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이란 사람이다(案仁者人也)
掌議 金 鍾國
1. 머리글
안연이 仁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자기의 사욕을 이겨 禮에 돌아감이 仁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이라도 私慾을 이겨 禮에 돌아기면 천하가 仁을 허여하는 것이다. 仁을 하는 것은 자기 몸에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있는 것인가?」(顔淵問仁한대 子曰 克己復禮爲仁이니 一日克己復禮면 天下歸仁焉하리니 爲仁由己니 而由人乎哉)
평소 論語에서 말하는 仁에 대한 정의를 알고 싶던 차에 茶山 丁若鏞선생의 다산학제요(茶山學提要)의 논어경의(論語經義)를 읽고 仁에 관한 茶山의 풀이를 접하였다. 仁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글은 대구향교에서 발행하는 ‘明倫誌’에 실렸던(2017년) 것으로 세 번 나누어 싣겠습니다.
2.논어경의(論語經義)
⑴仁
보충하기를 - 道란 사람이 거쳐서 걷는 곳이요, 仁이란 두 사람이 서로 간여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효도로써 섬기면 仁이 되는데, 어버이와 아들은 두 사람이다. 兄을 제(悌)로써 섬기면 仁이 되는데, 형과 아우는 두 사람이다. 군왕을 忠으로써 섬기면 仁이 되는데, 군왕과 臣은 두 사람이다. 夫婦나 朋友에 이르기까지 무릇 두 사람 사이에서 그의 도리를 극진이 하는 자는 다
仁인 것이다. 그러므로 효제(孝悌)는 그의 根本이 된다.①
①논어 고금주1P9,b
補曰道者人所由行也 仁者二人相與也 事親孝爲仁父與子二人也 事兄弟爲仁兄與弟二人也 事君忠爲仁君與臣二人也 牧民慈爲仁牧與民二人也 以至夫婦朋友凡二人之間盡其道者 皆仁也 然孝悌爲之根
생각건대 - 후세 유학자들은 이 節義① 주해에 대해 대체로 고심하고 있다. 대게 孔註②는 行仁이 어렵고 言仁이 어렵다고 했는데, 集註는③ 存心이 어렵고 行事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므로 도리어 어려워지지나 않았나 의심스럽다.
일찍이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인간들이 일생동안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仁字 한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仁이란 人倫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일 중에 人倫밖에 있는 일이 있는가? 父子, 兄弟, 君臣, 朋友에서 온 天下 萬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倫類④인 것이다. 여기에서 잘 하는 자는 仁이 되고 잘못을 저지르는 자는 不仁이 되는 것이다. 孔子는 仁 밖에 일이란 없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이를 실행하기가 어렵다」 한 것이다. 공안국은 여기에 註를 달되 「仁은 實行하기가 어렵다」 하였으니, 眞實로 본 뜻에 알맞은 말이다. 만일 爲仁 외에 따로 대단찮고 허튼 일을 가지고 爲之難이란 세 자를 해석하려고 한다면 뜻이 통할 리가 없을 것이다.
