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공자시대(孔子時代)(10)
마침내 제경공(齊景公)은 그 미인들과 양마 120필을 사신에게 딸려 노(魯)나라로 보냈다. 제(齊)나라 사신은 곡부성(曲阜城) 남문에 이르러 두 곳에다 비단 장막을 쳤다.
동쪽 비단 장막에는 120필의 말을 매어두고, 서쪽 비단 장막에는 미인들을 머물게 했다. 그러고는 삼환(三桓) 중의 한 사람인 계손사(季孫斯)의 집으로 향했다.
그 무렵, 계손사는 나라가 태평하고 걱정 근심이 사라지자 틈만나면 즐거운 일을 찾고 있었다. 그런 중에 齊나라 사신이 와서 미인 악사들을 바치려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한 번 살펴본 후 주공(主公)에게 바칠 것인가 어쩔 것인가를 결정하겠다."
계손사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몰래 남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齊나라 사신은 미인들이 공연하는 강악(康樂)과 강악무(康樂舞)를 계손사에게 보여주었다. 음악과 노래와 춤은 황홀했다. 노랫소리는 가는 구름을 멈추게 하고, 춤추는 자태에서는 향기가 일었다.
생전 처음 그런 춤과 음악과 노래를 관람한 계손사는 정신이 빠졌다. 온몸이 녹는 듯하고, 마음이 산란했다. 시간 가는 줄 몰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이튿날 계손사는 궁으로 들어가 노정공(魯定公)을 알현(謁見)하고 齊나라에서 미인 80명을 보내왔음을 보고했다. 노정공의 눈빛이 달라졌다.
"齊나라에서 왔다는 그 여악(女樂)들은 지금 어디 있소?"
"남문 밖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보실 생각이시라면 신이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지만 주공의 행차가 알려지면 백성들이 불편해할 것이니, 미복으로 가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노정공은 평복으로 갈아입고 계손사와 함께 남문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장막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계손사는 심복 부하 한 사람을 먼저 보내 齊나라 사신에게 귀띔했다.
"우리 주공께서 미복 차림으로 오셨소."
齊나라 사신은 미인들을 불러놓고 당부했다.
"魯나라 군주(君主)가 미복으로 오셨다고 한다. 너희들은 각별히 신경 써서 온갖 재주를 다 보여봐라."
齊나라 미인 악사 80명은 더욱 교태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소매가 나부낄 때마다 장막 안에는 무지개가 서는 듯했다. 10대(隊)의 미녀들은 번갈아 등장하여 자신들의 재주를 마음껏 발휘했다. 평생 고루한 음악만 들어오던 노정공 또한 완전히 정신을 빼앗겼다.
궁으로 돌아온 노정공은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미인들의 노래가 귓전에 맴돌고 춤추는 자태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다음날 아침, 노정공은 혹시나 공자(孔子)가 齊나라에서 보내온 선물을 반대할까 두려워 일부러 계손사만을 부르고 齊나라 사신을 맞아들였다. 노정공은 齊나라 사신에게 황금 1백 일(鎰)을 답례로 하사했다. 미인 악사 80명과 말 120필을 접수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노정공은 80명의 여악 중 30명을 계손사에게 내주고 나머지는 내궁(內宮)에 머물게 했다. 그때부터 노정공과 계손사는 각기 낮이면 노래와 춤을 즐기고 밤이면 미인들을 끼고 술을 마셨다. 조회를 여는 것이 귀찮아 열흘이 넘도록 정청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 소식이 공자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었다.
성질 급한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님이여, 이제 魯나라를 떠날 때가 왔나봅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아직 이르다. 며칠 후면 교제(郊祭)를 올리는 날이다. 주공이 교제를 마치고 나서 그 조(胙)를 대부(大夫)들에게 나누어주면 이는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를 나누어주지 않으면 나는 여기를 떠날 것이다."
교제란 남쪽 교외로 나가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참고로 북쪽 교외로 나가 하늘에 올리는 제사는 사제(社祭)라고 한다. 또 조(胙)는 제사를 지낼 때 쓰이는 고기로서, 제사가 끝나면 군주는 신하들에게 그 고기를 나누어주는 것이 관례였다. 신하들에 대한 존중의 표시다.
마침내 교제날이 되었다.
노정공과 계손사 등 문무백관은 남쪽 교외로 나가 하늘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노정공은 제사를 지내자마자 부리나케 궁으로 돌아갔다.
齊나라에서 바친 미인 악사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제사를 지낼 때 쓴 '조(胙)'를 신하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잊고 말았다.
제관(祭官)이 궁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조를 나눠주십시오."
노정공은 귀찮은 표정으로 아무렇게나 말했다.
"과인(寡人)은 바쁘다. 계손사에게 나눠주라고 일러라."
하지만 계손사 역시 제사가 끝남과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 강악과 강악무를 즐기고 있었다. 결국 조는 분배되지 않았다.
그날 밤, 공자는 길게 탄식했다.
"아, 나의 진리가 세상에 퍼지지 않았구나. 이것이 하늘의 뜻인가?"
다음날 아침, 공자는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곡부성을 떠났다.
계손사에게 벼슬하던 자로와 자유(子有)도 관복을 벗어던지고 스승 공자의 뒤를 따랐다.
공자가 魯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려 한다는 소문은 계손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깜짝 놀라 악사장 기(己)를 보내 공자를 데려오게 했다. 악사장 기가 서둘러 곡부성을 나섰다.
그때 공자는 여러 제자들과 함게 북쪽 교외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기가 뒤쫓아가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魯나라를 떠나시는 겁니까?"
공자가 그윽한 눈길로 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노래로 대답해도 괜찮겠는가?"
그러고는 그 자리에 앉아 거문고를 타며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彼婦之謁(피부지알) : 군주가 여인네를 가까이 하면
可以死敗(가이사패) : 나라가 패망한다.
蓋優哉游哉(개우재유재) : 걱정에 침노하지 않고
維以卒歲(유이졸세) : 유유히 세상을 살다 가려 함이네.
악사장 기는 공자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다.
그가 성안으로 돌아오자 계손사가 불러 물었다.
"공자가 뭐라고 하던가?"
기가 사실대로 대답하자 계손사는 크게 탄식했다.
"아아, 공자는 내가 齊나라 무녀(巫女)를 받아들인 것을 책망하고 있구나."
이렇게 공자는 魯나라를 떠나갔다.
이 떠남이 곧 그 유명한 공자의 '천하 역유(歷遊)'다.
이때 공자 나이 56세.
따르는 제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이글은 경전반에서 수학했던 丁 萬峰이 제공한 것을 대신 실었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愼齋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