순(洪汝諄)*17)이 말하기를, "유명한 장수는 마땅히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이일을 파견하여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나는 거듭 아뢰어 말하기를,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더구나 군사를 다스려 적을 막는 일은 더욱 갑자기 마련해서는 안 됩니다. 하루 아침에 사변이 생기면 마침내는 이일을 파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니, 이왕 보낼 바에는 차라리 하루라도 일찍 보내어 미리 군사를 정비하고 변고를 대비하게 하는 것이 매우 이로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갑작스럽게 다른 고을에 있던 장수를 급히 내려 보낸다면 거의 그 도(道)의 형세를 알지 못할 것이고, 또 그 군사들의 용감함과 비겁함도 알지 못할 것이오니, 이는 병가(兵家)*18)의 꺼리는 것이므로 이러다가는 반드시 후회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나 임금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또 비변사(備邊司)에 나와서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조종(祖宗) 때에[예전에,선대(先代)에] 마련한 진관(鎭管)의 법(法)*19)을 시행하자고 계청하였다(아뢰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였다. "우리나라의 건국 초기에는 각 도의 군사들을 다 진관(鎭管)에 나누어 붙여서(배치해 두어서) 사변이(무슨 일이) 있으면 진관에서는 그 소속된 고을을 통솔하여 인차(鱗次)*20)로 정돈하고 주장(主將)의(장수의) 호령을 기다렸습니다. 경상도(慶尙道)를 예로 들어 말한다면, 김해(金海), 대구(大丘), 상주(尙州), 경주(慶州), 안동(安東), 진주(晉州)가 곧 여섯 진관이 되어서 설사 적병이 쳐들어와서 한 진관의 군사(군대)가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다른 진이 차례로 군사를 엄중히 단속하여 굳건히 지켰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허물어져 버리는 데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저 지난 을묘년(1555)의 왜변(倭變)이 있은 뒤에 김수문(金秀文)*21)이 전라도(全羅道)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분군법(分軍法 : 군사편제)을 고쳐 만들어 도내의 여러 고을을 갈라서 소속한 군사를 순변사(巡邊使)*22), 방어사(防禦使)*23), 조방장(助防將)*24), 도원수(都元帥)와 및 본도의 병사(兵使), 수사(水使)들에게 나누어 붙이고(소속 시키고) 이름하기를 제승방략(制勝方略)*25)이라고 하였는데, 여러 도철에서도 다 이를 본받아 군사를 정비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있어서 진관의 명칭만은 비록 남아 있었사오나 그러나 그 실상은 서로 잘 연결이 되지 않았으므로, 한 번 경급편급(警急篇急 : 위급한 사태)을 알리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멀고 가까운 곳이 함께 움직이게 되어 장수가 없는 군사들로 하여금 먼저 들판 가운데 모여 장수 오기를 천리 밖에서 기다리게 하다가 장수가 제때에 오지 않고 적의 선봉이 가까워지면 군사들이 마음속으로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니, 이는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는 도리입니다. 군대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수습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이때에는 장수가 비록 온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데리고 함께 싸움을 하겠습니까? 그러하오니 다시 조종(祖宗) 때(先祖 들이) 마련한 진관의 제도를 수복(재정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평상시에 훈련하는 데 쉽고 사변이 있을 때면(일이 생겼을 때에는) 순조롭게 군사를 모을 수 있을 것이며, 또 전후를 서로 호응하게 만들고 안팎이 서로 의지하게 되어 갑자기 무너져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될 것이오니, 이변에 대처하는 데 편리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일에 관하여 본도(本道)에 하달하였더니 경상감사 김수(金睟)는 "제승방략(制勝方略)은 써 온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갑자기 변경할 수 없습니다." 하므로, 그 의론은 드디어 중지되고 말았다.
*1)현감(縣監) : 현방에 두었던 원님 벼슬. 지방장관으로는 가장 낮은 벼슬로서, 현령(縣令)은 종5품, 현감(縣監)은 종6품이었다.
*2)이순신(李舜臣, 1545∼1598) : 조선조 宣祖 때의 명장.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1576년 宣祖 9년에 식년시(式年試) 무과에 병과(兵科)로 급제, 조산만호(造山萬戶), 정읍현감(井邑縣監), 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를 거쳐 임진왜란 때에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왜적을 크게 무찔러 나라를 구함. 정유재란 때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 적을 섬멸시키다가 전사함.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음. ≪충무공전서(忠武公全書)≫가 있음.
*3)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 : 조선조 때 전라좌도에 있는 수군(水軍)의 진수부(鎭守府)인 수영(水營)에 딸린 정3품의 무관 이름.
*4)조산만호(造山萬戶) : 함경북도 경흥(慶興)에 딸린 조산진(造山鎭) 무관의 하나. 만호(萬戶)⋅천호(千戶)⋅백호(百戶) 등은 본래 그 관령하는 민호(民戶)의 수를 말하는 것으로, 高麗 때부터 마련된 벼슬이었다.
*5)순찰사(巡察使) : 조선조 때 지방장관인 관찰사(觀察使)가 난시(亂時)에 겸한 관직으로 각 도(道) 안의 군사 업무를 순찰하는 벼슬. 종2품 벼슬로 임명함.