孔子는 좀처럼 仁을 말하지 않았다⑤는 것은 그것이 實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孔子는「단단하고 굳세고 소박하고 말더듬이라야 인에 가깝다」⑥ 한 것은 그것이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孔子는 「말을 꾸며대며 얌전한 체 하는 아마도 인하지 않을 것이다」⑦ 한 것은 역시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 밖에 다른 일이 있는가.⑧
案後儒多病此注 蓋以孔注以爲行仁難言仁難 而集注以爲存心難行事難 故疑其反晦也 竊嘗思之 吾人之一生行事不外乎仁一字 何則 仁者人倫之愛也 天下之事有外於人倫者乎 父子兄弟君臣朋友以至天下萬民皆倫類也 善於此者爲仁 不善於此者爲不仁 孔子深知仁外無事 故曰爲之難孔安國注之曰行仁難誠亦中旨 若於爲仁之外別求閒難之事以釋爲之難三字 則不可通矣 孔子罕言仁爲其難行也 孔子曰剛毅不納近仁爲其難行也 孔子曰巧言令色鮮矣仁謂其難行也 仁外有事乎
①司馬牛問仁子曰仁者其言也 訒曰其言也訒斯謂之仁矣 乎子曰爲之難言之得無 訒乎 ②孔安國의 註, 漢나라 때 사람, 孔子의 11대손 ③集註:송나라 朱子의 주 ④倫類:인간을 윤리적 존재로 간주함 ⑤논어 子罕篇 ⑥논어 子路篇 ⑦논어 學而篇 ⑧論語古今註六P5b •訒:말더듬을 인
생각건대 - 仁이란 사람인 것이다①. 두 사람이 仁이 되는 것이다. 父子間에 그들의 本分을 극진이 하면 그것이 仁인 것이다. 군신 사이에 그들이 본분을 극진이하면 그것이 仁인 곳이다. 부부사이에 그들의 본분을 극진이하면 인인 것이다. 인이라는 이름은 반드시 두 사람사이에서만 생기기 마련이니, 가까이는 五敎요, 멀면 천하의 만백성에게까지 이를 것이다. 무릇 사람과 사람이 그들의 본분을 극진이하면 이를 일러 인이라 하기 때문에 유자는「효제라는 것이 아마도 인의 근본일 것이다②」 仁字의 새김이란 본래 의당 이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顔淵이 仁에 대해서 묻자, 孔子는 도리어 두 사람을 인이라 한다는 뜻을 가지고서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달리 자기 마음속에서 가다듬고 다스리어 인을 실천하도록 하였다. 孔子의 이 대답을 살펴보면③ 신기롭게 범상을 벗어났기 때문에 마치 東을 물으면 西를 대답한 양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했으니 평범하게 나오는 대로 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밑의 단계에서는 그렇게 된 까닭을 늘어놓았으니 「내가 만일 스스로 가다듬으면 사람들은 모두다 순순히 돌아올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父子․兄弟․夫婦․君臣으로부터 온 天下의 萬百姓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인들 仁人의 감화에로 돌아오지 않을 자는 없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仁은 이루어질 것이다. 원래 仁人을 仁이라 했다. 그러므로 求仁이라 하면 혹 스스로 이를 구한다는 뜻 외에 다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구한다는 뜻도 있다. 孔子는 이점을 준엄하게 가려내 놓았으니 「스스로 가다듬으면 인민들은 服從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仁이 될 것이니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암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만일 한 덩이로 된 仁의 德이 원래 심장의 구멍 안에 存在하여 있으면서 惻隱한 마음의 根源이 된다고 한다면 하루 동안 克己復禮 이하의 이십여 字는 도대체 덤덤하여 아무런 맛이 없는 것이다. 종래 仁字는 마땅히 仁을 좇는 것을 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④.
案仁者人也 二人爲仁 父子而盡其分則仁也 君臣而盡其分則仁也 夫婦而盡其分則仁也 仁之名必生於二人之間 近而五敎遠而至於天下萬姓 凡人與人盡其分斯爲之仁 故有子曰孝弟也者其爲仁之本 仁字訓誥本宜如是 於是顔淵問仁孔子却不把二人爲仁之義以答其問 另就自己心上修治使之爲仁 看來孔子此答新奇出凡 殆若問東而答西使之警發 非平平地順下說話也 故下段敷說其所以然 曰我若自修人皆歸順 父子兄弟夫婦君臣以至天下萬民 無一人不歸於仁人之所感化 於是乎仁成矣 原來仁人爲仁 故求仁者或於自求之外更求諸人 孔子嚴嚴辨破 曰自修則民服於是乎爲仁 豈由人乎哉 若有一顆仁德原在心竅之內 爲惻隱之本源 則一日克己復禮以下二十字 都泊然無味也 從來仁字宜從事爲上看
①<中庸> ․ <孟子>盡心 上 ②<論語>學而篇 ③ 顔淵問仁 子曰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 爲仁由己而由入乎哉 顔淵曰請問其目 子曰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 顔淵曰回雖不敏 請事斯語矣 ④논어고금주六 P3~3b
•另:헤어질 령, 따로 령 顆:낱알 과, 흙덩이 과 •五敎=五典: 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 오륜의 가르침,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5가지 방법
생각하건대 - 仁이란 두 사람의 일이다. 두 사람의 일인데도 그것을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孔子는 그의 공로와 효과를 설명하여 말하기를「하루를 克己復禮하더라도 이 세상 사람으로서 귀화하지 않을 자는 없다」하겠다. 舜이 하루를 克己復禮한 결과 완고한 아비와 거친 어미와 오만한 아우도 다 같이 기꺼이 화합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堯인금이 하루를 克己復禮한 결과 九族 백성들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부드러운 태도로 화목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이를 일러 천하가 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만일 그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돌아온 것을 일러 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면 仁의 지극한 공적이란 그의 아름다운 이름을 얻는 데 있으면 그만일 터이니 어찌 성인이 나를 위하는 학문이 되겠는가? 「내가 인하고자하면 그 인은 거기로 올 것이다」 하였으니, 돌아온다는 것은 거기로 온다는 뜻이다①.
