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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r(21). 倭敵이 함경도(咸鏡道)로 들어오고 두 왕자(王子)가 잡힘.
23/06/03 16:39:48 金 鍾國 조회 1084
21. 倭敵이 함경도(咸鏡道)로 들어오고 두 왕자(王子)가 잡힘.
賊兵入咸鏡道 兩王子陷賊中. 從臣金貴榮⋅黃廷彧⋅黃赫及本道監司柳永立 北兵使韓克諴等 皆被執. 南兵使李渾 走至甲山 爲我民所害. 南北道郡縣 皆沒于賊.
有倭學通事咸廷虎者 在京城 爲賊將淸正所得 因隨淸正入北道 賊退後逃還京城 見余言道事頗詳.
淸正在賊將中 尤勇悍善闘. 與平行長 同渡臨津 至黃海道安城驛 謀分搶兩界 各議所向未決. 二賊拈*7)鬮*8) 行長得平安道 淸正得咸鏡道.
於是 淸正擒*9)安城居民二人 使向導 二人辭以生長此地 不諳北路 淸正卽斬之 一人懼請先導.
從谷山地踰老里峴. 出於鐵嶺北. 日行數百里 勢如風雨.
北道兵使韓克諴 率六鎭兵 相遇於海汀倉. 北兵善騎射 地又平衍 乃左右迭出 且馳且射 賊不能支 退入倉中.
時日已暮 軍士欲少休 俟賊出 明日復戰. 克諴不聽 揮其軍圍之.
賊出倉中穀石 列置爲城 以避矢石 從其內多發鳥銃. 我軍櫛比而立 重疊如束 中必貫穿 或一丸斃三四人 軍遂潰.
克諴收兵 退屯嶺上 欲天明更戰 夜賊潛行 環我軍 散伏于草間.
朝大霧 我軍猶意賊在山下 忽一聲砲響 從四面大呼突起 皆賊兵也. 軍遂驚潰 將士向無賊處奔走 悉陷泥澤中 賊追至芟刈 死者無數.
克諴遁入鏡城 遂被擒.
兩王子臨海君⋅順和君 俱至會寧府.
蓋順和君 初在江原道 賊兵入江原道 故轉向北道. 是時賊窮追王子.
會寧吏鞠景仁 率其類叛 先縛王子及從臣以迎賊.
賊將淸正解其縛留置軍中 還屯咸興.
獨漆溪君尹卓然 路中稱病 從他路 深入別害堡. 同知李墍 不從王子 留江原道 皆免執.
柳永立拘賊中數日 賊以爲文官 防禁少懈 永立乘間脫走 還行在.

倭敵이 함경도(咸鏡道)로 들어오고, 두 왕자(王子)가 적의 수중에 잡혔고, 종신(從臣) 김귀영(金貴榮)⋅황정욱(黃廷彧)⋅황혁(黃赫)과 함경감사[本道監司] 유영립(柳永立)*1)과 북병사(北兵使) 한극함(韓克諴)*2) 등이 다 倭敵에게 잡혔으며, 남병사(南兵使) 이혼(李渾)은 달아나서 갑산(甲山)에 이르렀다가 우리 백성들에게 죽은 바 되었고, 남북(南北)의 군현(郡縣)들이 다 적에게 함몰되고 말았다. 이때 왜학통사(倭學通事) 함정호(咸廷虎)라는 사람이 서울에 있다가 적장 가등청정(加藤淸正)에게 잡힌 바 되어 인하여 加籐淸正을 따라 북도(北道 : 함경도)로 들어갔다.

그는 倭敵들이 물러갈 때 도망하여 돌아왔는데, 나를 보고 북도의 사정을 자못 자세하게 말하였다. 加籐淸正은 적장 중에서 더욱 용맹스럽고 싸움을 잘하는데, 그는 평행장(平行長 : 小西行長)과 함께 같이 임진강(臨津江)을 건너 황해도 안성역(安城驛)에 이르러서 함경 도와 평안도[兩界]를 나누어 빼앗기를 도모하고 각각 갈 길을 의논하였으나 결정을 짓지 못하고, 두 적장은 제비를 뽑았는데 小西行長은 평안도로 가게 되고, 加籐淸正은 함경도로 가게 되었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 나서 자랐으므로 북도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거절하였더니, 加籐淸正은 즉시 한 사람을 베어 죽이니, 한 사람은 두려워하여 앞에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겠다고 하였다. 倭敵 加籐淸正은 곡산(谷山) 땅으로부터 노리현(老里峴)을 넘어서 철령(鐵嶺)*3)의 북쪽으로 나왔다. 그는 하루에 수백 리를 가는데 그 기세가 마치 바람이 비를 몰고 가는 것과 같았다. 북도병사(北道兵使) 한극함(韓克諴)은 6진(六鎭)*4)의 군사를 거느리고 해정창(海汀倉)*5)에서 적군과 만났다. 북도의 군사들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며, 지역이 또한 평탄하고 넓어서 곧 왼쪽, 오른쪽으로 달려나와 말을 달리 면서 활을 쏘니, 적들은 능히 지탱하지 못하고 쫓겨서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에 날은 이미 저물어서 군사들은 좀 쉬다가 적들이 나오는 것을 기다려 내일 다시 싸우자고 하였으나 한극함은 듣지 않고 그 군사를 지휘하여 적을 포위하였다. 적들은 창고 속에서 곡식 섬을 꺼내어 나란히 벌여놓고 성(城)처럼 만들어 우리 군사의 시석(矢石 : 화살과 돌)을 피하면서 그 속에서 조총(鳥銃)을 쏘았다. 우리 군사는 빗살처럼 가지런히 늘어서서 겹겹이 나무를 묶어 세운 듯이 서 있다가 총알을 맞으면 꼭 관통이 되고, 혹은 총 한 방에 3, 4명씩 쓰러져서 우리 군사는 드디어 무너졌다. 한극함은 군사를 거두어 거느리고 물러서서 고개 위에 진을 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밤에 적이 가만히 나와서 우리 군사를 둘러싸고 흩어져 풀숲 속에 매복하고 있었다.