*6)정언신(鄭彦信, 1527∼1591) : 조선조 宣祖 때 문신. 자는 입부(立夫), 호는 나암(懶菴). 明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부승지(右副承旨)⋅함경도절제사(咸鏡道節制使)⋅우찬성(右贊成)⋅순찰사(巡察使)⋅우의정(右議政) 등의 벼슬을 지냄.
*7)녹둔도(鹿屯島) : 함경북도 선봉군 조산리 두만강(豆滿江) 안에 있는 섬.
*8)둔전(屯田) : 조선조 때의 전제(田制)로 관둔전(官屯田)과 군둔전(軍屯田)의 하나. 전자는 지방관청의 경비에 쓰고, 후자는 주둔군(駐屯軍)의 군량과 경비에 씀.
*9)목책(木柵) :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적을 방어하는 작은 성책(城柵).
*10)유엽전(柳葉箭) : 살촉이 버들잎 모양으로 된 화살.
*11)비변사(備邊司) : 조선조 때 군국기무(軍國機務)를 총령하는 관청. 비국(備局) 또는 주사(籌司)라고도 함. 도제조(都提調)⋅제조(提調) 등의 관원을 둠. 삼포왜란(三浦倭亂) 때 창설되어 을묘왜란(乙卯倭亂) 때 상설 군사기구로 되고, 임진왜란 때에는 전시의 군사⋅정치의 통할기구로 됨.
*12)신립(申砬, 1546∼1592) : 조선조 宣祖 때의 장군.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 시호는 충장(忠壯). 宣祖 때 무과에 급제하여 진주판관(晉州判官)⋅온성부사(穩城府使)⋅평안도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 등을 거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가 되었는데, 충주(忠州) 탄금대(彈琴臺)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함.
*13)이일(李鎰, 1538∼1601) : 조선조 宣祖 때의 무장(武將). 자는 중경(重卿), 시호는 장양(壯襄). 본관은 용인(龍仁)이다. 明宗 때 무과에 급제, 경원부사(慶源府使)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순변사(巡邊使)로 활약함. 함경남도병사(咸鏡南道兵使)를 지냄.
*14)병사(兵使) : 조선조 때 무관직(武官職). 속칭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지방의 군대를 통솔한 책임자로 종2품 벼슬. 정원은 15명으로 경기 1, 충청 2, 경상 3, 전라 2, 황해 2, 강원 1, 함경 3, 평안도 2명이 있고, 그중에 1명은 관찰사(觀察使)를 겸임하였다.
*15)경연(經筵) : 임금 앞에서 경전(經典)을 강론(講論)하는 자리.
*16)판서(判書) : 조선조 때 6조(六曹)의 으뜸 벼슬로 정2품.
*17)홍여순(洪汝諄, 1547∼1609): 조선조 때의 문신. 자는 사신(士信). 본관은 남양(南陽). 宣祖 때 문과에 급제, 병조판서(兵曹判書)를 거쳐 임진왜란 때에는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지내고, 순찰사(巡察使)⋅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함.
*18)병가(兵家) : 병학(兵學)을 연구하는 사람,또는 그 학파.
*19)진관(鎭管)의 법(法) : 조선조 때의 지방 군사조직으로, 각 도의 군사를 진관(鎭管)에 분속시키고, 유사시에는 진관의 주장(主將)이 이를 지휘하여 방위에 임하게 하는 제도이다.
*20)인차(鱗次) : 고기의 비늘처럼 차례차례로 정돈한다는 뜻.
*21)김수문(金秀文, ?∼1568) : 자는 성장(成章). 본관은 고령(高靈). 조선조 明宗 때 무장. 中宗 때 무과에 급제, 明宗 을묘왜변(乙卯倭變, 1555) 때 제주목사(濟州牧使)로 적[倭寇]을 쳐 공을 세우고, 한성판윤(漢城判尹)을 거쳐 평안도병마절도사(平安道兵馬節度使)로 북변 방위에 공이 많았다.
*22)순변사(巡邊使) : 조선조 때 왕명으로 군무의 책임을 띠고 변방(邊方)을 순검(巡檢)하는 목사(牧使)로, 대개 유사시에 임명하는 임시 겸직(兼職).
*23)방어사(防禦使) : 조선조 때 외관직. 각 도에 배속되어 요지를 방어하는 병권을 가진 종2품(從二品) 벼슬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다른 직위.
*24)조방장(助防將) : 방어사(防禦使). 수하(手下)에서 방어사를 보좌하는 무관. 적의 침략을 받으면 각 고을의 수령이 자기 휘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으로 이동해서 중앙에서 내려온 장수의 지휘를 받게 하는 방식.
*25)제승방략(制勝方略) : 조선조 文宗 때 김종서(金宗瑞, 1383∼1453)가 함경도 8진의 방수(防戍 : 국경을 지킴)를 논한 병서(兵書).
*26)유(惟) : 생각할 유. 오직 유. (같은 뜻으로 같이 쓰이는 자字 唯 오직 유. 다만.)
*27)련(鍊) : 통자 煉. 불릴 련. 몸 . 정신 등을 단련하다.(같은 뜻으로 같이 쓰이는 자字 鍊 익힐 련. 단련하다. 훈련하다.)
*28)토붕와해(土崩瓦解) : 집에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고 하여 어느 일을 먼저해야 집을 고칠지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