案仁者二人之事也 二人之事而專責之於一人 故孔子說其功效曰 一日克己復禮 而天下之人無不歸化 舜一日克己復禮而頑父嚚母與其傲弟無不諧協 堯一日克己復禮 而九族百姓以至黎民 無不擁睦 此之謂天下歸仁 若以歸其美名 謂之歸仁則仁之至極功惟在乎 得其美名而止 豈聖人爲己之學乎 我欲仁斯仁至矣 歸也者至也 •嚚: 어리석을 은 擁:안을 옹, 낄 옹 ①논어 고금주 六 p3 b~4
보충하기를 - 仁이란 두 사람이다. 아들이 어버이를 사랑하고 신하가 군왕을 사랑하고 목자가 인민을 사랑하는 것이 모두 仁인 것이다.
(補曰仁者二人也 子愛親臣愛君牧愛民皆仁也)
보충하기를 - 忠․孝가 지극한 것은 仁이라 하고, 화란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勇이라 한다.( 補忠孝至極曰仁 禍難無懼勇也)
掌議 金 鍾國
1. 머리글
안연이 仁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자기의 사욕을 이겨 禮에 돌아감이 仁하는 것이니, 하루 동안이라도 私慾을 이겨 禮에 돌아기면 천하가 仁을 허여하는 것이다. 仁을 하는 것은 자기 몸에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있는 것인가?」(顔淵問仁한대 子曰 克己復禮爲仁이니 一日克己復禮면 天下歸仁焉하리니 爲仁由己니 而由人乎哉)
평소 論語에서 말하는 仁에 대한 정의를 알고 싶던 차에 茶山 丁若鏞선생의 다산학제요(茶山學提要)의 논어경의(論語經義)를 읽고 仁에 관한 茶山의 풀이를 접하였다. 仁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글은 대구향교에서 발행하는 ‘明倫誌’에 실렸던(2017년) 것으로 세 번 나누어 싣겠습니다.
2.논어경의(論語經義)
⑴仁
보충하기를 - 道란 사람이 거쳐서 걷는 곳이요, 仁이란 두 사람이 서로 간여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효도로써 섬기면 仁이 되는데, 어버이와 아들은 두 사람이다. 兄을 제(悌)로써 섬기면 仁이 되는데, 형과 아우는 두 사람이다. 군왕을 忠으로써 섬기면 仁이 되는데, 군왕과 臣은 두 사람이다. 夫婦나 朋友에 이르기까지 무릇 두 사람 사이에서 그의 도리를 극진이 하는 자는 다
仁인 것이다. 그러므로 효제(孝悌)는 그의 根本이 된다.①
①논어 고금주1P9,b
補曰道者人所由行也 仁者二人相與也 事親孝爲仁父與子二人也 事兄弟爲仁兄與弟二人也 事君忠爲仁君與臣二人也 牧民慈爲仁牧與民二人也 以至夫婦朋友凡二人之間盡其道者 皆仁也 然孝悌爲之根
생각건대 - 후세 유학자들은 이 節義① 주해에 대해 대체로 고심하고 있다. 대게 孔註②는 行仁이 어렵고 言仁이 어렵다고 했는데, 集註는③ 存心이 어렵고 行事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므로 도리어 어려워지지나 않았나 의심스럽다.