아침에 안개가 크게 끼었다. 우리 군사는 그래도 적이 산 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한 방의 총소리가 나더니 사방에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뛰어 나오는데 다 적병들이었다. 우리 군사들이 놀라 드디어 무너져서 장병들은 적들이 없는 곳을 향하여 도망하다가 모두 진흙구덩이에 빠졌는데 적들이 뒤쫓아 와서 칼로 베어 죽이니, 죽은 사람의 수효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한극함은 도망하여 경성(鏡城)*6)으로 들어갔다가 드디어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두 왕자인 임해군(臨海君)⋅순화군(順和君)은 함께 회령부(會寧府)에 이르렀다.
대개 순화군은 처음에 강원도(江原道)에 있었는데, 적병이 강원도로 들이닥친 까닭으로 옮겨 북도로 향한 것이다. 이때 倭敵들은 왕자를 끝끝내 쫓아왔다.

이때 회령부의 아전[會寧吏] 국경인(鞠景仁)은 그 무리를 거느리고 배반하여 먼저 왕자와 종신(從臣 : 따라온 신하들)을 결박하여 가지고 倭敵을 맞아들였다. 적장 加籐淸正은 그 결박을 풀어준 다음 군중에 머물러 두고 함흥(咸興)으로 돌아와서 주둔하였다. 이때 홀로 칠계군(漆溪君) 윤탁연(尹卓然)만은 도중에 병이 났다고 핑계하고는 다른 길로 빠져나와 별해보(別害堡)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동지(同知) 이기(李墍)는 왕자를 따라가지 않고 강원도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다 적에게 잡히지 않았다. 유영립은 적에게 구류된지 며칠 만에 적들은 그가 문관(文官)이라고 해서 감시를 좀 허술하게 하였는데, 유영립은 이 틈을 타서 적굴을 빠져나와 도망하여 행재소(行在所)로 돌아왔다.

*1)유영립(柳永立, 1537∼1599) : 자는 입지(立之), 본관은 문화(文化). 조선조 宣祖 때 문신. 문과에 급제,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내고, 임진왜란 때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로 있다가 倭敵이 북도(北道)로 들어와 사로잡혔다가 도망하였으나 말썽이 되어 파직됨.
*2)한극함(韓克諴, ?∼1593) : 조선조 宣祖 때 무신. 경원부사(慶源府使)를 거쳐 임진왜란 때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서 倭敵을 해정창(海汀倉)에서 맞아 싸웠으나, 불리하여 도망했는데 뒤에 말썽이 되어 처형됨.
*3)철령(鐵嶺) : 강원도의 회양(淮陽)과 함경남도의 안변(安邊) 사이에 있는 큰 고개.

*4)6진(六鎭) : 조선조 世宗 때 김종서(金宗瑞, 1390∼1453) 장군이 여진(女眞)의 침구에 대비하여 두만강변(豆滿江邊)을 중심으로 설치한 여섯 곳의 대진(大鎭). 곧 종성(鐘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
*5)해정창(海汀倉) : 함경북도 길주(吉州)에 있는 지명.
*6)경성(鏡城) : 함경북도의 두만강(豆滿江) 연안에 있는 지명으로, 옛 6진의 하나. 군사적 요지.

*7)염(拈) : 집을 념. 집다. 손가락으로 집어 비틀다. 집어들다. 따다.
*8)구(鬮) : 제비 구. ①제비. 추첨. ②쟁취하다. ③손에 잡다. 손으로 잡다. 염구(拈鬮 : 제비를 뽑다. 추첨을 따다.)
*9)금(擒) : 사로잡을 금. 생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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