일찍이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인간들이 일생동안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仁字 한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仁이란 人倫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일 중에 人倫밖에 있는 일이 있는가? 父子, 兄弟, 君臣, 朋友에서 온 天下 萬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倫類④인 것이다. 여기에서 잘 하는 자는 仁이 되고 잘못을 저지르는 자는 不仁이 되는 것이다. 孔子는 仁 밖에 일이란 없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이를 실행하기가 어렵다」 한 것이다. 공안국은 여기에 註를 달되 「仁은 實行하기가 어렵다」 하였으니, 眞實로 본 뜻에 알맞은 말이다. 만일 爲仁 외에 따로 대단찮고 허튼 일을 가지고 爲之難이란 세 자를 해석하려고 한다면 뜻이 통할 리가 없을 것이다.
孔子는 좀처럼 仁을 말하지 않았다⑤는 것은 그것이 實行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孔子는「단단하고 굳세고 소박하고 말더듬이라야 인에 가깝다」⑥ 한 것은 그것이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孔子는 「말을 꾸며대며 얌전한 체 하는 아마도 인하지 않을 것이다」⑦ 한 것은 역시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 밖에 다른 일이 있는가.⑧
案後儒多病此注 蓋以孔注以爲行仁難言仁難 而集注以爲存心難行事難 故疑其反晦也 竊嘗思之 吾人之一生行事不外乎仁一字 何則 仁者人倫之愛也 天下之事有外於人倫者乎 父子兄弟君臣朋友以至天下萬民皆倫類也 善於此者爲仁 不善於此者爲不仁 孔子深知仁外無事 故曰爲之難孔安國注之曰行仁難誠亦中旨 若於爲仁之外別求閒難之事以釋爲之難三字 則不可通矣 孔子罕言仁爲其難行也 孔子曰剛毅不納近仁爲其難行也 孔子曰巧言令色鮮矣仁謂其難行也 仁外有事乎
①司馬牛問仁子曰仁者其言也 訒曰其言也訒斯謂之仁矣 乎子曰爲之難言之得無 訒乎 ②孔安國의 註, 漢나라 때 사람, 孔子의 11대손 ③集註:송나라 朱子의 주 ④倫類:인간을 윤리적 존재로 간주함 ⑤논어 子罕篇 ⑥논어 子路篇 ⑦논어 學而篇 ⑧論語古今註六P5b •訒:말더듬을 인
생각건대 - 仁이란 사람인 것이다①. 두 사람이 仁이 되는 것이다. 父子間에 그들의 本分을 극진이 하면 그것이 仁인 것이다. 군신 사이에 그들이 본분을 극진이하면 그것이 仁인 곳이다. 부부사이에 그들의 본분을 극진이하면 인인 것이다. 인이라는 이름은 반드시 두 사람사이에서만 생기기 마련이니, 가까이는 五敎요, 멀면 천하의 만백성에게까지 이를 것이다. 무릇 사람과 사람이 그들의 본분을 극진이하면 이를 일러 인이라 하기 때문에 유자는「효제라는 것이 아마도 인의 근본일 것이다②」 仁字의 새김이란 본래 의당 이와 같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顔淵이 仁에 대해서 묻자, 孔子는 도리어 두 사람을 인이라 한다는 뜻을 가지고서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달리 자기 마음속에서 가다듬고 다스리어 인을 실천하도록 하였다. 孔子의 이 대답을 살펴보면③ 신기롭게 범상을 벗어났기 때문에 마치 東을 물으면 西를 대답한 양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했으니 평범하게 나오는 대로 한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밑의 단계에서는 그렇게 된 까닭을 늘어놓았으니 「내가 만일 스스로 가다듬으면 사람들은 모두다 순순히 돌아올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父子․兄弟․夫婦․君臣으로부터 온 天下의 萬百姓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인들 仁人의 감화에로 돌아오지 않을 자는 없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仁은 이루어질 것이다. 원래 仁人을 仁이라 했다. 그러므로 求仁이라 하면 혹 스스로 이를 구한다는 뜻 외에 다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구한다는 뜻도 있다. 孔子는 이점을 준엄하게 가려내 놓았으니 「스스로 가다듬으면 인민들은 服從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仁이 될 것이니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암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만일 한 덩이로 된 仁의 德이 원래 심장의 구멍 안에 存在하여 있으면서 惻隱한 마음의 根源이 된다고 한다면 하루 동안 克己復禮 이하의 이십여 字는 도대체 덤덤하여 아무런 맛이 없는 것이다. 종래 仁字는 마땅히 仁을 좇는 것을 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④.
案仁者人也 二人爲仁 父子而盡其分則仁也 君臣而盡其分則仁也 夫婦而盡其分則仁也 仁之名必生於二人之間 近而五敎遠而至於天下萬姓 凡人與人盡其分斯爲之仁 故有子曰孝弟也者其爲仁之本 仁字訓誥本宜如是 於是顔淵問仁孔子却不把二人爲仁之義以答其問 另就自己心上修治使之爲仁 看來孔子此答新奇出凡 殆若問東而答西使之警發 非平平地順下說話也 故下段敷說其所以然 曰我若自修人皆歸順 父子兄弟夫婦君臣以至天下萬民 無一人不歸於仁人之所感化 於是乎仁成矣 原來仁人爲仁 故求仁者或於自求之外更求諸人 孔子嚴嚴辨破 曰自修則民服於是乎爲仁 豈由人乎哉 若有一顆仁德原在心竅之內 爲惻隱之本源 則一日克己復禮以下二十字 都泊然無味也 從來仁字宜從事爲上看
①<中庸> ․ <孟子>盡心 上 ②<論語>學而篇 ③ 顔淵問仁 子曰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天下歸仁焉 爲仁由己而由入乎哉 顔淵曰請問其目 子曰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 顔淵曰回雖不敏 請事斯語矣 ④논어고금주六 P3~3b
•另:헤어질 령, 따로 령 顆:낱알 과, 흙덩이 과 •五敎=五典: 父義․母慈․兄友․弟恭․子孝, 오륜의 가르침,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5가지 방법
생각하건대 - 仁이란 두 사람의 일이다. 두 사람의 일인데도 그것을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孔子는 그의 공로와 효과를 설명하여 말하기를「하루를 克己復禮하더라도 이 세상 사람으로서 귀화하지 않을 자는 없다」하겠다. 舜이 하루를 克己復禮한 결과 완고한 아비와 거친 어미와 오만한 아우도 다 같이 기꺼이 화합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堯인금이 하루를 克己復禮한 결과 九族 백성들로부터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부드러운 태도로 화목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이를 일러 천하가 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만일 그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돌아온 것을 일러 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면 仁의 지극한 공적이란 그의 아름다운 이름을 얻는 데 있으면 그만일 터이니 어찌 성인이 나를 위하는 학문이 되겠는가? 「내가 인하고자하면 그 인은 거기로 올 것이다」 하였으니, 돌아온다는 것은 거기로 온다는 뜻이다①.
案仁者二人之事也 二人之事而專責之於一人 故孔子說其功效曰 一日克己復禮 而天下之人無不歸化 舜一日克己復禮而頑父嚚母與其傲弟無不諧協 堯一日克己復禮 而九族百姓以至黎民 無不擁睦 此之謂天下歸仁 若以歸其美名 謂之歸仁則仁之至極功惟在乎 得其美名而止 豈聖人爲己之學乎 我欲仁斯仁至矣 歸也者至也 •嚚: 어리석을 은 擁:안을 옹, 낄 옹 ①논어 고금주 六 p3 b~4
보충하기를 - 仁이란 두 사람이다. 아들이 어버이를 사랑하고 신하가 군왕을 사랑하고 목자가 인민을 사랑하는 것이 모두 仁인 것이다.
(補曰仁者二人也 子愛親臣愛君牧愛民皆仁也)
보충하기를 - 忠․孝가 지극한 것은 仁이라 하고, 화란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勇이라 한다.( 補忠孝至極曰仁 禍難無懼勇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